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를 잡고 부산에 발을 들여놓는 자여, 겸손할지어다.' 부산 도로가 던지는 입문 메세지이다.
부산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부산 진입 때 맞닥뜨릴 도로에서 시작된다.
도로 구성이 복잡 다변하다. 고가도로가 많아 입체적이며 때론 교차로 주행 방향이 애매하다.
도심 내에 대다수 교통망이 사방팔방 직방향으로 뻗쳐있지 않다. 많은 도로가 꺾이고 구부려져 있다.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이동하려면 많은 굴곡과 굴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차를 달리다 보면 평지를 달리다가 어느덧 고가도로를 지나고 있다. 고가도로를 달리다 보면 눈앞에 터널이 불현듯 나타난다. 도심 터널임에도 여간 길지 않다. 긴 터널 통과 후 시야에 보이는 도시 풍경은 터널 전 도시풍과 달라 새삼스럽다. 터널이 도심에 있다는 건 도시 내에 구릉 정도 높이의 야산이 있는 게 아니다. 지세가 높은 산이 우뚝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야산 정도는 언덕길로 도로를 놓을 수 있지만 높다란 산 위까지 도로를 깔기는 힘들다. 터널 공사를 할 수밖에 없다.
예로부터 큰 산과 강은 국토 지역을 나누고 행정 구역을 구획 짓는 기준이었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타도시를 볼 때 산은 도시 외곽에 있으면서 도시와 외곽지역을 구별짓는 경계 기능을 한다. 외곽 산들은 도시 공간을 감싸는 포용적 지형 형태를 취한다. 하지만 도심에 있는 부산의 여러 산들은 마을 이쪽과 저쪽 지역을 단절하는 지형지물 역할을 하고 있다.
외곽 서북쪽에는 금정산이 있고, 동쪽에는 장산, 도시 중앙에는 백양산과 황령산, 서남쪽에는 구덕산과 승학산이 자리 잡고 있다. 한 도시 도심부에 이런 산들이 뚝 버티고 있다는 건 도심에서 사방팔방 직방향 교통 흐름이 크게 방해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득이 도시내 소통을 위해 부산 도심의 산을 관통하거나 산등성이에 도로를 낼 수밖에 없다. 유독 부산에 도심 터널이 많고 산복도로가 일반화된 이유이다.
최근 30년 가까운 화려한 운전 경력도 부산 초입 때 부산 도로의 위세 앞에는 아무짜개도 쓸모 없었다. 몇 번 운행해 본 같은 주행 코스에서도 여러 번 길을 잘 못 들었다. 부산 교통망은 타 지역민에게 호락호락하게 길을 내주지 않는다. 부산 도로의 매운맛을 보게 한 후에야 비로소 길눈을 트여준다. 이제 부산에서 운전대를 잡을때는최대한 겸손 모드로 전환한 후 긴장의 끈을 꽉 잡는다.
뒤죽박죽 복잡함 가운데서 묘한 역동적인 질서가 부산 도로에서 생동하고 있다. 어째튼 누구나 부산에 오는 첫날 부산 도로에서 부산의 센 맛을 맛볼 것이다. 이어서 부산 도로에 겸손히 자세를 낮추는 태도도 배양할 것이고.
바다보다도 부산스러운 산복마을
누군가 회고했다. 잔잔한 수평선 바다를 보러 부산 왔다가 온통 산과 언덕밖에 못 봤다고. 산이 많은 부산이기에 당연히 산복마을도 많다. 평지가 적어 생활 터전을 일구러 서민들은 자꾸만 산으로 올라가야만 했었다.
부산 나들이는 산복마을 길을 오르는 데서 출발하고 산마을 위에서 탁 트인 부산 전경을 감탄하는 데서 완성된다. 사람들은 고급 아파트일수록 고층을 선호한다. 시야를 가리지 않는 트인 조망권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평탄한 도시에서 확 트인 도시 전경을 보려면 도시 외곽 산 정상을 오르든지 아니면 고충 아파트에 거주해야 한다.
그러나 부산은 다르다. 부산 여기저기 도심 산자락을 따라 사방 천지에 펼쳐진 산복마을들이 있다. 조금 수고스럽지만 어떤 마을이든 마을 언덕길을 오르면 언덕배기 정상 즈음에서 경탄할 부산 전망이 나온다. 유명 명소 전망대 전혀 부럽지 않다.
물론 산복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단박에 산마을 정상 어귀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산복마을 언덕을 힘들게 걸어야만 산동네 구석구석에 숨은 풍경을 볼 수 있다. 한 걸음씩 내딛는 걸음만이 골목 이곳저곳에 깃든 서민들의 애환어린 운치를 느끼게 한다. 빠른 문명 기술에 의존한 편리함에서는 디테일한 서민들의 체취를 맡을 수 없다. 느리지만 걷는 자만이 마침내 마을 정상에 섰을 때 온몸으로 산복마을의 전망과 감동을 품을 수 있다. 가파른 산동네 언덕길을 오르면서 흘린 땀과 사색의 대가로 미묘한 부산의 색깔을 이해하게 된다.
산복마을 아래 펼쳐진 전경은 장관이면서 감동이다. 부산의 세상살이 현세태의 부조화를 보면서 나름 조화를 감지한다. 한쪽엔 가파른 언덕배기에 옹기종기 서민들의 집들이 빼곡히 뭉쳐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마천루같이 주욱 뻗은 고층 빌딩과 고급 아파트들이 위용을 내뿜으며 솟아있다. 부산의 역사성과 부산의 현대성이 동시에 중첩되어 펼쳐지고 있다.
산복마을은 부산의 역사를 품고 있다. 과거 6.25 전란 시 전국 곳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유일한 도피처이자 최후의 삶의 터전이 부산이었다. 생존을 위해 삶을 몸부림치며 사람들은 부산으로 떠밀려왔다. 그때 부산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을 품었고 그들은 부산에서 삶의 끝자락을 잡고 억세게 생을 일구어 나갔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최후의 보루로서의 삶터가 당시 우리 모두의 부산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타 지역 민들이 각자의 고향 땅으로 돌아가서도 부산에서 체득된 부산의 향토성을 그들이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곧 산복마을의 역사는 부산의 역사이자, 우리 현대사의 한 단면인 것이다.
지금 부산은 도시의 여러 풍경들이 선명히 대비되면서 조화롭게 공존한다. 산동네, 고층빌딩, 바다, 항구, 산, 강, 역사 유적들이 뒤섞이고 어우러진 숲이다. 부산에는 역사와 자연이 절묘하게 조합되어 있다. 부조화의 조화로움, 뒤죽박죽 속의 질서, 예스러움 와중의 현대성을 부산에서 읽어 내지 못하면 도시 부산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