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 모유수유를 둘러싼 아주 조용한 고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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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전 우리는 모유수유에 대해 제법 자주 이야기했다.
수유에 대한 영상을 함께 보기도 했고, 커뮤니티의 글들을 읽으며 현실적인 정보들을 정리해보기도 했다. 특별히 어떻게 해야겠다는 명확한 기준은 없었지만, 혹시 모유가 잘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 혼합수유는 언제까지 가능한지, 출근을 하게 되었을 땐 어떻게 단유를 준비할지 같은 이야기들이 대화의 중심에 놓였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이 모든 걸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율하면 된다고, 계획만 잘 세우면 길이 보일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병원 퇴원 후 호치 품에 안고 현실육아로 하루하루를 살기 시작하면서, 수유라는 건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것은 단순히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반응하는 일이고, 또한 전적으로 엄마 란이의 의지였다. 병원에서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새벽마다 수유콜을 받고 일어나야 했고, 단단하게 뭉친 가슴을 풀기 위해 유축을 반복하며, 말 없는 새벽을 견디는 엄마 란이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아빠인 내가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고 도우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시간의 진짜 중심은 란이의 몸과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옆에서 란이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걸 계속해서 느꼈다.
란이의 모유는 장모님의 우려와 달리 잘 나왔고, 그래서 더 고민이었다. 차라리 전혀 나오지 않았더라면, 선택은 덜 복잡했을지도, 망설임 없이 분유를 택했을 것이고, 거기에 대한 죄책감도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모유가 잘 나오는 상황 속에서 란이는 매일 스스로를 시험했고, ‘엄마로서 이 정도면 충분한가’라는 질문 앞에 자주 머물렀다. 혼합수유를 하면서도 완모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그 어딘가에서 기준 없는 기준을 스스로에게 들이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유를 하는 방식보다, ‘이 방식이 정말 아이에게 가장 좋은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란이의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해 보였다. 나는 그저 그 옆에서 걱정의 혼돈 속에 란이를 지탱해 주기 위해 말없이 유축기를 소독하고, 얼음팩을 준비하고, 조용히 젖병을 삶으며, 잠든 란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밤이 많았다. 수유라는 게 사람들의 말처럼 따뜻하고 감동적인 일이라는 것도 알겠지만, 때때로 지나치게 이상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완전모유수유를 하지 못하면 어딘가 미안한 마음이 드는 분위기, 분유를 택한 부모에게 향하는 은근한 시선, “엄마라면 당연히”라는 말을 아주 쉽게 던지는 사회의 말들. 그 안에서 란이는 누구보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애쓰고 있었고, 나는 그 애씀이야말로 부모로서의 자격이 증명되는 가장 깊은 시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3개월 후 란이는 다시 본업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그 시점에 단유를 시작할지, 아니면 유축을 병행하며 수유를 유지할지, 우리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하지만 예전처럼 정답을 찾아내려 애쓰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떤 방식을 택했는가’가 아니라, 그 선택에 대해 함께 충분히 이야기했고, 책임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란이는 여전히 매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조율하며 아이를 품고 있고, 나는 그 곁에서 우리가 함께 부모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완전모유수유냐, 혼합수유냐, 혹은 분유를 쓰느냐보다 훨씬 중요한 건, 아이를 먹이는 일 앞에서 엄마와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가라는 걸 나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확신한다. 란이는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다.
아니, 정말 대단하게 잘 해내고 있다. 새벽마다 뜬눈으로 호치를 품에 안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호치에게 단순히 수유를 하는 일이 아니라,
매 순간 사랑을 건네는 일이라는 걸,
우리셋, 서툴지만 단단하게 함께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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