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 플래닛/피터 멘젤, 페이스 달뤼시오
<헝그리 플래닛>, 이 책은 과감하게도 전 세계의 음식과 영양 상태를 조사한 책이다.
먹거리 세계 풍물기이며, 음식의 세계지도이다. 여기에 더하여 식품 속에 숨어있는 사회 현상을 직시하는 ‘식품 사회학’이기도 하다.
전 세계 30개국과 미국 12개 주에 걸쳐 80명의 가족들을 탐방했다. 그들이 섭취하는 음식과 식료품을 대담하게 사진으로 펼쳐 보인다. 그리곤 사진 속에 내포된 그들의 식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책에서는 세계 여러 지역의 평범한 가정이 1주일간 소비할 식재료과 함께 한껏 포즈를 취한다. 가족 구성원 앞에 진열된 1주일치 식재료들이 무척이나 다양하고 풍성하다. 한주 남짓 기간에 한 가정이 소비하는 양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도 짐짓 놀랍다.
사진으로 비춰지는 비주얼한 식단 재료들로 만들어질 요리들은 상상속에서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운다. 인간은 조리법의 발달로 자연의 재료들을 다채롭게 요리한다. 다양한 요리 과정 - 찌지고, 볶고, 끓이고, 튀기고, 삶고, 숙성하고, 절이고, 데치고, 굽고 –을 통해 다종다양한 음식이 탄생한다. 레시피는 식재료와 양념들을 특정 조리법에 따라 조합하여 훌륭한 음식을 탄생시키는 요리 판도라 상자이다. 풍성하고 맛깔스러운 식단은 식품 미학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그럼에도 식탁에도 그늘진 곳이 있다. 식재료들이 단순 소박하고 초라하면 식탁도 빈곤하다. 어김없이 식단의 불평등, 밥상의 계층화가 존재한다. 세계 전역의 식생활에는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의 요소들이 녹아있다.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 누구는 풍요롭고 누구는 빈곤한가. ‘풍요로운 질병’은 무엇이며 왜 발생하는가. 빈곤은 농업 문제가 아니라 왜 정치적 문제인가. 이러한 물음들을 이 책에서 떠올리게 된다.
먹고 사는 문제는 모든 인간의 삶의 근원이다.
역사의 투쟁 또한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던가. 넓은 땅을 차지하고 부를 많이 가지기 위해 상대방을 장악하고 지배하려는 싸움이 역사가 아니던가. <헝그리 플래닛>은 외향적으로는 세계인의 음식 기호, 취향을 드러내고 있지만 이면에는 계급, 빈곤, 불평등, 가난을 넌지시 비췬다.
지금 세계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들은 전 세계 인구들이 부족하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그럼에도 정치, 경제적 왜곡으로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아 기아에 허덕이는 극빈층이 적잖게 존재한다. 충분한 식량 공급이 있음에도 수억명의 지구 인류는 빈곤에 처해 있는 현실이다. 일상의 음식에 정치가 숨어있는 것이다.
근래 식생활의 변화는 산업화를 통한 경제 성장, 식품 과학의 발전으로 촉진되었다. 식품 산업 체제가 대량화되고 물류 수송 시스템이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여기에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은 세계 곳곳에서 재배되고 생산된 식재료들과 음식들을 신속하게 유통시키고 소비시켰다. 이 과정 속에 자본주의 이윤 추구에 최적화된 기업형 농업과 곡물 산업이 있었다.
식품 가공 산업은 조리 과정을 간편화했다. 식품 유통기간을 늘려 장기간 식품을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고도로 가공되고 정제된 식품은 자연으로부터 순수하게 가공된 식재료와는 차이가 있다. 가공 과정에 첨가되는 유해한 성분들로 인해 가공 식품은 과체중, 비만, 당뇨, 심장병 등 만성질환을 유발하고 있다.
이제 풍요로운 지역일지라도 모두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수억 명은 과잉 섭취로 ‘풍족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영양 부족으로 질병을 앓는 사람 수 못지않게 과식으로 인해 질병을 앓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풍족한 식생활의 환경에서 파생되는 비만은 선진국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들의 식품 목록을 살펴보면 비만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 식단에는 일차적인 자연 생산물이 아니라 2차, 3차 가공된 식품들이 많다.
풍요 속에 오히려 수명을 단축하는 아이러니가 나타나고 있다. 식생활 습관의 전환에 대해 저자 피터 멘젤은 중용에 충실하라고 조언한다.
첫째 몸에 포만감을 느낄 만큼 과잉 섭취하지 말 것,
둘째 건강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활동할 것
세째 가공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가공된 음식을 먹을 것.
이제는 식습관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충분히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서 ‘어떻게 하면 영양소 배합이 균형잡힌 식단에서 적당량을 섭취하는냐’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현대인은 육식을 편애한다. 육식 문화의 편중은 공장화된 축산 산업을 촉진했다. 그 과정에 어두운 인간성이 폭로된다. 탐욕, 식탐, 이윤, 동물 윤리 위반, 공생 회피..
인간은 동물에 대해 모순된 태도를 지뉘고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개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도 하는 존대받는 동물이다. 동시에 같은 동물로서 돼지에 대해서는 비정하다. 오로지 식용을 위한 사육 대상이자 먹거리 재료이며, 상품일 뿐이다.
식료품점에서 파는 고기들은 잘게 부위별로 나뉘어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다. 일상에서 동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깔끔하게 포장된 식품으로만 다가온다. 여기에서 우리는 동물들이 어떻게 공장형 축사에서 고통스럽게 사육되고 도살되는 지를 알 길이 없다. 인공적으로 만든 비좁은 사육 울타리에서 최단 기간에 체중을 불린 후 즉시 도축되는 동물의 비애를 느낄 수 없다.
우리들의 식용거리로 받쳐질 희생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가 우리에게 없다. 전통적인 가축 사육자들은 자신들이 기른 동물을 자신들의 먹거리로 도축할 때 그 동물에 대해 존중을 표했다.
음식에는 지역성이 깊게 배여있다. 지역성은 토양이자, 문화이며, 생산물의 산지이자, 그 지역의 정치.사회적 현실이다. 세계화된 현재에서 지역의 음식들은 사회성 지표를 갖는다. 행복 지표인지 혹은 불평등 지표인지를 식재료의 내용에서 추론할 수 있다.
곧 식단은 사회.정치적 현실이며, 밥상은 생활 혁명의 단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