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섭 Dec 07. 2021

가장 가까운 타인 #1

엄마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단어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아마 대다수 막힘없이 '어머니'라는 단어를 내뱉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했기 때문에라는 '어떤 이유'에서 그 말을 내뱉는다기 보단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란 그냥 그런 존재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따로 떠올릴 때면 항상 2012년으로 돌아간다. 2012년은 내가 재수를 하던 해이다. 학창 시절 난 나름 상위권인 성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고3 때 수능에서 처참히 패배했고 기숙학원을 들어가니 마니 하는 속에 그냥 집 근처 재수학원으로 가기로 결정했던 때였다. 재수학원은 멀지는 않았지만 교통편이 조금은 번거로운 정도였는데, 학원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있었기 때문에 새벽같이 준비해서 차를 타러 나갔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어머니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의 등원 길을 따라나서셨다. 조금 늦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졸린 눈을 비비는 나를 뒤로하고 전력질주를 하며 행여나 버스를 놓칠까 횡단보도를 달리셨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보며 난 오히려 짜증을 냈던 기억이 있다. 아마 나 때문에 어머니가 저렇게 새벽같이 달리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죄송한 마음이 어린 표현으로 표출되었던 듯하다. 


 내가 어머니를 어머니이기 전에 여자로, 그리고 여자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어머니와 둘이서 떠나는 여러 번의 해외여행길에서였다. 난 평소에도 어머니와 시간을 굉장히 많이 지내는 편이었는데,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2-3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날이 허다했다. 해외여행을 수차례 다녀오면서 어머니와는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할 수 있었는데, 사실 대화를 통해서 엄청 많은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길을 걸으면서,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던 것을 보면서, 이곳에 와서 보고 싶어 했었던 것을 보거나 먹으면서 변화하는 어머니의 표정과 몸짓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는 나에게 어머니였지만, 어머니는 내가 있기 이전에 한 사람이자, 여자였구나.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맞이하면서 바라고 원했던 많은 부분들을 감수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어머니는 올해 60세가 되셨다.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환자들의 연령대가 이제는 나의 어머니의 연세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그 아래인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그만큼 어머니도 이제 언제든 세월이 지났다는 이유로 병원을 가야 할지도 모르는 나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나이를 미루어짐 작해 보건대 나에게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체감한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남아있는 1분 1초를 최대한 활용하여 잘해보려고 한들 후회 없는 순간만 존재하지는 못하리라 또 확신한다. 엄마는 그런 존재니까. 


 어머니는 나와는 분명 다른 객체이다. 가족이라는 사회적 가장 작은 집단으로 묶여,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 나와서 제일 가까운 관계에 있는 타인이다. 하지만 그 타인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한 몸처럼 느껴지는 것이 또 어머니라는 존재이다. 실제로 10개월 간 한 몸이었기에. 그리고 2012년 장장 10개월이라는 시간을 언제나  어두운 새벽을 뚫고서 내 앞에서 달리셨다. 2021년 또다시, 여전히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작은 등불 아래 언제나 먼저 하루를 시작하신다. 그러니까 어머니란 그런 존재 같다. 자식을 두고 있는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타인으로서, 본인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언제나 자식보다 앞서가야만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지치고 힘든 존재. 나는 그런 어머니를 응원한다. 


 아마 내가 죽기 전까지 어머니의 그 마음은 이해하지 못하리라. 내가 타인이 되어 타인의 입장을 100% 이해할 수 없듯이 어머니의 깊은 속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가까운 타인으로서 이해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행하는 효라고 생각한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이미지 출처 : https://www.genie.co.kr/detail/songInfo?xgnm=71718257


 

 

작가의 이전글 시작도 없었고 끝날 것도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