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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Feb 22. 2021

S, 그녀를 잘 모르겠어요


  그녀를 생각하면 아프다. S는 잘 나가던 회사를 갑자기 때려치웠다. 사표를 던지고 나서야 말했다. 사후약방문이었다. S의 생각은 이러했다. 서른이 되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건 없는 듯 보였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그러나 직장에 얽매여 있으니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있노라 말한 적은 있다. 그 회사는 내가 다니던 직장과는 달랐다. 연차가 있으나 연차다운 연차를 쓰지 못하고 있었다. 선배들은 이미 거기에 길들여져 있었다. 연차가 짧은 후배인지라 자기로서는 별 수 없다고 한다. 긴 휴가를 아예 주지 않는 풍토가 이미 자리 잡혀 있다고 한다. 선배들 탓이라기보다는 오너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영 마인드가 이상한 오너였다. 나중에 이 오너는 티브이에 나와서 사과를 하고 경영권을 포기했다. '내가 저럴 줄 알았어. 경영자가 저런 생각이니 그 회사가 올바르게 되겠니?' 그 광경을 보면서 난 그런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 틀을 쉽게 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철칙처럼 박혀 있는 것들은 쉽게 깨치지 않는 법이다. 길게 연차를 쓸 수가 없는 구조라고 한탄을 하며 출근을 하곤 했다. 물론 직장에 대한 다른 불만은 없었다. 남들은 지옥철을 타고 힘든 출퇴근을 할 때 s는 버스를 타고 30분 이내에 회사에 도착한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기도 했다. 그만한 거리에 직장이 있었다. 여행을 오래 못 가는 것 빼고는 다른 조건은 다 괜찮았다. s는 월요일이나 금요일 하루를 휴가 내서 겨우 2박 3일 여행짜리 여행을 갔다 오곤 했다. S는 여행을 좋아한다. 외국에 나갔다 와서 그런 것 같다. 대학 다닐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하다 왔다. 공부가 끝나고도 한 동안은 봉사활동 다닌다며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공부와 봉사활동이 다 끝나고 돌아오는 날, '나 이 길로 다시 다른 비행기 타고 싶어, 다시 나갈래' 인천공항에서 내뱉은 그녀의 첫 말이었다. 그 정도로 자꾸만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그랬던 S가 그녀의 목을 조르는 직장생활을 3년 넘게 한 것이다. 그리곤 대리를 달자마자 사표를 던진 것이다. 공부와 여행을 즐기며 외국에서 자유를 만끽하던 그녀였다. 그러는 사이 나는 연차를 7개 정도 내고 보름 넘게 유럽 여행을 다니곤 했다. 그럴 때마다 S는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왜 우린 그렇게 연차를 낼 수 없는 건지 알 수가 없네' 늘 한탄 섞인 푸념을 하곤 했다. 조그만 회사도 아닌데 나도 그게 이해가 안 갔다. 불문율처럼 이어져온 사규였다고 한다. 하긴 내가 다니던 직장도 예전엔 그렇게 못했다. 길게 휴가를 내게 된 것은 불과 이삼 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전만 해도 이삼일 정도 휴가를 간신히 내곤 했다. 다들 눈치 보느라 그렇게 못했던 것이다. 세상이 바뀌면 사규도 바뀌기 마련이다. 내가 다디는 직장도 오너가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조금씩 제도가 바뀌고 있었다. 직장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차원에서 여행 가는 직원 한 두 명에게 연차를 몰아주자는 회의를 하기도 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상사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최소한 나 정도 되면 그런 건 없어진다. 오랜 직장 생활이 그런 것들을 없애주곤 한다. 그야말로 남들이 말하는 능구렁이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연차를 얻어 일 년에 한두 번씩 긴 여행을 다니곤 했다. s의 생각은 이랬다. 회사를 그만두고 서핑 천국 '발리'에서 한 두 달 살다가 호주로 갈 계획이었다. 호주 비자도 받아 놓은 상태였다. 발리는 그 전에도 여행으로 몇 번 가본 적 있다. 그곳에서 서핑을 배웠다. 사표를 던지고 짐을 꾸려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몽골이었다. 몽골도 한번 가 본 적 있었다. 난 한번 간 곳은 특별하게 갈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두 번 다시 가지 않는다. 그런데 s는 다르다. 한번 갔다 온 곳에 대한 미련이 많다. 좋았던 경험을 다시 한번 겪어보고 싶어 한다. 그만큼 멋지고 좋은 곳일 수도 있다. 몽골을 다녀온 뒤 짐을 다시 쌌다. 이번엔 배낭이 두 개다. 장비가 많다. 하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배낭이고 하나는 유럽여행 배낭이었다. '순례길, 힘들 텐데,,,' 평소에 운동도 하지 않던 친구였다. 그걸 위해 가끔씩 동네를 걷곤 했지만 그건 한 발짝 발걸음을 뗀 것에 불과해 보였다. 그렇게 두 개의 배낭을 짊어지고 질질 끌며 떠났다. 가끔씩 순례길 모습이 폰으로 날아왔다. 판초를 쓴 모습과 지친 발걸음을 보내오기도 했다. 맛난 빵과 음료를 곁들인 사진도 먹음직스럽긴 했다. 몇 달이 지났다.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돌아왔다. 하나는 따로 부쳤다고 했다. 모든 물건들이 도착한 후 짐을 풀고 다시 또 짐을 꾸렸다. 이번 여행지는 발리다. 발리에서 몇 달 살다가 바로 호주로 넘어간다고 했다. 먼 여행이 될 거라고 배낭을 단단히 쌌다. 나는 s가 배낭을 풀고 다시 쌀 때마다 부럽고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말릴 수 없음을 안다. 다만 그녀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지내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그렇게 발리로 떠났다. 발리에 있는 동안에 전 세계는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우리나라도 침범당했다. 하늘길이 막혔다. S의 길도 막혔다. 그가 가고자 했던 호주도 발리도 길이 막히고 있었다. 발리도 관광객이 줄어든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도 점차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노라고 말한다. 버틸 때까지 최대한 버티고 있던 S는 묵고 있던 숙소 사장이 고국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짐을 쌀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돌아온 고국은 이미 바이러스와의 전쟁터였다. 일 년이 지났다. 하늘 길을 비롯해서 모든 것이 다 꽉 막혔다. 취업의 길도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모래는 싹이 트지 않는다. 그저 모래일 뿐이다. 실업자가 되면서 많이 의기소침해졌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선택의 길이 좁아지고 있었다. 본인도 그걸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 일들이 생각보다 더 많았다.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 삶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불안의 힘은 커져만 갔다. 열릴 듯 열리듯 문은 열리지 않았다. 최근에 S는 다른 회사에 들어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노는 것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한 결정이었다. 썩 마음에 드는 것 같진 않다. 더 놀 수는 없다는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직장도 멀다. 같은 지역이 아니다. 아주 먼 곳이다. 너무 멀어서 어떨까 싶지만 그래도 취직이 됐다고 하니 한시름 마음이 놓이는 건 사실이다. 하긴 생각해보니 대학 다닐 때도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먼 거리로 다니긴 했었다. 그때부터 이미 단련이 돼 있긴 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마음을 정하고 나서 그런지 S는 방 정리에 열심이다. 아침부터 시작했다. 언제 끝날 지 모른다. 그동안 모든 것들을 방안에 여기저기 쌓아두고만 지냈다. 잔소리할 수가 없다. 너저븐 그 자체였다. 자기 방 들여다보는 것조차 짜증내고 싫어한다. 어쩌면 그것들이 자신을 대변하는 중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걸 들여다보는 타인보다 자신이 더 괴롭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다음 주부터 S의 출근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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