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 동국사길 16에 동국사라는 불교 사찰이 있다. 근데 동국사는 일제 시절에 조성된 일본 사찰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일본식 사찰이다. 최초 설립 당시 일본 종단은 조동종이었고, 창건 당시 사찰명은 금강사였다. 이 금강사를 해방 후 동국사로 개칭하여 우리의 사찰로 전환했다. 비록 적산 사찰이었지만 우리가 접수하여 우리식의 종교의례로 신앙 본연의 향을 지피우겠다는 선언 아닌가.
동국사에는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역사 상징물이 두 가지나 있다. 소녀상과 참사문비이다.
한 때 일제 강점기에 자행되었던 만행에 경각심을 울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 소녀상을 세웠다. 군산에는 2015년에 동국사에 소녀상을 세웠다. 고광국 작가가 제작한 위안부 기림 청동 평화 소녀상이다. 소녀상 앞에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해서 검은색 타일 77장으로 만든 연못이 있다. 검은 타일은 대한해협과 거울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다른 곳에는 거의가 의자에 앉아있는 소녀상인데 여기 소녀상은 서있다. 대한해협 너머 일본을 응시하며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자는 의미를 던지고 있는 것일까.
동국사 소녀상
특히 동국사에는 ‘참사문비’라는 특별한 비가 있다. 참사문비는 참회하고 사죄한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비문에는 일본제국주의에 불교가 영합한 잘못에 대한 반성과 속죄의 변이 담겨 있다. 이 비는 2013년 일본 이치노헤 스님의 주도로 건립되었는 데 일본 불교 조동종에서 발표한 공식 문서를 발췌해서 비문으로 새겼다. 일제 시절 종교가 종교의 본분을 망각하고 제국주의에 편승한 잘못에 대한 통렬한 반성문이다.
비록 일본 국가 차원에서 진심 어린 사과는 미흡할지라도 양심 있는 종교인들의 참회는 바람직한 일이다.
동국사 참사문비(원문)
한일 정부 간에 엉켜진 갈등 실마리는 쉽게 풀어질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상대 국가의 양심 있는 단체와는 교류를 이어가야 한다. 끊임없이 바른 역사를 일깨우기 위해서는 양식과 진정성을 가진 세력들과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양 국가의 양심 세력이 확장되어야 올바른 한일 과거사를 정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 때 조성된 적산 가옥이나 구조물들은 당시 역사의 흔적을 각인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물들은 성찰과 반성을 위해 과거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역사의 기억물이 된다. 가능한 한 의미 있는 구조물들은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쓰라린 역사의 자취라 해서, 대면하기에 자존심이 상한다고 해서, 혹은 기억하기에 역겹다고 해서 역사의 흔적을 없애고 지우는 것은 역사적인 태도가 아니다.
실제 지금까지 세계사적으로 이어온 역사의 유물이나 유적들은 후대가 전시대의 자취를 보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표적으로 찬란한 세계 유산으로 각광받는 터키의 성소피아 성당이나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도 마찬가지이다.
터키의 성 소피아 성당은 정복의 시대에 가톨릭 성당, 정교회 성당, 이슬람교의 모스크 등으로 변신하면서 보존되어 왔다. 종교 패권이 팽배했던 당시 지배 종교 세력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반한다고 성당을 파괴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경이로운 세계 문화유산인 성소피아 성당은 사라졌을 것이다.
성소피아 성당 안<구글이미지.바티칸뉴스>
스페인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도 마찬가지이다. 이 궁전은 무함마드 1세 무슬림 왕조에 의해 세워져 여러대에 걸쳐 증축된 무슬림의 예술성이 빛나는 건축물이다. 이 궁전도 몰락의 위기가 없진 않았다. 한 때 국토회복 운동으로 그리스도교 세력권이 이 궁전을 함락시킨 적이 있었다. 이때 이교도의 궁전이라 해서 파괴될 수도 있었으나 당시 지배 왕족 이사벨여왕은 알람브라 궁전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알람브라 궁전은 이제 종교를 떠나 건축사적으로, 미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찬란한 인류 모두의 자산이 되었다.
알람브라 궁전 <구글이미지.국제신문>
역사란 상호 대립적인 세력들 간에 정복하고 정복당하는 흐름이었다. 이 과정에서 신권력이 구권력의 업적들을 파괴해 버리면 지난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는 역사적인 유물들은 후대로 전수될 수 없다.
20여년 전 탈레반의 비역사적이고 몰지각한 행태를 전 세계가 목도한 적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세계 최대 규모의 석불 바미안을 ‘우상 숭배’라며 파괴한 사건이다. 오랜 시간들의 노고와 정신으로 이룩한 인류의 소중한 문화 자산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뉴스를 통해 폭파되는 장면을 목격한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은 경악했다. 바미안 석불이 파괴됨으로써 석불이 현시하는 수천 년 전의 종교와 문화적 가치는 상실되었다. 석불에 새겨진 역사성과 예술성도 영구히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다.
바미안 석불 : 폭파 전과 폭파 후 <구글이미지.현대불교신문>
역사 유물은 싫든 좋든 그 자체가 역사성을 품는다. 중요한 건 역사적인 유물 그 실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며, 어떤 기억을 되살려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특정 역사적인 유물이 심기가 불편하다 해서 임의로 창산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적인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역사의 자취를 직시하고 선명히 해석하여 후대에 그것의 역사적인 의미를 전수해야 마땅하다.
우리의 역사에도 이와 유사한 씁쓰레한 기억이 있다. 민족의 자존심과 감정에 반한다는 이유로 조선총독부 청사를 일거에 철거해 버렸다. 조선총독부는 일제가 조선을 총괄한 핵심기구이자 통치 본산이다. 일제 통치가 엄중했던 만큼 웅장했다. 조선총독부는 식민 지배의 상징성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 안에는 조선 통치와 폭압 지배의 역사가 담겨있었다. 더불어 독립운동가들의 저항과 맞섬의 역사도 내재되어 있었다.
해방 후 조선총독부는 용도 변신을 거듭하면서 우리의 역사도 아로새겼다. 이곳에서 대한민국 정부 선포식이 있었으며, 제헌의회 의사당으로 사용되었고, 중앙청으로 명명되어 대한민국의 정부청사로도 활용되었다. 1920년대 당시 동양에서 제일 웅장했다는 조선총독부는 그 자체가 역사적이자 건축학적으로 의미 있는 유물이었다.
강제 병합하여 우리 민족을 폭압적으로 통치한 일제통치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조선총독부를 해체하고 흔적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이 역사적인 정답일까. 특히 조선총독부는 조선 왕조의 중심 터를 허물고 세웠기 때문에 일제통치의 본질을 선명히 증언하는 역사적인 증거물이었다. 일제 통치의 핵심을 간직했던 조선총독부를 우리의 역사로 접수할 수는 없었던가.
쓰라리지만 우리의 역사 유적으로 수용하여 그곳에 우리의 역사를 새겼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면 평화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근대건축문화관.. 처럼. 조선총독부의 역사적 상징성에 걸맞게 이곳에 우리의 역사를 각인할 수는 없었을까. 건물은 바뀐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 새롭게 변신할 계제를 지뉘고 있는 법이다.
역사 현장이 사라지면 역사의 기억도 희미하게 잊혀진다.
철거되어 사라진 구 조선총독부
보전되어 현존하는 구 대만총독부 <구글이미지.한국일보>
이렇게 볼 때 군산 동국사의 주체적인 접수 선언은 지혜롭다.
일제 때 일본인이 건립하여 일제에 복무한 일본 사찰 금강사. 이 일본 사찰을 해방 후 불교 조계종 동국사로 개명하여 종교 본연의 우리 사찰로 탈바꿈시킨 결단이 참신하다.적산 사찰을 파괴가 아니라 보존을 통해 재탄생시킨 혜안이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