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숭고한 채식주의자의 무지?

채식의 배신/리어 키스

by 갈잎의노래

채식주의는 인간적인가? 채식주의는 친자연적인가?

<채식의 배신>, 이 책은 채식주의를 둘러싼 최대의 논쟁서 중 하나일지 모른다.

답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어쩌면 정답을 찾는 과정엔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고.

‘채식주의자’ 이 말에서는 남다른 품격이 느껴진다. 채식 애호가들은 뭔가 고상하고, 인간적이고, 평화적일 것 같다. 반대로 ‘육식주의자’ 이 말엔 탐욕스럽고 건강스럽지 못한 몸의 비루함이 연상된다.


근데 책은 ‘채식의 배신’을 말하고 있다. 배신이란 자신이 신뢰했던 대상에게서 내동댕이쳐지는 것이 아닌가. 채식으로부터 어떤 배신을 당했단 말인가. 채식의 고상함에 무언가 허상이 내재되었단 말인가.

저자는 ‘채식을 꼭 해야 하는가’, ‘채식이 꼭 몸에 좋은가’라는 의문을 던진 후,

결론적으로 건강과 웰빙의 마지막 보루인 채식은 우리를 배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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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듯한 채식주의자들은 실은 채식의 실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의도는 순수함에도 실제는 안타깝게도 몽매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채식주의에 대한 저자의 비판에는 힘이 있고, 호소력이 실려있다. 일반적 육식 탐욕자들이 자신의 색안경 속에서 채식주의를 힐난하는 차원과는 격이 다르다.


저자는 이 책을 저술하기 전에는 철저한 채식주의자였고 생태.환경론자였으며 생명. 평화주의자였다. 20여 년 긴 시간 순수한 비건 주의를 치열하게 실천했던 채식주의 신념가였다. 아시다시피 비건 주의자들은 일체의 육식을 거부하고 100% 채식을 지향하는 열렬한 순수주의자들이 아닌가.


채식주의는 식사 습관의 한 유형이지만 여기에는 사회, 정치적인 정체성이 담겨있다. 대체로 채식주의자는 환경. 생태론 자이며, 동물 애호가이다. 동물을 애호하기에 생명 존중 사상에 입각해 뭇 생명을 사랑하는 평화주의자로 이어진다. 이들은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자신의 몸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채식 중심의 식단을 결연하게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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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저자는 채식주의자들에게 직구를 날린다. 그들은 자연을 거스르고 있다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채식주의의 문제점을 소상히 밝힌다. 채식이 자신의 마음을 흐트러지게 했고 몸을 망가뜨렸다고. 그리고는 그간 자신의 채식 경험을 곱씹고 성찰한 후 채식주의와 단호하게 결별한다. 이제 불편하더라도 채식주의의 일그러진 면모를 파악하라고 우리에게 충고한다. 곧 채식주의의 배신을 깨우치라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채식주의자의 신화’에 매몰되어 있다고 본다.

채식주의자는 대체로 동물을 보호하고 생명을 존중한다. 인간의 육식 문화는 동물을 해치고 생명을 거스르는 식습관으로 본다. 그들에게 채식 식단은 지구 상에서 생명을 존중할 수 있는 근원이 된다. 그들이 보기에 육식 습관은 비만, 당뇨, 고혈압을 유발하는 등 인간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채식 중심의 식생활이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생명과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채식주의자들은 농업을 성장시켜 인류 차원에서 채식 문화를 확대하는 것이 평화와 생명 존중을 확대하는 길이라고 본다. 그러나 농업의 확대, 곡물 생산의 팽창은 자연 질서를 침탈하는 것이며 오히려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저자는 말한다.


곡물 생산을 확대하기 위한 무분별한 경작지 개발은 반환경적이다. 무자비하게 산림을 벌목하고 초야를 무분별하게 개간하여 농토를 늘리는 것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곡물 증산을 위해 화학 비료를 토지에 과도하게 뿌리면 토양은 시들어간다. 이윤 중심의 곡물 산업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화학적인 토질 관리로 귀착될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 자연적으로 토질을 정화하고 영양소를 생성하는 땅 밑 미생물의 활동은 파괴된다. 근원적으로 생명의 땅이 유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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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식물의 생명성’을 환기시켜 준다. 식물에게도 자연의 작용, 생명의 작용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식물도 자연의 공기, 볕, 흙의 영양분을 자양분으로 삼아 생육하고 성장한다. 이런 연유로 동물은 먹어서는 안 되고 식물은 맘대로 처분해도 된다는 논리는 동물 중심의 편견이다. 자연 생태계에서 식물의 존재성과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이다.


초식 동물의 성장 과정에 식물은 그들의 먹거리 재료가 된다. 역으로 식물이 성장하는 토양에는 동물, 생명체의 부유물이 필요하다. 박테리아, 미생물들은 동물이 남긴 살, 뼈 등을 분쇄해서 식물이 생장하는 데에 유익한 영양 유기물을 만든다. 동물과 식물은 상호 순환적이다.


저자가 보기에 동물이 생존하기 위해 유독 식물만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는 없다. 동물은 존중하면서 식물은 한갓 동물의 먹잇감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식물도 생존할 권리가 있으므로 동물의 유기체에서 자양분을 섭취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자연계의 순환이다. 동물과 식물 사이에 먹고 먹히는 순환이 곧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순환 고리에서 예외일 수 없다. 한편에서는 포식자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먹이 사슬의 일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프레히텔은 ‘카리스 말(kas-limaal)’이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이 말은 ‘서로 빚지는 것, 서로 생명을 주는 것’을 뜻한다. 동물과 식물, 인간, 바람, 계절 등은 모두가 서로의 열매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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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순환에서 식물은 동물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동물은 식물을 먹고, 식물은 동물을 먹는다’. 우리가 사과를 먹듯이 사과나무도 우리를 먹어야 한다. 사후 우리 신체가 토양 속에 스며들어 식물의 자양분이 되는 것을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불편하지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생태계의 섭리이다. 식물은 오로지 동물을 위한 식재료의 원천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채식주의자들은 동물과 식물을 이원화하여 이들 사이의 순환을 단절한다. 동물은 보호되어야 하고 먹잇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동물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그러면 식물은?


극단적인 동물 권리 옹호는 자연 순환에 대한 인간의 무지에서 비롯된다. 자연계에서 동. 식물은 모두 자연의 구성체이며 생태계에서 공생하는 관계이다. 생명이란 상호 의존하면서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관계이다. 인간의 척도론 알아차리기 어려운 식물의 생명 활동을 인정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동물과 식물의 생명에는 구별과 차별이 있을 수 없다.


‘한 생명의 생존을 위해서는 다른 생명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원리를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평화주의자인 여러분은 이 사실에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나의 육신도 추후 땅의 생명체의 먹잇감으로 순환할 것이므로.


우리 몸은 최초부터 잡식이었다. 육식, 채식 모두에서 영양소를 공급받아야 건강할 수 있도록 체질이 형성되었다. 저자는 20년 동안 채식주의자로 지내오는 동안 여러 가지 식이 장애를 겪었다고 고백한다. 신체적으로 관절 장애, 위 쓰림 등을 겪었고 심리적으로 우울증, 무기력증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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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들은 채식의 성분들은 몸에 유익하고, 육식의 요소들은 신체에 유해하다는 이분법적인 도식에 경도되었다. 채식은 친환경적이며, 인간적인 것이고 육식은 반환경적이며, 비인도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동물의 육질의 일부분인 지방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그러나 지방 또한 인간의 몸에 적당히 축적되어야만 하는 필수 영양소이고 필요시 에너지 공급원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한다.


현재의 인간을 만든 건 육식 문화이다. 우리 몸은 육식에서 나오는 영양소와 채식에서 얻어지는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만 건강하도록 만들어졌다. 육류가 품은 영양소를 몸에 공급하지 않는 채식 중심 식단은 체질을 약화시키고 체력을 무기력하게 한다. 채식, 곡물 위주의 식사법이 위험한 이유이다. 이제는 농업 문명의 신화와 채식 우월주의적 신념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가 보기에 나를 치유하고 세상에 도움 되는 식재료에는 동. 식물의 구별이 없다. 자연의 모든 것 그 자체가 먹거리의 원천이 된다. 물론 언젠가는 내 몸도 그 먹거리의 순환에 동참하게 될 것이고.


비건 주의자 시절, 저자는 주변 일상을 늘 무기력하게 희끄름한 회색으로 느꼈다고 했다. 채식주의를 벗어난 지금 이 세상은 이렇게 컬러풀하고 아름다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