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별 Mar 17. 2022

와인을 몰라도 와이너리 투어는 갈 수 있지!

미션 힐 와이너리

  여동생이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라 생각했던 우리 집에 유학길에 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여동생이 캐나다로 떠나는 당일 우리 가족은 모두 인천 공항에 모여 배웅을 했다. 원래도 당찬 내 여동생은 떠나는 그날도 얼굴에 두려운 기색 하나 없이 출국을 했다. 여동생은 비행기를 한 번 환승하고 캐나다의 캘로나에 도착해서 가족들에게 홈 스테이하는 집에 잘 도착했다는 카톡을 남겼다. 그 후로 나와 여동생은 한국과 캐나다의 시차로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다 내가 캐나다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나의 캐나다 여행은 여동생이 혼자 캐나다 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가족들의 염려와 캐나다에 대한 나의 호기심이 더해진 결정이였다.

  캐나다로 여행을 가기로 한 후부터 여동생과 나는 메신저로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날 때는 나만의 여행 준비 규칙이 있다. 절대로 빠듯하게 여행 일정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규칙이 생긴 데에는 이유가 있다. 때는 바야흐로 대학생 시절 첫 해외여행을 떠난 때이다. 당시 대학교 동기들과 서유럽 여행을 갔었다. 서유럽 여행은 직장인들에게도 부담되는 비용이 필요한데 당시 대학생이던 나에게는 여행 경비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여행 가는 돈이 아깝지 않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을 짜고 그대로 실천했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8시경에 숙소 밖으로 나가고 해가 다 저물어갈 쯤에 숙소에 돌아오는 스케줄을 강행했다. 평소 계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나의 성격이 독으로 작용한 것이다. 게다가 당시 서유럽은 굉장히 더운 날씨여서 뉴스에 폭염주의보가 나오고 있었다. 그 결과 나의 첫 해외여행인 서유럽 여행은 힘들었던 기억뿐이었고 이러한 여행 방식은 나와 맞지 않음을 거금을 지불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여행을 갈 때 대략적인 이동 경로와 숙박 장소, 유명 장소만을 조사하는 정도로 끝낸다. 절대로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어디를 가고 몇 시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 식의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캐나다 여행도 큼지막한 계획만 짰다. 계획을 짜던 중 여동생이 캘로나 근처에 유명한 와이너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와이너리란 단어가 생소하여 인터넷으로 먼저 검색을 해보았다. 찾아보니 와이너리란 “포도주를 만드는 양조장”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와인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 시작하던 쯤이라 여동생에게 와이너리를 꼭 가자고 말을 했고, 여동생은 마침 여기에 와이너리 투어가 있다며 신청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와이너리 투어 예약까지 마치고, 나머지 여행 계획을 대략적으로 짠 뒤 드디어 캐나다로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왼쪽 위/ 오카나간 호수, 오른쪽 위/오카나간 호수와 여동생, 아래/ 미션 힐 와이너리)


  여동생을 만나러 가는 여행인 만큼 먼저 켈로나로 가야만 했다. 캘로나로 가려면 먼저 밴쿠버에 도착한 다음 다시 캘로나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난생처음 보는 작은 크기의 캘로나행 비행기를 타고 약 1시간 비행한 후 드디어 여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낯선 타국에서 여동생을 만난 것이 신기한 나와 달리 내 여동생은 무덤덤하게 나를 맞이했다. 여동생은 캘로나의 유명 맛집, 쇼핑센터, 오카나간 호수, 외국인 친구들을 소개해주었고 며칠 후 내가 기대하던 미션 힐 와이너리 투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넓은 켈로나 길을 굽이굽이 가고 또 버스에 내려 터덜터덜 걸어가면 미션 힐 와이너리가 나타난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미션 힐 와이너리에 들어가면 널따란 포도밭과 푸르른 하늘이 방문객들을 맞이해준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이국적인 풍경인데 나는 잠시 넉을 잃고 얼빠진채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려 야외를 구경한 후 와이너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내부에는 와인과 그 외 여러 가지 상품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갈색톤의 가구가 묵직한 느낌을 주었고 동시에 상품 진열은 아기자기하게 놓여있어 나는 또 한 번 넉을 잃고 구경하고 말았다. 건물 내부에는 아이스 와인을 시음한 후 구매 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아이스 와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이스 와인은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가 다른 와인과는 다소 다르다고 한다.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면 포도알이 얼게되는데, 이때 수확한 포도는 당도가 높아 달달한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포도 재배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의 입장에서는 포도가 얼었다면 먹을 수 있을까란 생각이 컸기에 아이스 와인의 수확 방식이 신기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스 와인 3개를 시음했다. 달달이 품종으로 유명한 모스카토와는 다른 단맛이었다. 3개의 아이스 와인 맛은 미묘하게 달랐지만 대체로 찐득하고 꿀 같은 단 맛이 났다. 너무 새로운 맛의 와인이라 그 자리에서 내 통장 잔고는 생각도 안 하고 바로 덥석 와인을 사갔다.


왼쪽/ 테라스 레스토랑, 오른쪽/ 테라스 레스토랑에서 먹은 와인과 음식들
왼쪽/ 미션 힐 와이너리 와인 창고, 오른쪽/ 미션 힐 와이너리 와인 투어 중 먹은 와인과 치즈


  건물 내부 구경을 마친 후 미션 힐 와이너리 안에 있는 테라스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 테라스 레스토랑은 세계 5대 와인 레스토랑이라는 명성이 있는 곳인 만큼 음식은 물론 분위기와 경치도 아주 좋았다. 테라스 레스토랑은 벽 없이 기둥만 천장을 받치고 있어 미션 힐 와이너리의 풍경이 그대로 펼쳐져 보인다. 그리고 따뜻한 캐나다의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며 맛있는 밥과 와인을 먹을 때 기분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좋았다. 내가 일상에서 고민하던 걱정, 책임감, 수많은 생각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고 그저 행복한 기분만을 느끼며 그 순간을 즐기게 만들었다. 그렇게 오후 햇살을 만끽하고 있음 쯤 와이너리 투어를 할 시간이 다가와 여동생과 함께 투어 장소로 갔다. 우리가 신청한 투어는 와인과 어울리는 치즈를 같이 먹어보는 프로그램의이였다. 바로 와인과 치즈를 먹는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포도밭으로 갔다. 야외에서 포도 재배와 수확 과정의 설명을 듣고 다시 실내로 들어와 포도 제작과정 그리고 저장 창고까지 보여주셨다. 이 모든 과정이 영어로 진행되어 나는 대략적인 내용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었는데 특히 와인 저장 창고가 너무 신나는 경험이었다. 가이드가 지하실로 우리를 데리고 가더니 와인이 보관된 커다란 오크통과 쇠창살 안에 있는 와인 창고를 보여주셨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경했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와인과 치즈를 먹어보는 시간이 찾아왔다. 굉장히 프라이빗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장소로 우리를 데려간 뒤 총 4잔의 와인과 치즈들을 준비해주셨다. 우리가 와인과 치즈를 먹을 때 가이드는 영어로 해당 음식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하지만 안그래도 집중해야 겨우 들리는 영어가 먹는 내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기엔 나는 이 와이너리 투어의 하이라이트를 즐기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 와이너리 투어를 다녀왔다. 와인도 영어도 잘 모르는 나지만 와이너리에서 느끼는 풍경, 기후, 포도 그리고 와인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곳이었다. 그렇게 켈로나는 나에게 너무 좋은 추억과 경험을 선물해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쁘고 맛있기까지 한 술, 와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