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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Feb 09. 2021

아만떼

알바

 


  한 달에 두 번 충무로에 간다. 동시 배우러 간다. 충무로 전철역에 내리면 눈이 즐겁다. 대종상을 받은 한국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왕년에 한가락했던 연예인들 사진이다. '저 사람 이름이 뭐더라?'기억을 더듬느라 발걸음이 느려진다. 지루하지 않은 역 중 하나다. 그런 역은 흔치 않다. 시절이 파노라마로 흘러내린다. 최근에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모 씨 사진도 있다. 피아니스트 백 모 씨가 배우자를 방치했다, 안 했다, 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다. 충무로는 나와 인연이 많다. 뒷골목은 인쇄소 거리다. 철컥 철컥 기계 소리는 삶의 시계 소리다. 장단 맞춰 걷다 보면 친구 사무실이 나온다. 내 친구는 광고회사 CEO다. 갑장 친구다. 이 친구 이야기는 나중에 한번 더 쓸 예정이다. 한 건물에 집과 사무실이 있다. 1층이 사무실이다. 대학 다닐 때 자주 놀러 가곤 했다. 학교가 명동이라 충무로까지 수다 떨며 걸어 다녔다. 그때 추억들이 파리바게트 빵집에 부풀어 있다. 창문 너머 옛 생각은 드르륵 소리에 갇혀 있다. 내가 가는 건물은 파출소 앞에 있다. 처음 그곳을 찾아가던 날, 바로 그 파출소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경찰에게 건물 이름을 대고 물어봤다. 경찰은 손가락으로 저기라고 알려줬다. 바로 코 앞에 두고 물어본 것이다. 옛날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는 없다. 계단을 올라 3층에 있다. 그날도 변함없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웬 아주머니가 오더니 나에게 찰싹 달라붙는다. 나이는 내 또래 정도다. 내 팔을 끼는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나도 놀랐다. 그걸 거부하지 못했다. 아마 같은 아줌마라서 이질감은 없었던 것 같다. '아줌마는 아줌마끼리 통하는 게 있나?' 싶었다. 자기는 아르바이트 중인데 바쁘지 않으면 시간 좀 잠깐 내 달란다. 보통 아르바이트하면 젊은 친구들을 떠올린다. 솔직히 아줌마가 거리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 직장생활을 오래  했다. 그러나 울타리 밖은 잘 모른다. 내가 한동안 서울을 나오지 않아서 '나만 시대를 모르나?' 그건 잘 모르겠다. 여하튼 아주머니 아르바이트 생은 처음이다. 제츠처가 억지스러워 보이진 않은 건 순전히 내 기분 탓이다. 그날따라 난 하릴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처럼 걷고 있었다. 터벅터벅 옆사람도 힐끗거리며 상가도 기웃거리며 걷고 있었다. 아마도 그분은 나의 그런 모습을 빠르게 알아챘다. 예전 같으면 바쁘다고 뿌리치고 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친구처럼 팔짱을 낀 채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애인처럼 착 달라붙는다. 수업 말고 다른 일은 없었다. 집에만 가면 됐다. 바쁠 이유는 없었다. 전철 타는 입구까지 따라온 그분은 그때까지도 내 팔짱을 풀지 않았다. 나중에는 제발 같이 가달라고 통사정했다. 내가 가지 않으면 자긴 아르바이트 비용을 못 받는다고 한다. 결국 난 못 이기는 척 그분을 따라갔다. 동병상련이었다. 춥고 바람 부는 겨울 거리다. 작년 이맘때쯤이다. '그래, 나라도 가주자.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이런 맘으로 따라나섰다. 내가 따라간 곳은 송탄에 짓는 오피스텔 분양 사무실이다. 아마 그분은 분양사무실 알바였던 것 같다. 분양사무실 알바가 있다는 사실은 이 글을 쓰면서 알았다. 검색해보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다. 세상 물정 모른다는 말이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니 훈훈했다. 입구에서 주는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온도 체크하고 이름 쓰고 안내하는 탁자로 갔다. 이것저것 책자를 보여줬다. 처음엔 들을만했다. '오피스텔 하나 분양받아볼까?'하고 알아본 적 있다. 직접 오피스텔을 가 본 적도 있다. 사지는 않았다. 2층으로 오피스텔 실내를 보러 가자며 손을 이끈다. 오피스텔은 평수가 작다. 특별히 볼 것도 없다. '저도 할 만큼은 해드린 것 같은데 그만 가도 되겠죠?' 빙 둘러보고 그분께 말했다.'그럼, 그러세요' 같이 계단을 내려왔다. 아까 앉았던 탁자에 다시 앉았다. 입구에는 나처럼 붙잡혀 온 듯한 아주머니가 슬리퍼를 신는 중이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 미소가 절로 나왔다. 탁자에서 그녀는 명함을 내밀었다. 그러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이름을 쓰란다. 방문 기념으로 와인을 한 병 주는데 그것에 대한 사인이다. 공짜로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난 그에 합당한 시간도 할애했다. 와인 한 병을 받아 들었다. 무거웠다. 어느 순간부터 난 들고 다니는 게 싫다. 특히 무거운 것은 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들고 나온다. 나오면서 생각했다. '나도 이제 진짜 아줌마가 되어가는구나' 느꼈다. 물론 아줌마가 된 지는 오래됐다. 남들이 볼 땐 그렇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남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난 피터팬이 아니다. 시간이 가면 나이를 먹는다. 혹시나 내가 잊어버릴까 봐 얼굴이 말해주고 몸이 말해준다. 거울을 볼 때마다 자각한다.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깨닫는다. 나도 모르게 삐져나오는 몸짓과 행동에 세월이 깃들어 있음을 안다. 어쩌면 그건 자연스러운 거다. 세월을 막아낼 방법은 없다. 남들처럼 성형은 하기 싫다. 시계를 거꾸로 돌릴 생각도 없다. 연어처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지도 못한다. 그러나 생각은 자유다. 몸은 따라주지 않아도 마음은 청춘이다.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그때 받은 와인은 장식장에 넣었다. 아만떼다. 이태리어로 애인이나 연인이라는 뜻이란다. 요즘은 마트에 가도 와인 파는 장소가 따로 있다. 그만큼 소비가 늘었다는 증거다. 요즘은 결혼식장에서도 준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많은 사람들과의 식사가 꺼려지는 때다. 식권 대신 홍삼이나 와인을 준다. 대중화된 느낌이다. '오늘 저녁은 나의 연인 아만떼와 함께' 작은 소리로 외쳐본다. 와인 속에 흐르는 아르바이트생의 노력에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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