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작은 것이 아름답다

멕시코 과나후아토

by 갈잎의노래

과나후아토에는 옛것이 많이 살아 움직인다. 그중에도 길거리를 걷다 보면 그림에나 나올 법한 차가 등장한다. 우리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추억의 차이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기억이 있거나 문화 포스터 등에서 가끔씩 접할 수 있는 차종이다. 바로 폭스바겐의 비틀이다.


비틀은 딱정벌레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작고 깜찍한 이미지를 지뉜 차여서 붙인 애칭인데 차의 별칭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지만 과나후아토 거리거리에서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볼수록 귀엽고 깜찍해 실물 차량이 아닌 장난감 차 같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더 크고 더욱 넓은 것을 선호하는 확장 심리 속에서 비틀의 이미지는 축소의 미를 환기시킨다.


과나후아토에서 비틀은 다종다양한 첨단 차종들의 홍수 속에 묻혀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도로를 활보한다. 아니 운이 좋게도 다른 도시가 아닌 과나후아토에서는 더욱 비틀의 진가는 돋보인다. 과나후아토의 안성맞춤 차 같다. 과나후아토 도심 도로는 주행선이 곡선형이 많다. 옛길을 토대로 정비한 도로가 많아 직선으로 도로가 반듯하지 뚫리지 않았다. 더구나 도심의 도로 폭은 일반 대도시의 도로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좁다. 양방향 차선은 아예 드물고 곳곳에 일방통행식으로 도로가 구획되었다. 이런 도로 환경에 제격인 폭스바겐의 비틀은 과나후아토에서 제 세상 만난 격이다.


폭스바겐의 비틀이 최초 생산된 년도는 역사를 무려 80년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비틀은 1936년 이 땅에 탄생했다. 30년대의 고전풍을 품어내는 차종이다. 최초 생산연도가 나이 든 세대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하다. 물론 모델 변경을 통해 몇 년 전까지도 생산된 적이 있긴 하지만 비틀의 컨셉은 거의 비슷해 모델이 바뀌어도 초기 향수를 은근히 품고 있다.


비틀 탄생에는 히틀러가 일등공신이다. 비틀은 독일 국민차를 만들어 달라는 히틀러의 의뢰를 받고 포르셰가 설계한 모델이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군용차로 생산 활용되었다. 2차 세계대전물 영화를 보면 독일 장교들이 비틀을 타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작고 조그마한 차지만 나름 탱크와 장갑차, 트럭, 짚차등 크고 강한 군용차들의 틈에 끼여 당당히 전쟁 중에 맡은 임무를 수행했다. 히틀러도 비틀이 마음에 들어 자주 비틀을 타고 사열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히틀러의 제2차 세계대전과 맛물리면서 이후 비틀은 1930년대 독일풍의 냄새가 물씬 나는 작지만 단단하고 야무진 차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전후 미국은 경제 대국으로서 과잉과 과소비에 흠뻑 젖었다. 거리에는 배기량이 크고 큼직한 대형 차가 대세를 이루었다. 이즈음 미국에서 비틀은 히피들의 상징이 되었다, 기성세대를 비판하고 기성 권위를 거부했던 반문화의 아이콘 히피들은 작고 경제적인 비틀을 좋아했다. 이들은 작지만 개성 당당한 비틀을 통해 넘쳐나는 미국 과소비 문화의 허세를 비아냥하고 싶었다.

독재자 히틀러의 명령으로 탄생한 차가 권위주의에 저항하고 기득권에 반항했던 히피들의 상징물이 되었다니 세상사의 아이러니이다.


초대 1세대 비틀은 1938년부터 2003년까지 생산된 차종이다. 2003년에 멕시코 푸에블라 공장에서 마지막 차량이 출고되면서 단종되었다. 이어 1세대 비틀 모델을 변경한 ‘뉴비틀’ 모델이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출고되었다. 이후 재차 변경된 제3세대 비틀인 ‘더비틀’이 2011년에서 2019년까지 생산되어 비틀의 명맥을 유지하다 마침내 2019년 비틀은 완전히 단종되었다.

90년에 육박하는 비틀의 역사는 추억을 불러오고 향수를 지핀다. 과나후아토에는 오래된 역사 건축물과 옛 도시 구조만 향수를 불러오는 것이 아니다. 최신예의 승용차에게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어깨를 겨루며 거리를 질주하는 비틀도 과거이다. 아직도 도로를 활보하는 1930년대 풍의 비틀도 과거를 소환한다.



비틀은 첨단과 현대의 대변인이 아니라 그리움과 향수의 대변인이다. 비틀이 지나가면 불현듯 그리운 과거의 향수가 잔잔히 피어난다, 비틀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아직도 비틀은 과나후아토에서 당당하다,

지금도 과나후아토에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매거진의 이전글불편함에서 맛본 담백한 편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