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카톨릭 종교 풍토가 강했던 스페인은 식민지 도시 건설 과정에서 도시 제일 중심지에는 성당을 세웠다. 이어 성당을 구심점으로 성당 앞에 커다란 광장이 조성되고 광장 주변에 여러 행정기관들을 지었다. 도시의 중심 광장을 소칼로(Zocalo)라고 부른다.
식민지 시절에 건설된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도 마찬가지이다. 구도심의 중심은 소칼로 광장이다. 소칼로 광장을 중심으로 메트로폴리탄 성당과 대통령궁 등 행정기관 등이 배치되어 있다. 도시가 발전하면서 점점 외곽으로 도시 공간은 확장되지만 도시의 대표 성당이 있는 지역이 그 도시의 역사적인 구심점이다. 이곳 주변에 역사적인 유산과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어 한 도시의 주요한 역사적인 공간이 된다.
이처럼 중남미 도시 중심지에는 대표적인 성당들이 있다. 성당은 카톨릭 신앙심이 깊은 현지민들에게 현재의 위로처이자 미래 소망을 희구하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도 예외가 아니다. 도시 중심에는 산크리스토발 대성당이 있다. 성당은 웅장하면서 외향을 산뜻한 노랑색으로 치장해 단번에 눈에 띈다. 성당 앞에는 큰 광장(Plaza de la Paz)이 조성되어 있다.
광장에는 늘 일군의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이곳을 오가는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늘 부산하다. 무엇보다 이들 가운데에는 적지 않은 원주민 멕시코인들의 행상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조그마한 장신구나 공예품, 기념 수예품들을 몸소 가지고 다니면서 판다. 여러 종의 공예품들을 몸에 걸친다든지 조그만 들것에 소품을 담아 광장을 배회하며 관광객들에게 구매를 청한다. 번듯한 개인 가게가 있을 리 만무한 이들에겐 성당 앞 광장이 생계유지의 터전이다. 이곳에는 갖가지 품목으로 일인 행상을 하는 사람들이 온종일 끊이질 않는다.
현재 멕시코의 주류 인종은 유럽 백인계와 원주민의 혈통이 섞인 메스티조들이다. 이들은 서양인의 외향을 은근히 풍긴다. 반면에 멕시코의 최남단 치아파스 주 산크리스토발에는 원주민들의 비율이 높다. 이들은 본래 이 터전에 자리 잡고 있던 마야 원주민 계보를 잇는다. 원주민 멕시코 인들은 서구 백인계와 혈통이 별로 섞이지 않아 모습이 동양인의 모습과 닮았다. 왠지 이들을 보면 같은 아시아계 인종이라 그런지 그리 낯설거나 어색하지도 않다. 정서적으로도 메스티조보다는 친근감이 든다.
이들 행상인들은 온종일 광장을 배회해야 한다. 이들에게 거리 행상은 직업이다. 행상으로 벌어들인 소득으로 매일매일의 생필품을 구해야 하는 절절한 업이다. 번듯한 가게에서 파는 물품이 아니기에 하루 몇 개 팔지 예상하기 어렵다. 그날그날 불확실성과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다행히 여행객들이 물건을 간간히 사가는 날에는 운이 좋은 날이다. 반대로 물품팔이를 위해 온종일 땡볕 쬐는 거리를 헤맸음에도 서너 개도 못 파는 소위 재수 없는 날도 적잖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생계를 위한 밥벌이이고 매일매일이 일용 양식을 얻기 위한 직업이다.
그러나 관광지인지라 이들 주변엔 갖가지 관광 물품들을 풍부하게 구비하고 멋스럽게 진열한 상점들이 많다. 제품의 질이나 선택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일인 행상의 물품을 누가 선뜻 살 수 있을까, 의젓한 상점을 옆에 두고 거리 좌판에 벌려놓은 조촐한 관광 물품에 눈길이나마 쉽게 줄 수 있을까. 똑똑한(?) 인간들의 합리적인 산술로는 굳이 거리 행상인들의 물품을 구매할 이유가 없다.
곁을 지나는 사람에게 일일이 물품 구매를 간청하지만 관심 갖는 사람은 드물다. 구매를 거절당할 때마다 이들이 몸에 걸친 판매 장신구나 작은 수레에 담긴 판매 먹거리는 더욱 안스럽다.
그러나 이들에게 행상 포기란 생각하기 어렵다. 이 일은 살아가기 위한 생업이자 필수적인 호구지책이기 때문이다.
각종 원색으로 직조된 판매품인 모자, 스카프, 가디건은 눈부시게 곱건만 이를 파는 여인네들의 손은 거무스레 거칠다. 얼굴은 종일 강한 자외선 볕을 쬐인 탓에 짙게 그을렸다. 지나치는 행인들에게 물건 구매를 수없이 간청했을 터이지만 별소득 없어 낙담했는지 곱던 표정은 무덤덤하고 이마엔 그늘이 드리웠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는 멕시코 시와파스 주에 있다. 이 주는 멕시코에서 제일 가난한 지역에속한다. 그래서인지 사파티스타 혁명군이 결성되어 정부를 상대로 저항이 일어난 지역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한 국가 내에서 반란과 혁명이 일어나는 곳은 대체로 그 국가의 경제적 고리가 가장 약한 곳이다. 해당 지역이 몹시 낙후하여 물질적 곤궁이 극에 달하면 다수의 민심은 국가에 대해 실망하며 이반할 수 있다.
성당의 종이 울린다. 성스러운 울림이 가난한 자들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는가. 성당 앞 은혜스러운 광장, 신의 은총이 드리워진 공간에서 역설적으로 매일 가난한 이들은 힘겹게 고투해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좌판을 펴야 하고 수입의 불확실성 속에 행상으로 떠돌아야 한다. 이들은 나날의 생계 대책을 매일 마음으로 갈구하며 몸으로 감내한다.
예수는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몸으로 경제적인 일상을 힘겹게 버텨나가야 하는 이들은 이 복음을 쉽게 체득하기 어렵다. 먹고사는 문제로 늘 고심해야 하는 자들은 신의 섭리가 과연 가난한 자의 편인가를 체감하기 어렵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곳, 가난하지만 순수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는 아이러니하다. 이 땅의 주인임에도 가난한 원주민들은 이방인으로 전락된 건가. 주체가 아니라 관광객의 그림자가 되어 객체로 밀쳐졌는가. 낯선 관광객들의 화사한 관광은 이곳에서 끊이질 않는데 정작 이 터전의 가난한 주인들은 고달프다.
'우리에게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주기도문처럼 매일의 양식을 구해야 하는 성당앞 가난한 사람들. 이들의 애틋한 몸부림에 자비로운 응답의 계시는 언제쯤 내려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