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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Nov 07. 2021

간호사에게 필요한 자본

간호 브랜딩

 응급실의 경우에는 전시상황에서 응급환자와 비응급환자를 나누는 것과 유사한 기준으로 만들어진 척도로 내원하는 환자들을 분류한다. 그렇게 해야 정말로 더 급한 응급환자에게 우선적인 처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등급 중 가장 낮은 등급, 즉, 가장 지금 당장 응급처치가 필요하지 않은 환자들이 배정되는 구역을 경증 구역이라고 한다. 일반인들에게 병원이라고 하면 주사(여기서 말하는 주사는 엉덩이 주사가 아닌 수액-정맥 주사를 말한다.)는 무조건 침대에 누워서 맞는 곳으로 여겨질 것이지만 우리 병원의 경우 경증 구역에는 침상이 없다. 경증 환자임을 감안하고 응급실이 그렇게 지어진 것인지 아니면 경제적인 부분을 감안하여 그렇게 건축이 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일단은 그러하다. 그리고 아마 2020년 설 당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응급실에 경증 환자가 물 밀 듯이 들어오는 날은 사실상 '항상'이지만 특히나 많이 내원하는 날은 대표적으로 두 번 정도가 있다. 설날과 추석이 그러하다. 한 번쯤 주변 지인들 중에 명절에 잘못 먹고 탈이 나 응급실에 다녀왔다더라 라는 등의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응급실을 가기에 딱 좋은 조건이 아닌가? 각설하고, 그 당시 나는 딱 그 경증 구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 응급실의 경우에는 경증 구역에 간호사 두 명을 배치한다. 그리고 환자 수의 제한은 없다. 30명이고 40명이고 내원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환자 수의 제한은 없지만 인력은 제한적이다. 그리고 그날도 어김없이 한 구역에 동시 재실 환자수는 40명에 육박하였고 보호자를 포함하면 80명 가까이 되는 환자들을 간호사 2-3명이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날이면 항상 대기로 인해 불만이 폭주하게 되고 집에 가겠다는 환자 보호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날도 역시나 역시였다. 


 보통 진료를 보지 않은 환자의 경우에 집에 가는 방법은 간단한다. 접수를 취소하고 아무런 비용의 지불 없이 귀가를 하면 된다. 단, 그 환자에게 아무것도 행해지지 않았을 경우에 한해서이다. 하지만 그날 그 환자의 경우엔 **positional blood pressure check라는 행위 처방이 있었고 귀가를 원한 것은 그 이후에 결정된 것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 행위에 대한 수가는 지불하고 귀가를 하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수가 조회를 해보았는데 굉장히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0'원. 내가 그 환자에게 했던 총 4번의 혈압 측정은 그저 무료 봉사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환자는 그렇게 귀가하였다. 


 물론 혈압은 집에서도 혈압 측정기를 통해 얼마든지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병원에 와서 의학적 의의를 두고 혈압을 측정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그 환자의 경우엔 어지럼증에 대한 여러 가지 원인들 중 한 가지를 감별할 수 있는 명확한 의료 행위였기 때문에 더더욱이나 수가가 매겨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행위와 유사한 '간호행위'들은 무료인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간호를 경영적으로 풀어내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자본인 '수가'가 턱 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현대에 오기까지 그 '수가'를 늘리기 위한 굉장히 많은 노력들이 있어 왔던 것으로 알고 있으나 항상 법 재정에서 막혀왔다. 결론적으로는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간호법'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는 너무나도 근본적인 원인이므로 이 글에서는 넘어가도록 하자. 그렇다면 '수가'라는 자본을 쟁취하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자본은 무엇인가? 아주 간단하다. '수가'라는 자본이 필요하다고 말할 '간호사'라는 자본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간호사'라는 자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간호사'가 필요한데, 그것이 선배 간호사다. 쉽게 말하자면 지혜를 빌려줄 수 있는 경험이 많은 간호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용성의 힘을 가지고 있는 간호사들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내가 내 월급을 늘리자고 '수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큰 착각이다. 간호사에게 있어 '수가'라는 것은 단순히 내 월급을 뜻하는 것이 아닌 한 직업의 존명을 달리하는 차원이 개념이다. 자본주의 사화에서 직업이 취할 수 있는 급여는 그 직업이 현 사회에서 얼마큼이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인정받는지를 순도 100%로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간호사에 대한 직업의 대중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가장 편한 방법은 지금보다 월급을 2.5배 정도 더 많이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이 직업을 선택하려고 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대학교 간호학과의 입시 등급이 높아질 것이며 수요가 굉장히 늘어날 것이다. 즉, 수가를 늘리면 대중들이 알아서 움직이고 우리가 환자에게 행하는 행위의 무게감이 달라진다. 


 사실, 우리가 하는 행위는 가치를 매기기 전부터 이미 무겁다. 


- 간호 브랜딩에서 계속.  




**positional blood pressure check : 기립성 저혈압을 감별하는 행위로 혈압을 총 4번을 측정하는 것인데, 누워서 한번, 일어서서 3번을 측정 한 뒤에 수축기압, 이완기압의 차이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주로 어지럼증으로 syncope event가 있었던 환자들에게 시행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0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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