영혼이라는 말 무서워요. 죽음이 떠올라 싫어요. 그 말을 하면 어둠이 나를 확 휩쓸어 갈 것 같아요. 깜장 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해봐요. 너무 끔찍한 일이에요. 그 속에서 작고 초라해지는 내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무조건 그렇게 생각할 일만도 아닌 것 같아요. '영혼이라,,, 왠지 심오한 느낌이 드네' 심오한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난 별로예요. 그냥 편하게 살고 싶거든요. 복잡한 건 질색이에요. 혹시 복잡한 걸 즐기는 사람은 좋아할지도 모르겠네요. 얼마 만인지 몰라요. 이렇게 극장을 간다는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에요. '엄마, 영화 보러 갈래?' 딸이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한 말이에요. '그래, 가자, 뭔데?' '애니메이션으로 영혼 이야기라는데 평이 좋아' '그래, 평이 좋다니까 실패할 확률도 낮아지겠지?' 맞장구를 쳤어요. 딸에게 예약을 하라고 했어요. 요즘은 영화를 제 값 주고 보는 사람이 없어요. 여러 가지 할인받을 수 있는 방법이 많아요. 나도 통신회사 적립금이 많아요. 한 명은 공짜로 가능하고 다른 한 명 값도 조금 할인을 받을 수 있어요. 그렇게 우리는 예약을 했어요. 낮보다는 밤을 활용하기로 했죠.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어차피 저녁 먹고 나면 앉아서 티브이를 보거나 군것질 거리를 앞에 놓고 살 찌우는 일만 할 테니까요. 그런데 영화를 예약한 날이 그 유명한 드라마가 다시 시작되는 금요일인 거 있죠? 그 드라마가 작년에 대세였는데 아세요? '펜트 하우스 2'가 우리가 영화를 예약한 날 바로 그날 첫방을 하는 날이었거든요. 나도 아줌마랍니다~~. 유행가 한 자락 같죠? 그래서 그 시간에 영화가 끝나고 집에 올 수 있는지 딸에게 여러 번 물어봤어요. '걱정 마, 엄마 애니메이션이라 오래 안 걸려, 그 드라마 볼 수 있을 거야' 딸의 말을 믿어요. 누구 말인데 안 믿겠어요. 딸은 저녁도 먹지 않고 헬스장으로 갔어요. 요즘 딸은 살이 너무 많이 쪘다며 저녁은 거의 먹질 않아요. 내가 보기엔 살찐 것 같지 않은데 말이죠? '요즘 애들은 말린다고 되는 애들이 아니야?' 엄마들 사이에서 흔히 하는 말이에요. 자식들 이야길 하다 보면 결국은 그런 결론에 도달하곤 해요. 신랑이 퇴근하자마자 간단하게 저녁을 차렸어요. 어제 먹다 남은 주꾸미 볶음에 밥을 넣고 볶음밥을 후다닥 했어요. 물론 계란 하나를 살짝 위에 얹어 주었죠. 딸과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니 얼른 치우고 가라고 하네요. 그래도 저녁에 할 건 다했어요. 빨래까지 널었으면 오늘 할 일 끝! 이거든요. 내가 집 근처에서 버스를 타면 그 버스를 딸은 역 근처에서 타기로 했죠. 우린 버스를 타고 영화관으로 갔어요.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마시니 신선하고 좋아요. 콧바람 쐬는 일이 신나는 일이잖아요. 실내에서만 있어서 그래요. 영화관은 역시나 한산해요. 대여섯 명이 있네요. 열 체크하고 큐알코드 찍고 바로 13층으로 올라갔어요. 대략 이십여 명 이내의 관객인 것 같네요.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도 보여요. 자리를 찾느라 번호 확인 중이네요. 드디어 영화가 시작돼요. 그런데 대사도 없고 더빙 글씨도 없는 영화가 나와요. 토끼가 굴을 파느라 정신없어요. 지하 세계에 말이죠. 자기만의 꿈같은 집 설계도를 가지고 말이죠. 파고 들어가다 보면 자꾸 다른 친구들 방을 침범하는 거예요. 친구들을 곤란에 빠뜨리기도 하고요. 다른 방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더 깊이 더 깊이 파고들어가게 돼요. 사고가 생겨요. 그 사건을 동물 진구들이 힘을 합쳐 어려움을 극복해내요. '이상한 영화도 다 있네' 난 이런 표정으로 토끼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토끼가 굴 파고 다니는 지하세계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세계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토끼굴이 끝난 다음에 본격적인 영화가 시작돼요. 주인공 '조 가드너'는 재즈 뮤지션이자. 비정규직 교사예요. 그걸 보는 순간 우리 현실을 보는 것 같았어요. 비정규직이 많은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요. 현실이 영화고 영화가 현실이니까요. 조는 정식교사 제의를 받아요. 그러나 기뻐하지 않아요. 정식교사보다는 멋진 연주자를 꿈꾸죠. 공연 기회를 얻고 돌아오는 길에 맨홀에 빠져요. 그곳은 영혼들의 세상이에요. 저승길과 태어나기 전의 세상이래요. 저승길은 '머나먼 저 세상'이라고 표현되고 있네요. 죽음에 임박하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해요.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조도 안간힘을 써요. 지구로 돌아가려고 애를 써보지만 실패하곤 해요. 우리네가 사는 일도 그래요. 될 때도 있지만 안될 때가 더 많지요. 조는 저승길에서 벗어나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22'의 멘토가 돼요. 노력 끝에 지구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문윈드에게서 얻어요. 지구에 떨어졌으나 22는 조로 바뀌고 조는 고양이 육체로 들어가게 돼요. 여기서 22는 지구를 가기 싫어해요. 아마 모르는 세계로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나 봐요. 누구나 그렇잖아요,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도 있지만 그에 따르는 불안함도 함께 존재하니까요.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22는 '불꽃'이라고 불리는 열정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조가 그걸 찾아주겠노라 장담했지요. 조와 22는 바뀐 몸으로 지구에 서 좌충우돌 삶을 살게 돼요. 내가 남의 몸으로 살고 있다 생각하면 아찔할 거예요. 22는 자기의 불꽃이 걷는 거나 하늘을 보는 걸지도 모른다고 말해요. 그러나 조는 그건 그냥 사는 거지 목적이 아니라고 말해요. 우리도 그렇게 사는 것 같아요. 목적을 향해 살아가지만 결국은 그냥 살아가는 거잖아요. 우여곡절 끝에 서로 자신의 몸을 찾게 돼요. 22는 떠나고 조는 드디어 멋진 연주를 마치게 돼요. 물고기 이야기가 나와요. 물고기는 늙은 물고기에게 가서 말해요. '바다를 찾고 있어요' '바다?' 늙은 물고기가 말해요. '네가 있는 곳이 바다란다.' 어린 물고기가 말해요. '여긴 그냥 물이잖아요! 전 바다를 원한다고요' 맞아요. 우리는 모두 어린 물고기예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바다라는 사실을 자꾸만 잊어버려요. 저 멀리에 있는 바다를 동경하며 그곳으로 가려고 발버둥을 치곤 해요. 가끔씩 헛발질을 하면서요. 22와 조는 지나온 삶을 회상하고 깨달음을 얻게 돼요. 22와 이별한 후 조는 지구로 돌아와요. 조는 삶의 매 순간을 기쁘게 살겠다고 다짐을 하며 영화는 끝이 나요. 정말 가슴 찡한 영화였어요. 그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매 순간 기쁘게 살고 있진 않은 것 같아요. 그날이 그날인 생활이 기쁘진 않거든요. 하지만 그저 그런 날이 행복한 삶이라는 걸 깨우쳐 주는 영화임엔 틀림없어요. 어느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걸 깨우쳐 주네요. 솔직히 애니메이션이라 기대를 별로 안 했어요. 그냥 편한 마음으로 만화 한편 본다는 식으로 보러 간 영화였어요. 그런데 보고 난 이후의 발걸음은 정말 가벼웠어요. 내가 지금 이렇게 걸어가고 있는 것도 행복의 발걸음이라는 생각이 바로 드는 거 있죠. 조처럼 재즈 뮤지션은 아니지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야겠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22는 왜 22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궁금해지긴 하네요. 영화감독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냥 궁금해지네요. 아는 사람 있나요? 영화가 끝나도 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면서 시계를 봤어요. 버스 타고 집에 가면 딱 그 드라마가 시작될 것 같아요. 같이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