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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Jan 21. 2022

Burn out

번아웃 증후군

 며칠 전 즐겨봤었던 만화를 다시금 시청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 적이 있었다. 감동스러운 순간도 전혀 아니었고 비극적이거나 슬픈 상황도 전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고생하며 노력했던 조연 캐릭터가 성장하여 일 순간 그 노력에 대한 빛을 내기 시작하는 정도의 장면이었는데, 감격에서 눈물이 맺히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스스로 당황스러울 정도로 눈물을 쏟아냈다. 감정을 추스르고 나서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나도 모르게 '왜 운 거야 도대체?'라고 내뱉었다.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극도의 피로        

(로켓의) 연료 소진        

 Burn out의 사전적 정의이다. 지속적으로 멈추지 않고 무언가 하다 보면 언젠가 지쳐서 쉬고 싶어 지게 된다. 하지만 성취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동기부여를 받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몰두하기 때문에 스스로 지쳐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샌가 자기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데, 문제는 성취주의가 너무나도 강한 나머지 자극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스스로에게 더 채찍질을 하며 새로운 자극을 찾게 된다. 위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급격하게 몸과 마음이 지쳐져 있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고 영문도 모른 채 전원이 꺼진 컴퓨터처럼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상태를 '번아웃'상태라고 부른다. 정체기, 슬럼프를 넘어선 소진 상태이다.  

 그리고 지금 인생 최장기의 소진 상태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재수생활을 하던 때에 중간점검차 현 상태를 기술하여 제출하는 자기소개서 같은 것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질문 중에 '슬럼프가 온다면 어떻게 극복하겠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내가 썼던 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슬럼프가 온 줄도 모르게 열심히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겠다.' 이 얼마나 성취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의 마인드인가. 그 당시 담당 선생님께서도 그렇게 열심히만 하다가는 언젠가 지쳐서 쓰러지게 될 수도 있으니 완급조절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해주셨던 것이 기억난다. 물론 그때의 나는 재수생이라는 신분으로 굉장한 절박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완급조절이란 그저 사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생을 한 걸음, 아니 열 걸음 정도 물러서서 보면 굉장히 긴 마라톤이기 때문에 완급조절은 필수가 아닐까 싶다. 문제는 지금 나에게 완급조절이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방법 자체를 모른다면 어떻게 그 난관을 넘어설 수 있는가이다. 


 그래서 오늘 운동을 마치고 그냥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지하철을 타고 근처 유명 향수 브랜드 매장을 방문했다. 언젠가 맡았던 향이 나에게 꽤나 큰 상쾌함을 선사했던 것을 기억하고는 그 향을 찾아달라고 직원분에게 부탁을 드렸고 몸이 건조한지라 바디로션으로도 가능한지 여쭈어 보았다. 직원분은 같이 사용하면 좋은 바디 미스트도 함께 추천을 해주셨고 평소에 인터넷으로 가격을 비교해보곤 하는 나였지만 그런 것 조차에도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 바로 구매를 하였다. 직원분은 나에게 여러 가지 샘플들을 같이 제공해주시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고 그 짧은 몇 분이 나에게 커다란 휴식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렇게 큰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벗어던지고 가볍게 샤워를 마친 뒤 한껏 기대에 부풀어 바디로션을 바르고 미스트를 뿌렸다. 그 순간만큼은 향에 지배된 나머지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사실 바디로션과 미스트를 사고서 돌아오는 길에도 눈물이 날 뻔했다. 누가 보면 울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무지 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반박자 빠르게 구매를 한 뒤에 어서 집에 가서 사용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나 스스로가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것처럼 보여서 안쓰러웠다. 좀 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마음 편하게 물속에서 떠다니는 것처럼 나 스스로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을까? 어쩌면 그저 좋은 향으로도 좋아질 수 있던 내 기분을 왜 이제까지 돌보지 못했던 걸까 싶기도 하다. 작년 한 해 동안 그렇게 나 스스로를 간호하는 사람이 되어 환자를 돌보겠다고 다짐하며 만들었던 간호사 달력이 한편으로는 나에게 커다란 마음의 짐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던 것 같다. 그렇게 12월 끝자락까지 나를 놓아주지 못하고는 남들과 다를 것 없이 바쁘게 1월을 맞이하였고, 남들에게는 이제 좀 쉴 수 있을 것 같다라며 말하면서도 올해는 무엇을 이뤄내고 계획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서는 숨 막히는 리스트를 만들었던 것 같다. 정말 역설적이게도 지금 내가 가장 먼저 성취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아무것도 안 하기'였던 것 같다. 


 후각은 오감 중 가장 피로에 빨리 빠지게 되는 감각이기 때문에 같은 냄새를 지속적으로 맡다 보면 수용을 하지 못하게 된다. 여러 가지의 향을 바꾸어 가면서 맡는다면 일시적으로 해결책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끊임없이 향을 바꿔가며 코에게 쉴 시간을 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후각 자체를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성취주의 성향이 강한 자들에게 후각이 성취를 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면, 쉼이라는 것을 사치로 느껴 지속적으로 다른 동기부여 및 자극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다가는 그 노력을 행하는 능력 자체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냥 쉬는 것이 필요하다. 이유를 매기지 않은 정말 순수한 휴식이 필요하다. 지금의 나에겐. 


     

 갑작스럽게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 항상 즐겁게 하던 운동이 재미가 없어지고 심지어 어떻게 운동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상황이 온 것은 분명 나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 문제가 그렇게 달갑지는 않겠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나 스스로가 지쳐있음을 인정하자. 그리고 아무런 대가 없는 휴식을 즐기자. 

내일의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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