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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Feb 15. 2021

시작


  시작이라는 말 좋아한다. 무언가를 새로 할 수 있다. 도전은 생활에 활력을 준다. 다만 그것이 명절과 함께 온다는 건 별로다. 음력으로 따지면 새해다. 첫 날을 명절로 시작한다는 것은 부담이다. 결혼 전에는 좋았다. 직장을 나가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긴 설이 끝났다. 빨간 맛, 효력을 다했다. 딸과 며느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딸의 시작과 며느리의 시작은 다르다. 딸의 명절은 좋다. 며느리의 명절은 싫다. 좋다와 싫다로 이분화된다. 며느리가 되고 보니 그 느낌을 알겠다. 며느리를 맞아보니 또 다르다. 세대차이가 확실하게 난다. 나 때는 며느리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며느리들은 그렇지 않다. 좋고 싫고  명확하다.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처음부터 명절엔 이렇게 할 것이다라고 선언을 한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도 며느리 시절을 겪어보니 며느리 심정을 알겠다.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한다. 이번 설엔 신랑과 나만 시골에 갔다. 인원 제한을 두는 바람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핑계 김에 안 가는 사람들도 많다. 시골엔 친정엄마 혼자 산다. 아들과 며느리는 오지 말라고 했다. 엄마 생일은 음력으로 1월 2일이다. 설 다음날이 생일이다. 설 쇠러 시골을 내려가서 생신까지 해결할 수 있다. 이번엔 친정 식구들과 설 전에 미리 합의를 보았다. 5명이 안되게끔 인원을 조절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시골 가는 날짜를 엇갈리게 가기로 했다. 남동생이 엄마랑 하룻밤 자고 그다음 날 올라가고 그날 우리가 내려가서 바통 터치하는 걸로 합의를 봤다. 엄마를 생각하면 그게 훨씬 더 좋은 방법이다. 하룻밤은 아들과 며느리가 와서 자고 그다음 날은 딸이 와서 자니 덜 외로울 것이다. 예전 같으면 명절 전날 와서 명절날 아침이나 점심 먹으면 다들 떠난다. 썰물 빠지듯 식구들이 다 빠져나가면 엄마 가슴에 휑하니 찬바람이 불 것이다. 소파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내 가슴도 시리다. 하룻밤이라도 더 엄마 곁에 식구들이 있을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코로나 덕에 엄마는 하룻밤 더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댁은 어른들이 다 돌아가셔서 산소만 가면 된다. 일단 시댁에 대한 부담은 없다. 처음엔 우리가 먼저 설 전날 갈까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그건 무리다. 먼저 가는 사람이 반찬을 모두 해가야 한다. 솔직히 그건 자신이 없다. 이때 살짝 시누이 노릇을 했다. 남동생더러 먼저 가라고 했다. 남동생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올케가 둘이다. 큰 올케는 덩치가 크고 작은 올케는 아주 작다. 큰 올케는 하고 싶은 말은 참지 않고 다 내뱉는 성격이다. 명절만 되면 형부랑 늘 티격태격한다. 큰 올케가 싫은 소리를 하면 형부는 그런 소리 하는 올케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작은 올케는 남이 듣기 싫은 말은 하지 않는다. 둘은 대조적이다. 굳이 따지자면 난 작은 올케가 더 좋다. 물론 큰 올케도 나쁘진 않다.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꼭 싫은 소리를 해서 점수를 깎아 먹는다. 작은 올케가 생기기 전엔 큰 올케가 모든 음식을 준비했었다. 작은 올케가 들어온 이후부터는 그것이 작은 올케 일이 됐다. 참고로 난 설거지 담당이다. 물론 상 차리기 전에 부엌에서 이것저것 돕는 일도 하지만 말이다. 솔직히 음식 장만하는 것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작은 올케는 친정엄마를 모시고 산다는 죄 아닌 죄를 이유로 더 잘한다. 이번에도 음식 장만은 작은 올케 몫이 되었다. 그나마 이번엔 오는 인원이 적어서 다행이다. 예전처럼 식구들이 다 모이면 스무 명이 넘는 밥상을 차려야 한다. 그거에 비하면 양반인 셈이다. 명절 전주에 친정 식구들 선물은 미리 택배로 시켜놨다. 작년엔 아들과 며느리가 온다고 해서 이것저것 반찬을 했었다. 올해는 오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엔 음식을 하지 않았다. 설날 아침 떡만둣국을 끓여 먹었다. 한 살 더 먹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먹고 싶지 않아도 나이는 먹는다. 그래도 설날이면 떡국을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설날 기분이 든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꼭 떡국인 것 같다. 설거지를 끝낼 무렵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며느리가 전이 먹고 싶단다. 그러면서 시골 내려가면 전을 좀 가지고 오란다. 물론 시골 내려가면 전이 있다. 우린 친정은 작은 집이라 제사가 없다. 그냥 식구들 먹을 음식을 한다. 그래도 전은 있다. 그렇다고 그 전을 싸다가 며느리 주긴 좀 그렇다. 최근에 며느리는 임신했다. 쌍둥이란다. 태명이 알콩이, 달콩이란다. 그런 며느리가 전이 먹고 싶단다.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전을 하기로 했다. 남에게 얻어다 주긴 싫었다. 시장엘 간다고 했더니 신랑이 따라나섰다. 설날 아침이라 시장은 한산했다. 몇 가지 장을 봤다. 점심엔 시골 내려가야 해서 전을 하려면 빨리 해야 한다. 동그랑땡. 호박, 새우, 꽂이 할 재료들을 샀다. 4가지 전을 후다닥 해치웠다. 오후에 아들이 와서 가지고 가기로 했다. 우린 서둘러 점심을 먹고 시골로 간다. 고속도로는 한산하다. 반대편 차량도 오늘은 한가해 보인다. 작년 같으면 이 시간에 반대편 고속도로에 있었을 것이다. 시골 한번 가려면 선물 준비부터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올해는 통행료도 내야 한다. 공짜일 때가 좋았다.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도 차량이 별로 없다. 평소 휴일에도 이보다는 더 많았던 것 같다. 한데 정말 한산하다. 휴게소 매장들도 손님이 없긴 마찬가지다. 입구에서 명부 작성을 한다. 달라진 풍경이다. 어디를 가든 필수다. 음식을 먹을 수 없으니 사람들은 가판대에서 먹을 것들을 사서 손에 들고 휴게소를 나선다. 우리도 커피 한잔을 사서 들고 나온다. 명절은 명절 기분이라는 것이 있다. 시골에 내려갈 때는 기분이 좋다. 딸이고 며느리이고 이런 관계를 떠나서 마음이 편하다. 고향을 생각하면 무조건 기분이 설렌다. 돈이 들어도 인물 관계도가 복잡해도 좋다. 복잡한 것들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 그만한 정이 있다. 물론 올해는 조금 예외다. 식구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없으니 기쁨이 줄어들 것이다. 그래도 엄마를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난 좋다. 그나마 이번엔 엄마 생일 전날 내려가서 생일날 아침을 엄마랑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 작년까지만 해도 설날 세배하면서 생일 상을 함께 차리곤 했다. 이번엔 따로따로 가는 바람에 생일날 아침상은 내가 차린다. 작은 올케가 해온 반찬으로 난 밥상만 차리면 된다. 그야말로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얻으면 된다. 고향 청주에 도착했다. 우선 시댁 근처 산소에 들렀다. 산소는 네 군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신랑은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사람이다. 산에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신발은 엉망이 된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면 다리가 아프다. 시댁 어른들은 두 분 다 돌아가셨다. 산소 순례를 마치고 이제 친정으로 간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케이크를 하나 샀다. 이번엔 식구들도 없고 오붓하게 엄마, 나, 신랑 이렇게 세명이다. 이렇게 한가한 생일은 처음이다. 엄마 생일날 아침, 웬일로 엄마가 늦잠을 잔다. 평소 같으면 주간센터에 나가느라 새벽같이 일어날 텐데 오늘은 아직이다. 평소 같으면 늘 누워만 계셨을 것이다. 식구들이 오니 이야기하느라 잠을 덜 잔 탓이다. 아침에 일어나 조촐한 생일상을 차린다. 아침 상을 물리고 케이크에 불을 붙인다. '나 케이크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엄마가 한마디 한다. 엄마 생일인데 생일인지 잘 모른다. 어제부터 오늘은 엄마 생일이라고 아무리 말을 해줘도 자꾸 까먹는다. 치매가 살짝 있다. 기억을 상기시켜줘도 자꾸 까먹는다. 기억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 보인다. 금방 촛불을 끄고 나서 엄마 한데 물어본다. '엄마, 오늘이 무슨 날이야?' '몰라' '엄마, 생일이야, 엄마 귀빠진 날이야''몰라' 어느새 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몰라가 되어 가고 있다. 안타깝다. 어떤 책을 보니 치매는 가장 최근 기억부터 잊어버린다고 한다. 엄마를 보니 그 말이 맞다. 엄마가 나에게 주로 하는 말은 어렸을 때 일이다. 산에 나무 하러 간일, 원두막에 갔던 일, 처녀 때 총각 선생님이 선보러 왔던 일 등등 그 시절 추억에 둘러싸여 있다. 치매가 있기 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더 이상 나빠지진 않는 것 같아 다행이다. 센터에 나가고부터는 약도 드시고 증세도 호전됐다. 엄마의 또 다른 세상이 열린 셈이다. 학교 가는 학생처럼 센터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두 밤 자고 나서 센터 가면 된다고 알려주며 나는 고향을 떠난다. 엄마를 떠나 올 땐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혼자 있을 엄마 모습이 떠올라 안타깝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뿐이다. 내 집으로 돌아오면 또 내 생활에 금방 적응된다. 엄마도 나도 각자의 생활권에서 새로운 시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내일의 태양은 떠오를 것이다. 출발점은 다르지만 우린 여전히 출발선에 서 있다. 두려움은 없다. 다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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