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 보면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된다. 독특한 지역 축제나 행사는 색다른 체험이 된다.
통상 머무르는 여행지역의 관광지는 정형화되어 있다. 그런데 여행지에 머무르는 동안 일반 관광에서 접할 수 없는 지역성이 짙은 로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행운이다. 우연히 과나후아토 골목 동네에서 이곳의 짙은 풍습이 배인 문화를 맛보았다.
저녁에 무렵에 거리에서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렸다. 일군의 악단이 울리는 나팔소리와 북소리였다. 기념식 가두 행렬을 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행렬이 이동하는 건지 요란하게 울리던 나팔 소리와 북소리는 소리가 작아지면서 행렬이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갑자기 궁금했다.
나팔소리와 북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현장을 찾아 거리로 나섰다. 무슨 행렬일까. 무엇을 기념하는가. 희미하게 울리는 행렬 연주소리를 따라잡기 위해서 무작정 음악이 울리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야에서 곧 사라질 듯한 행렬 군이 언덕 골목길로 겪어 들어 아동하고 있었다. 이동 꼬리 현장을 목격하고 재빨리 따라붙었다.
군복을 입은 일군의 사람들로 구성된 군악대가 나팔을 부르고 북을 쳤다, 군인들의 행사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군복 복장을 한 사람들이 일반적인 젊은 군인들이 아니었다. 청년층, 장년층, 소년층으로 연령대별로 다양하게 구성된 악단이었다. 군복을 착용했지만 정식 군인들은 아니고 다양한 연령의 구성원들로 편성된 행사 악단이었다. 왜 화려한 연주복이 아니라 군복을 착용했을까?
음악 소리에 맞춰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골목길은 언덕배기 길이었다. 선두에는 군복 입은 악단 사람들이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면서 골목길을 올라가고 있었고, 그 뒤를 이어 울굿 불긋한 깃발을 든 사람들과 다수의 사람들이 따라 올라갔다.
10여분 올라가니 선두 그룹 음악대가 멈추고 이어 뒤따르는 일행도 멈추었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오르막길 동네 비탈길에 행렬들이 군집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한 것 같았다. 의아해 살펴보니 바로 동네 한편에 자그마한 종교 사당이 있었다.
옆 주민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 행사의 성격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성미카엘 관련 행사란다.
성미카엘은 천주교에서 찬양받는 천사이다. 미카엘은 하늘의 전쟁에서 악마 세력을 무찌른 선하고 용맹한 천사이다. 악의 세력과의 대결에서 하느님의 군대를 이끄는 지휘관이다. 가톨릭 신자로부터 열렬히 찬양받고 흠모받는 천사이다. 나중 심판날에도 미카엘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애쓰는 선한 천사로 등장한다.
나팔수와 북치기 악단들이 모두 군복을 착용한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악을 물리치는 하느님의 미카엘 군대를 험모한 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남녀 꼬마애 두 쌍이 각각 왕관을 쓰고 망투를 두르고 성스러운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아마 오늘의 행사에서 성미카엘의 축복을 받고 신앙심이 깊고 악을 물리치는 훌륭한 신앙인이 되라는 축복식의 주인공인 것 같았다.
사당 안에는 미카엘의 형상과 상징들이 성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남녀 한 사람이 나서서 작은 인형에게 옷을 입히고 왕관을 씌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한참 후에 작은 인형에게 아름다운 옷이 입혀지고 금관이 씌어졌다. 성 미카엘 천사 형상이었다. 장식된 인형을 두 사람이 높이 쳐들고 구호를 선창 했다. 선창자가 어떤 축복의 메시지를 선창 하면 사람들은 후렴구를 따라 했다. 미카엘에게 영광을 돌리는 의식인 것 같았다.
이어 본격적인 예배 의식이 행해졌다. 예배를 이끄는 사람은 성당의 신부나 선별된 권위 있는 사제가 아니었다, 그저 동네의 평범한 주민이었다. 식순 메모지에 따라 종교 의례 문구를 선창 하면 주변의 사람들은 후렴을 따라 했다. 중간중간 찬송가 격인 가사노래도 불렀다. 신부가 주재하는 가톨릭 예배 의식과 비슷했다.
긴 의식을 마칠 즈음 악대가 막바지 나팔소리를 힘차게 울렸다.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날이 어두웠다. 의식이 끝났음에도 모인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았다. 근데 보니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음식통을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의식 후에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친교를 나누고자 하는 것 같았다. 오늘 행사를 잘 마무리한 동네 사람들은 이제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기쁘게 이야기 꽃을 피울 시간이다.
멕시코는 천주교 신자가 대다수라 가톨릭 문화가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 곳곳에 스며 있다. 가톨릭의 종주국들인 서구 유럽에서는 웅장한 성당과 교회가 많음에도 신자들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멕시코는 아직 많은 국민들이 가톨릭을 신봉하는 듯하다. 과나후아토에 있는 한 성당의 미사에 참석해 보면 그 이유를 안다. 미사 시간에 성당 안은 신도들로 가득하다.
기억에 남는 것은 이곳 대다수 성당들이 미사가 없는 평일에도 웅장한 성당 문을 활짝 제쳐 열어두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시간 누구라도 개인적으로 참배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듯했다. 시설 보호를 빌미로 종교 시설이 행사 외에는 문을 꼭꼭 잠가두어 세상과 단절된 풍토도 만연한데 여기 성당은 달랐다.
이처럼 늘 개방된 성당이라 지나치다 어렵지 않게 성당 내부도 둘러볼 수 있다. 경건한 분위기가 감도는 공간에서 몇몇 사람들이 묵상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갈구할까.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도 성당에 들어오는 순간 모두 하찮은 것들이 된다. 신 앞에 누가 으시될 것이며, 어느 누구가 세속의 성공 스토리를 늘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성당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세속의 가치관에서 완전히 이반 되는 영역이 된다. 여기에서는 세속에서의 제 잘난 맛을 버려야 한다. 세속의 우쭐거림을 접어야 한다. 세속의 과시와 거드름이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겸허하고 숙연해야 한다.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끊어야 한다. 자아를 반성하고 행위를 돌이켜보아야 한다. 남을 탓하기보다 불찰의 화살을 자신에게 겨누어야 한다. 잘못을 고백하고 너그러운 용서를 갈구해야 한다. 이곳에서는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낮출 때 진리의 깨우침이 열린다,
작은 골목 윗동네에서 벌어지는 종교 풍습은 낯설고 신기했다. 행사가 화려하거나 거창하지도 않았다, 소박한 골목 마을 주민들이 주체가 된 순수한 종교심으로 가득 찬 성 미카엘 행사였다.
이러한 종교문화가 종교적인 색채를 뛰지만 내면에는 지역 주민들을 끈끈하게 묶는 접착제 기능을 한다. 마을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고 주민들 간의 원활한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
현대사회는 개인주의화가 심화되어 군중 속에 고독을 느낀다. 세속 가치가 득세하여 인간 간의 진정한 교류가 균열되고 있다. 실제 수직적인 신과의 진실된 교감은 수평적인 인간 간의 진솔한 관심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즈음 과나후아토 골목의 성미카엘 행사는 주민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