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코 모스카토 다스티DOCG
와인에 대해 하나도 모르던 시절, 친구들과 자주 마시던 포도의 품종이 있었으니 바로 모스카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모두 술을 썩 잘하지 못했고 늘 달달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으니 모스카토란 품종에 푹 빠진 건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언제든 여행을 갈 때면 우리는 마트에 들려 모스카토라고 적힌 단어만 보고 와인을 집어왔다. 라벨지에 적힌 다른 단어들의 의미는 하나도 모르는데도 모스카토라는 단어가 주는 믿음이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오션뷰의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푼 후, 모스카토와 같이 먹을 음식을 준비한다. 당시 마리아쥬라는 단어도 모르는 우리에게 모스카토와 어울릴 안주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없다. 메뉴는 무조건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소고기 스테이크다. 스테이크 부위 중 가성비 좋은 부채살을 사 온다. 부채살은 가운데 힘줄을 중심으로 살이 있는 소고기다. 스테이크 부위 중 특별한 맛을 가진 소고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적당히 씹히는 맛과 무난한 육즙이 있는 가격 대비 좋은 부위라고 생각한다. 소고기에 소금과 후추로 시즈닝을 한다. 후추는 청정원에서 나온 통후추를 쓴다. 괜히 그라인더로 통후추를 갈면,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투명 비닐봉지의 세로 단면을 가위로 자른 후 시즈닝 한 부채살을 올리고 올리브 오일을 뿌려 마리네이드를 한다. 마리네이드는 냉장고에 한두 시간은 둬야 한다는데 놀러 온 우리에게는 그 시간을 기다릴 인내심 따위는 없다. 적당히 마리네이드 흉내를 낸 후 달궈진 팬 위에서 부채살을 굽는다. 기분 좋게 익는 소리가 난다. 비 내리는 소리와 비슷하지만 그 소리보다는 어딘가 가볍고 경쾌하다. 구울 때 버터와 마늘을 같이 굽는다. 이때 녹은 버터를 스테이크에 끼얹어 주며 부채살 스테이크를 굽는다. 나는 미디엄 레어를 좋아하므로 너무 오래 익히지는 않도록 주의한다. 부채살 스테이크가 다 구워지면 냉장고에 넣어둔 모스카토를 꺼낸다. 모스카토는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칠링 해서 마셔야 좋다. 때론 우리는 살 얼음 모스카토를 먹겠다며 간혹 냉동실에 넣어서 먹기도 했었다. 물론 와인의 복잡 미묘한 향과 맛은 사라지지만 먹을 때 어떠한 틀 안에 가둬두고 먹는 것만큼 고리타분한 것도 없다.
모스카토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여행에서 웃으며 먹기 좋다. 향긋하게 올라오는 향이 먼저 우리를 기분 좋게 한다. 기분 안 좋은 사람한테 은근슬쩍 달달한 음식을 내밀어주면 그 사람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처럼 단 맛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흥행 보증수표와도 같다. 그리고 꿀이 두세 방울 들어간 것 같은 빛깔과 살짝 보이는 기포를 보며 기분 좋게 잔을 흔든다. 그리고 슬쩍 입을 대면 달달한 모스카토의 맛이 느껴진다. 거기에 도수는 다른 와인에 비해 낮아서 금세 한 병을 먹게 된다. 그리고 또 다음 모스카토 와인을 냉장고에서 꺼내게 만든다. 다음 모스카토 와인을 꺼내러 가던 와중에 모스카토 와인에 눈에 팔려 보지 못했던 바다 풍경이 넓은 창으로 보인다. 파도의 투명한 파란색 사이로 하얀 물결이 보인다. 그리고 그 사이로 햇빛이 만든 반짝임이 보인다. 그 순간 어쩐지 바다에 시선을 뗄 수 없는 기분을 느낀다.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다 어쩐지 이 모스카토 와인과 바다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냉장고에서 모스카토 와인을 하나 더 꺼낸 뒤 친구들에게 간다. 친구들은 깔깔 웃으며 냉동고에 얼린 모스카토 와인은 언제 꺼낼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나에게 모스카토는 그런 품종이다. 와인에 대해 알지 못해도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고, 기분을 들뜨게 만들어주는 그런 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