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예쁜 여자만 좋아해!

가끔 어떤 관계를 만들 때는 적은 돈이 필요하기도 하다.

by Lydia Youn

엄청나게 포멀한 옷을 입고 중요한 미팅에 가야 하는 날, 집 근처의 문구점에 들려서 도장을 팠던 적이 있었다. 도장은 정말 어렸을 때 부모님이 간직하라고 만들어준 옥으로 된 작은 도장 말고는 처음으로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었는데, 원래 신발을 고치는 노점에서 도장을 파주지 않았었나? 요즘은 도장도 기계로 파더라. 신발을 고쳐주시는 분에게 도장을 여쭤봤더니 문구점으로 가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날은 이 동네에 이사온지 1년 정도가 되는 나에게 문구점을 두 번째로 들린 날이었다. 처음은 어떤 노트가 너무 필요해서 피곤한 상태로 문구점에 가서 노트만 사고 주인아저씨와 몇 마디 인사만 했었던 것 같다. 도장을 파러 갔던 날은 나에게도 너무 기분 좋은 일이 있었던 날이어서 가장 예쁜 모습으로, 가장 행복한 상태로 그 아저씨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었다. 그 뒤로는 예쁜 모습이 아니면 그 아저씨와 인사를 할 수가 없겠더라. 행복하고 예뻐 보이는 모습일 때만 아저씨에게 인사를 했다.


세 번째 방문은 또 어느 날 기분이 좋아서 튤립 한 다발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집 가는 길에 왠지 문구점에 이 꽃을 한 송이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아서 튤립 한송이를 아저씨에게 드렸다.


“예쁜 아가씨가 마음도 예쁘네! 정말 고마워!”

라는 아저씨의 말. 나는 그 뒤로 쌩얼이거나 후줄근하게 입고 있을 때는 아저씨에게 절대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예쁜 아가씨’이고 싶어서.


오늘은 네 번째 방문이었는데, 문구점 옆에 분식집에서 점심을 포장해가려다가 왠지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인지 그곳에 가면 기분이 좋아져서인지 그 문구점에 일부러 들러서 작은 노트를 한 권 샀다. 그 작은 게 오천 원이나 하더라. 아저씨와 주인아주머니가 함께 계셨다.


“여자는 예뻐야 돼! 예뻐야 남자들이 줄줄 따라서 결혼을 하려고 하지!”


“남자는 예쁜 여자만 좋아해!”


갓댐! 나는 그곳에 가서 예쁜 척을 하면서 주인아주머니의 왠지 모를 질투를 받아온 건 아닐까. 당연히 남자는 예쁜 여자를 더 좋아한다. 여자가 잘생긴 남자를 더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슷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예쁜 척이라도 하는 여자를 더 좋아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저씨는 맨 처음 그곳에서 우울한 채로 노트를 사 가던 나를 기억하지 못하신다.


우리 집에는 물론 쓰지 않은 노트가 널리고 널렸고 그 장소보다 같은 노트를 더 싸게 파는 곳도 널리고 널렸다. 나는 나의 행복과 아저씨의 행복을 위해 노트를 샀다. 남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은 결국 나에게도 기분이 좋더라. 내가 그곳에서 사용한 돈은 오천 원이지만 난 4500원짜리 김밥보다 그 오천 원이 더 가치 있게 느껴졌다. 그게 바로 관계가 아닐까? 아저씨와 나는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에서 ‘칭찬 인심 좋으신 동네 문구점 아저씨’와 ‘가끔 와서 재밌게 나를 웃겨주고 가는 예쁜 아가씨’의 관계로 발전하지 않았는가!


사람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지만 가끔 어떤 관계를 만들 때는 적은 돈이 필요하기도 하다. 정말 적은 돈! 그리고 용기. 부자가 되고 싶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는 말이 있다. 난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어서 자주 가는 편의점의 어려 보이는 야간 타임 아르바이트생에게도 가끔 먹고 싶은 것을 먹으라며 우유나 사탕이라도 하나 사주곤 한다. 나에겐 별거 아닌 돈이 다른 이에겐 지루한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큰 힘이 된다면 그게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그렇게 살다 보면 결국 난 부자가 될 거야!! 마음이 부자인 사람에게는 결국 돈이 돌아올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오, 오늘도 행복한 하루!


P.S. 오늘 산 노트에 적게 될 시가 더 유명해진다면 더 좋겠다! 유명해져라! 훨훨 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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