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기지 않아 더 남겨지는 것에 대해.
라오스는 나에게 특별한 나라다. 내가 여행했던 나라들 중에서 가장 좋았던 장소를 고르라고 하면 꼭 세네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 라오스다. 짧은 기간 동안 비엔티엔-방비엥-루앙프라방-비엔티엔을 오가는 힘든 일정 속에서도 세 도시를 짧고 강력하게 경험하고 온 것 같아서 더 기억에 남는다. 특히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의 서로 상반되는 매력 때문에 더욱 좋다.
처음 라오스를 가보고 싶었던 건 ‘청춘’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청춘의 여행지 라오스. 생각해보니 나는 어디가 좋았다더라 하는 말이나 누군가가 찍은 너무 멋있어 보이는 그들의 여행지에서의 모습보다는, 어떤 느낌에 꽂혀서 여행을 꿈꿔왔다. 라오스의 ‘청춘’ 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정렬’, 파리의 ‘예술가들의 도시’, 이탈리아의 ‘친근한 사람들’, 코타키나발루의 ‘동화 같은 선셋’이 그러하고, 이런 식으로 어떤 이미지를 기대하고 갔던 모든 여행지는 정말 나에게 행복한 추억들을 가져다주었다.
라오스로 돌아와서, 방비엥 여행은 체력적으로 고단한 일정이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 안에서 액티브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것이 장점이다. 반면, 루앙프라방은 몇 년 전 죽기 전에 꼭 방문해야 할 도시 1위로 선정이 된 적도 있는 곳인데, 라오스 안의 작은 유럽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처럼 여행을 통해 정말 상반되는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나라가 라오스다. 나의 20대가 가기 전에 꼭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 한 곳만 고르라고 한다면 무조건 라오스일 만큼.
라오스에는 나에게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아두지 않고 그곳에 그저 남겨두고 와 더 내 마음에 남은 풍경이 있다. 방비엥에서 카약킹을 하는데 핸드폰 배터리도 없고 물이 너무 튀어 도저히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모든 아름다운 것을 담아두고 싶었던 나는 처음에는 전전긍긍했던 것 같다. 아 핸드폰이 왜 꺼졌을까, 물이 좀 튀기더라도 너무 찍고 싶은 풍경이 많을 텐데 하며. 근데 시간이 갈수록 눈에만 담아두어 금방금방 사라지고 있는 그 풍경이 정말 아름답더라. 아, 난 꼭 다시 와야 해 싶었던 건 그때부터였다.
지금은 사실 사진처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1년도 더 된 과거여서. 근데 확실한 장면은 딱 하나 남았다. 강을 타고 가는 도중에 보인 어떤 백색의 신기한 나무 숲 사이로 사슴 류의 동물들이 걸어 다녀서 너무 신비롭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꼈던 순간. 너무 아름답고 동화나 판타지 영화 같은 장면이어서 이걸 보러 무조건 다시 와야겠다고 느꼈던 순간. 분명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순간. 그 모습을 보러 난 20대가 가기 전에 다시 라오스에 갈 것이다.
담기지 않아 더 특별히 남겨질 수 있는 것은 사실 정말 많다. 난 인증 사진처럼 어디에 간 가장 멋진 나의 모습을 담기보다는, 남들과는 다른 시선에서 바라본 여행지의 모습을 담는 것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특이한 각도에서도 사진을 찍어보고, 글로 감상을 남겨보기도 하고. 그보다 더 좋을 때는 그저 한참 바라본다.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이쪽저쪽에서도.
혹은 아예 보지 않기도 한다. 로마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여행지인데, 보고 싶은 모든 것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에 방문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작년의 첫 번째 방문 때는, 이탈리아에서의 일정 중 대부분의 시간을 피렌체에서 보내게 되고 뜻하지 않은 일들로 인해 여행 계획이 조금 틀어져서 로마는 단지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만 갔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가장 가고 싶었던 프랑스 파리 인, 가장 아쉬움이 남았던 로마 아웃으로 정했었다.
그런데 난 이번에도 로마에서는 사실 아무 관광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저 좋았다. 짐이 너무 많아져서 짐을 옮기는데 지치기도 했고, 파리에서 부터 혼자 호캉스(거의 침대에 누워 쉬기)를 즐기는 것에 빠졌는데 로마에서는 그 정도가 여행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로마에서의 7박 8일 동안 내가 한 일은 호텔에서 쉬고 먹고 일하고 친구들과 메신저로 연락하고 전화하고 자고 씻고 글 쓴 것과, 두 번 정도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간 것(그중 한 번은 프랑스에서도 만났던 나와 신기할 정도로 일정이 비슷했던 친구와의 식사였고, 그 친구를 제외하고는 난 로마에서 아무와도 사적인 대화를 하지 않았다), 호텔을 한 번 옮긴 것, 여행의 마지막 바로 전날 투어를 신청해놓고 가지 않은 것, 호텔의 바에서 칵테일을 마신 것, 우버 이츠로 배달음식을 시켜먹은 것, 공항을 오갈 때 택시에서 3-40분 정도씩 바깥을 구경한 것이 전부다.
로마에 있을 당시, 거기서 뭐를 봤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쉬고 있다고 했더니 그럼 뭐하러 거기를 갔냐거나, 관광을 좀 하라거나, 밖에 좀 나가보라거나, 로마인이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나도 좀 웃긴데 서울에서 보다 더 잘 쉬어지는 걸, 동남아의 휴양지에서보다 더 잘 쉬어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서울에서는 친구와의 약속이나 노는 거나 일 때문에 바빠서 제대로 집에서 쉰 적이 잘 없었던 것 같다. 사람들을 만나고 놀고 일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도, 꼭 해야만 하는 일들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 동남아에서는 호텔 방 안에서 쉬는 것보다 수영장에 가거나 바다나 강, 산, 호수 등 외부의 자연을 보는 것이 더 좋았다.
근데 여행지에서 사실 ‘꼭 해야 하는 것’은 없다. 내가 별종이라 특히 혼자 하는 여행에서는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꼭 해야 할 것’ 없이 정말 자유롭게 다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계획을 세우자면 누구보다 빡빡하게 모든 곳을 돌아다녔던 라오스 여행처럼 ‘꼭 해야 하는 것’들을 챙기는 여행을 할 수도 있다. 근데 그땐 내가 계획했던 모든 것이 나에겐 정말 좋았었기 때문에 다행이지, 다른 여행지에서는 사실 계획했던 여정이 그다지 상상만큼 좋지 않아서 실망한 적도 있었다.
여행을 떠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비행기표나 호텔을 보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근데 사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행기 표는 출발 전날에라도 살 수 있고, 호텔은 여행지에 가서도 충분히 좋은 곳을 찾을 수 있고, 계획하지 않았던 더 좋은 장소를 가게 될 수도 있다. 물론 미리 산 비행기 표 값이 더 저렴하고, 가장 인기가 많은 호텔은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되고, 계획을 세우면 계획만큼 여행이 착착 진행돼서 효율적인 여행을 할 수도 있다.
근데 좀 돌아가면 어떤가. 3일 이내 출발 땡처리 항공권과 최저가 항공권을 검색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존재하고, 가장 최고의 호텔이 아닐지언정 그와 비슷하거나 또 색다른 느낌으로 좋을 수 있는 수많은 숙박 장소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효율적이지는 않을지언정 여행의 과정 중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지 않은가. 가족여행이나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하는 여행이 아니라 혼자나 소수의 사람들과 하는 여행이라면 무계획 여행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처럼 사진과 영상으로 담기지 않아 더 남겨졌던 라오스의 방비엥, 아예 경험으로 담지 않아 더 남겨진 이탈리아의 로마를 사랑한다. 무조건 다시 방문해야 할 곳은 모든 것을 담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던 여행지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담지 않아 더 남겨진 여행지이다. 이 생각을 하면서부터는 더 많은 것을 남겨두고 오려고 한다. 나에게 다 담기지 않고 그곳에 남겨진, 또 내 기억에는 더 애틋하게 남겨질 소중한 다음 여행지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