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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Jan 07. 2022

항상 그곳에 있었다.

내 옆에 항상 있는 것의 소중함에 대하여 

 초등학교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장 선거를 하는 날 한 친구가 단상 앞에서 말했던 문장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항상 묵묵히 더러운 쓰레기를 온몸으로 받아주는 저 쓰레기통 같은 반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초등학생들 뿐인 공간이었기 때문에 아마 예상했던 것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 친구도 머쓱했던 나머지 옅은 웃음을 지었지만 나머지 하고자 하는 말을 마친 채 자리로 들어갔다. 그 친구는 비록 반장이 되지는 못했지만 무려 20년 정도가 지난 30살의 나에게 잊히지 않는 강력한 문장을 선사했다. 부모님이 알려주었을지 혹은 본인이 스스로 고민 끝에 만들어낸 비유였을지는 알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내 주변에 항상 묵묵히 본인의 할 일을 다하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존재하기에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충분했다. 


 난 21개월 간의 군 복무를 '성북 경찰서 의무 경찰 방범 순찰대'에서 보내게 되었다. 방범 순찰대이지만 주로 하는 일은 서울 전역에 있는 대규 모 집회 및 시위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었고 마찬가지로 서울 전역의 주요 기관들의 경계 근무를 서는 일을 하였다.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나에게 근무를 서는 시간은 그저 사회에 돌아가게 되면, 휴가를 나가게 되면 어떤 계획을 세워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사회의 경계선에서 군 복무를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었기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도로를 달리는 새로 나온 신형 차 모델을 구경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그런던 중 내가 군 복무를 시작하기 얼마 전 시점에 서울 시내 주요 기관의 기습 시위 사건이 있었음을 듣게 되었다. 원인으로는 특정 부분의 경계 근무 미비라고 할 수 있었는데 쉽게 말하면 경계 근무 인원이 부족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경계 근무인원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근무를 서게 될 때 정말 집중해서 임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될 정도의 사명감을 얻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서있음으로써 내가 없었다면 일어날 수도 있었을 좋지 않은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 공간에 누군가 항상 24시간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생각에서, '공간'과 '누군가'의 범위가 무한이 확장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비로소 후임들에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필요 최소한도의 의의를 설명할 수 있는 데에 다다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응급실 간호사로서 지금도 나는 그러한 공간에서 누군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병원이란 곳이 그렇다. 특히나 24시간 입원은 안될지언정 24시간 '진료'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응급실이라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돈이 한 푼 없어도, 지금 당장 한 마디 할 수 없는 상태라도, 그 사람이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 할 지라도 그 모든 것은 진료 및 응급처치의 후순위일 뿐 응급실은 환자라면 모두에게 열려있다. 그리고 그 365일 24시간 1분 1초를 지키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의사, 간호사, 조무사, 등등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기에 그 공간은,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응급실에서 운명을 달리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만일 전국의 응급실 진료에 시간제한이 생긴다면 그야말로 영화에나 나올만한 대재앙이 오지 않을까 싶다. 밤마다 여기저기서 환자들이 속출할 것이고 사망자가 늘어만 갈 것이다. 그 이상은 상상하지 않기로 하자.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런 의료체계에 대해 소중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번이라도 밤중에 응급실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이런 마음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응급실을 방문하지 않았던 사람이 더 많아서 일까? 글쎄, 오히려 너무나도 당연하게 어딘가에 존재하기 때문인 게 아닐까 싶다. 


 대규모 시위가 한 바탕 일어나고 나면 시위가 끝난 자리는 정말 아수라장이다. 하지만 그다음 날 현장을 다시 방문하면 흔적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다. 한 선임이 했던 말이 있다. '진짜 놀랍지 않냐? 난 그 시위 현장보다 시위가 끝나고 이걸 다 정리하신 미화원 분들이 더 대단한 것 같아.' 왜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낙엽이 즐비하게 늘어져있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항상 길을 깨끗하게 닦여져 있다. 그 공간에도 '누군가'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열심히 친구들과 놀고 난 뒤 땀에 젖은 옷을 집어던지고 샤워를 하고 잠에 들어도 다음날 일어나고 나면 다시 입을 수 있는 새 옷들이 준비해주시는 어머니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항상 곁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가치의 중요함을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필요할 때에만 그 가치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나로서도 근무를 하는 동안에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지만, 근무가 끝나고 나면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누구나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고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면, 스스로를 인정하자. 그리고 결국 우리 모두는 항상 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대한 중요함을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22년에는 모든 작은 행위들의 중요함이 그 가치를 인정받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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