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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Feb 10. 2021

이어폰

 


 전철을 타고 청량리 역에서 내렸다. 다른 역에 비해 청량리역은 더 붐빈다. 전철역과 기차역이 함께 있어서 그렇다. 발걸음이 마음을 앞질러 간다. 역 앞에는 커다란 시계가  있다. 그 앞에서 를 만나기로 했다. 시계탑 주변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다. 약속 장소로 제격이다. 만나자고 해놓고 그곳이 어딘지 서로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여긴 그럴 경우의 수는 없다. 저렇게 큰 시계가 역 앞에 딱 버티고 서 있는 한 그럴 염려는 없다.

그는 큰 키에 비해 비쩍 말랐다. 난 내가 체격이 있는 편이라 반대의 체격을 선호한다. 만나기로 한 시간 10분 전에 그도 도착했다. 우리는 매표소로 향했다. 표를 끊었다. 양수리 가는 기차표를 끊고 우린 기차에 올랐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 본다. 전철은 자주 타지만 기차를 탈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기차가 주는 매력이 있다. 누구랑 기차를 탔는지는 중요치 않다. 기차를 탄다는 자체로도 설렌다. 좌석에 앉았다. 덜커덕 기차가 움직인다. 차창 너머로 풍경이 스친다. 경치 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차장이란 글자를 쓸 때마다 생각나는 시가 있다.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라는 시다. '단풍잎 같은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기차 유리창을 보면 항상 단풍잎이 그려져 있다. 그건 순전히 곽재구 시인 덕이다. 그 시를 알고 난 이후부터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유리창엔 단풍잎이 뾰족뾰족하다. 사계절 내내 그렇다. 배낭을 연다. 은박지 속에 사과 토끼가 들어있다. 아침 대용이다. 가로수를 휙휙 제치며 사과를 먹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뭐 그냥 지냈지. 직장 다니고 뭐 특별한 일 없이'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양수역에서 내렸다. 모르는 곳으로의 여행은 항상 새롭다. 특별한 감성이 생긴다. 상가들을 따라 죽 걸었다. 도착한 곳은 세미원이다. 풀과 꽃의 정원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아주 많지는 않은 편이다. 군데군데 사람들의 발길이 보인다. 이곳은 연꽃 필 즈음이면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곳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연꽃이 한두 개 필까 말까 할 시기였다. 산책길을 천천히 걷는다. 아기자기하다. 돌다리를 건널 땐 시골 개울가를 연상시킨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따라 걷는다. 서로 나누는 이야기보다 주변 경치에 시선을 빼앗기는 경우가 더 많다. 이야기는 언제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풍경은 언제 또 보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눈에 담기 바쁘다. 연못을 가로진 돌다리를 건넌다. 양 옆으로 연잎이 이불처럼   덮어 주고  있다. 군데군데 연꽃이 피었다. 파란 잎사귀를 보니 눈에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파란 양탄자를 탄 마법사가 된 듯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그 위에 드러눕고 싶다.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며 지나갈 때 그곳을 누리는 또 다른 자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리였다. '너희들은 우리처럼 이렇게 못하지?' 놀리듯 물장구를 치며 물보라를 일으키며 놀고 있었다. 오리가 이렇게 부러울 줄 몰랐다. 연꽃보다 오리가 훨씬 더 부러웠다. 연꽃은 식물이라 움직이지 못한다. 뿌리를 내린 그곳이 평생 삶의 터전이다. 그거에 비하면 오리는 유유자적 생을 즐긴다. 자유롭게 연못을 어슬렁 거린다. 하긴 우리도 지금 그 언저리를 자유롭게 거니는 중이다. '흥, 오리쯤이야, 우리가 좀 더 낫지 않니, 안 그래?'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장독대 분수를 만났다. '장독대를 본 적이 언제더라' 시골집을 개조하기 전에 봤으니 오래전 일이다. 장독대는 시골집의 상징이었다. 우리 집 장독대는 옥상에 있었다. 다른 집들도 대부분 그랬다. 엄마가 고추장이나 된장을 떠 오라고 하면 짜증이 났다.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싫었다. 지금은 편한 마음으로 장독대를 구경하고 있다. 뿜어져 나오는 분수를 바라보면서 즐기고 있다. 모든 사물의 존재는 쓰임에 있다. 한 가지 사물이라고 해서 꼭 한 가지 쓰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본연의 자세를 벗어나는 것이 예술 인지도 모르겠다. 사물의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장독대 분수를 보니 또 다른 사물이 떠오른다. 마르셀 뒤샹의 변기다. '샘'이라는 작품으로 변기를 전시해 논란을 일으켰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뒤샹 같은 사람이다.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것을 처음 시도하는 사람, 정말 멋지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저 사람 머릿속엔 뭐가 들어 있을까?' 모든 게 궁금해진다. 낯설고 어색하지만 그것을 처음으로 실천한 사람이 선구자다.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보는 눈이 예술가에겐 필수다. 사물에 숨어있는 비밀을 발굴해내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 무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낯선 것에 끌린다. 새로운 것에 목말라한다.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흥분된다. 여행은 그래서 좋다.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도 그렇다. '저 사람은 어떨까?' 모든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한때 그런 충격을 즐긴 적 있다. 징검다리를 건넌다. 졸졸 시냇물 소리엔 나의 유년이 담겨 있다. 동네 개울에 놀러 가서 멱도 감고 콩서리를 했던 기억이 있다. 한참을 돌아보다가 우린 벤치에 앉았다. 저 멀리 두물머리가 보인다. 하늘과 강과 우리, 모든 게 완벽해 보인다. 평범한 것이 비범해 보일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이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좋다. 그 평범을 자주 실천하지 못한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퐁당퐁당 걸으면서 자연을 빠져나온다. 우린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유원지 근처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다. 밥을 먹고 나와 소화도 시킬 겸 거리를 걸었다. 되도록이면 한적한 길로 다녔다. 그가 한쪽 귀에 이어폰을 껴 준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무선 이어폰이 없었다. 둘이 같이 듣는 음악은 느낌이 색다르다. 발을 맞춰 걸어야 한다. 숨도 비슷하게 내쉬게 된다. 함께 같은 음악을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데이트를 하면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다. 음악이 흐른다. '가로수 그늘 아래에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이문세 노래다. 좋아하는 노래다. 한참을 그러고 다녔다. 그 후 세월이 지나 그는 노래 가사처럼 찬바람에 지워졌다. 관계란 그런 건가 보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것.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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