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야 할 정치적 참여는?
마음이 아프다. 나는 물론 돈을 쓰러 온 외국인 여행자이지만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나와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피하고 있기에는 너무 마음이 아프다.
오늘은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1주기이다. 노란 조끼 시위는 프랑스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차량 사고 때 착용하는 노란색 형광 조끼를 입고 집단 항의에 나선 것으로 시작되었다. 마크롱 정부는 기름값 인상을 통해 차량 운행을 억제함으로써 대기 오염을 줄인다는 배기가스 저감 정책에 따라 작년에 경유와 휘발유에 부과하는 세금을 각각 23%와 15% 인상했다. 2019년 안으로 유류세를 3~5% 추가 인상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 노란 조끼 시위를 불 붙였다.
“생업이나 생활 여건상 차량을 운행하지 않을 수 없는 대도시 외곽이나 중소 도시, 농촌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특히 심하다.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불만을 공유하면서 삽시간에 전국적인 연대망을 결성했다. 주동자도 없고 정당이나 노조와 무관한 평범한 시민들의 자생적 시위라는 점에서 마크롱 정부는 더욱 곤혹스럽다.”
“‘노란 조끼’ 시위에는 ‘두 개의 프랑스’에 대한 원한과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파리 같은 대도시에 사는 1등 국민은 기름값 인상에 신경 쓰지 않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지만, 대도시에 살지 않는 2등 국민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유류세 인상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크롱은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 사정은 안중에도 없고, 잘 사는 1등 국민만 생각하는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것이 이들의 인식이다.”
여행자인 우리가 보는 프랑스는 두 개의 프랑스 중 좋은 단면이다. 내가 보고 싶었던 프랑스 역시 아름다운 파리와 파리 근교의 멋진 장소였다. 한 번도 내가 여행하고 싶은 아름다운 프랑스 이외의 상황을 상상해보지 않았음이 부끄럽다. 나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하기에는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도 빈부격차의 문제나 북한이나 일본과의 갈등,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무제에 따른 변화로 인한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각기 다른 입장 차이, 문재인 정권의 정치에 대한 비판 등 여러 정치/경제적 문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14일(현지시간) 정부에 열악한 국공립 의료시설의 시설과 인력 확충을 요구하며 파리 등 전국 10여 개 도시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었다. 이날 수도 파리 시내에서는 이날 공립병원의 의사, 간호사, 의과대학 재학생 등 수천 명이 모여 "공립병원들이 질식 상태에 처했다", "공립병원을 구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프랑스의 국공립 병원들은 누적 부채를 청산한다는 이유로 2005년부터 구조조정을 이어오면서 만성적인 인력·병상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저께는 국공립 의료시설과 관련해 의료 계층의 시위가 열렸다고 한다. 시위의 폭이 매우 넓다. 최근의 우리나라에서 의료계와 같은 소위 말하는 엘리트 집단의 시위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사실 별반 다름이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전국 각지의 고속도로 진입로나 교차로, 교량 등을 막아 차량 통행을 제지했다. 마크롱 정부가 꿈쩍도 하지 않자 ‘노란 조끼’ 시위대는 파리로 몰려갔고 그때부터 시위는 과격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에는 일부 극단주의 세력이 가세하면서 본격적인 폭력 시위로 변질했다. 지금까지 시민 2명이 사망하고 경찰을 포함해 약 700명이 부상했다. 시위 과정에서 500여 명이 연행됐다.”
시위가 열리면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이나 시위를 막는 경찰을 비롯한 정부와 관련된 인력, 또는 나와 같은 여행자에게도 피해를 끼친다. 이 부분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위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가지게 된 이유일 것이다. 무력시위는 나 또한 지양한다. 시위자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시위를 통해 피해를 받는 무고한 시민이나 여행자, 정부와 관련된 인력에 대해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시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평화롭게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사실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평화롭게 시위를 해서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점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시위 양상이 점점 과격해진 걸 수도 있다. 정부나 시위를 비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그저 너무 과격하다. 그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그들은 정부를 비롯해 시위와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치는 인간들이다.
시위에 대한 나의 정치적 입장은 정확히 중도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시위자의 입장에 가깝다. 중도라는 표현은 사실 무책임한 것 같다. 나는 어떠한 측면에서는 보수적 입장을 취하기도 하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진보적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싶은 게 나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합리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모두가 싸우지 않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대기 오염을 줄이면서 유류세도 인상하지 않고, 복지가 필요한 이들에게 적절한 복지의 혜택을 주지만 부자의 돈을 뺐지 않고, 국공립 병원의 시설과 인력을 확충하고, 노동자와 고용인이 동시에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자면 차량 2부제, 국가장학금, 차상위 계층에 대한 복지, 중소기업 세금 감면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위와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방법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해결 방안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노력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나 또한 국가장학금의 혜택을 받은 적이 있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국민을 위함이다. 국가의 존립 목적 자체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더 보살피기 위함이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개인의 책임을 다하는 한편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를 이룬 것이 국가이다. 프랑스 정부는, 또한 우리나라 정부는, 또는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폭력과 시위로 일그러진 전 세계의 많은 정부는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얼마 큼의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총리 등 모든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해 뽑힌 것이지 본인의 명예를 위해 뽑힌 것이 아니다. 좌우와 보수/진보의 진영 논리를 떠나 모든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입 다문 정치인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정치적 참여는 무엇일까? 내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투표를 한다고 해서 모든 정치적 참여가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지금 내가 적어도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나의 입장을 알리고 그들에게도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오늘의 나의 정치적 참여다. 내가 시위에 참여하거나 정치적 모임을 주도하거나 직접 정치인이 되는 방법도 있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일깨워주는 것부터가 작은 정치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나는 아름다운 프랑스 파리에서 내가 봐왔던 하나의 프랑스가 아닌 새로운 또 다른 프랑스를 보게 된다. 지금 밖에 나가면 시위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상황에서 내 여행에 차질이 생겼다고 그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시위자로 참여할 수는 없지만, 무력시위에는 무조건 반대하지만, 동시대를 살고 같은 고민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시위에 마음으로나마 동참한다. 부디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부디 모든 문제가 좋은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 더디더라도 모두가 좋은 방향으로 서로 조금씩 양보한 최종의 타협점을 찾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