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는 미래로 가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

어찌 보면 세상은 전과 다름없다

by Lydia Youn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의 삶에서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가까운 미래라고 하기엔 이미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재이며,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나 천천히 잠식되어간 현실이다.


우리 부모님은 사업을 하신다. 사업을 하려면 미팅을 해야 하는데 엄마는 미팅을 주도하는 분이고 아빠는 기업과의 미팅을 이어가야 하는 분이다. 그래서 엄마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어떻게 사람들과 만나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는지에 대해, 평소에는 별로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매일 골똘히 하고 계신다. 그래서 아빠는 기업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끝내고 어서 밀린 미팅들이 잡히기를 원하신다.

우리 동생은 대학생이고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 올해 4학년이고 곧 졸업을 해야 하는 졸업반인데 졸업 작품에 대한 생각은커녕 집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강의를 듣고도 부족한 상태에서 해야만 하는 과제들에 치여 산다. 제발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도 동생은 옆 방에서 문을 닫고 이어폰을 끼고 화면 밖의 교수님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엄마의 한 친구는 교수님이시다. 어쩌다 보니 그분은 내가 다녔던 대학의 교양 과목 교수님이셨는데, 그분의 강의를 들어본 적은 없다. 아무튼 그 과목에서 강의의 평점이 높기로 유명하다고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 전해 들은 그분의 고민 역시 엄마의 고민과 비슷하다. 어떻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인터넷 강의 영상을 일주일에 2개씩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나는 좀 일찍부터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을 좋아했다. SNS를 통해 한국인 혹은 외국인 친구나 남자 친구를 만든 적도 있었고, 개인 방송을 한 적도 있었고, 개인 방송 소속사 소속의 매니저를 한 적도 있었고, 여행 카페에서 알게 된 친구와 해외여행을 간 적도 있었고, 멀리 사는 연인과 몇 개월 동안 매체를 통해서만 연락해야 했던 적도 있었고, 여행을 다니면서도 이메일을 통해 상사와 소통하며 업무를 진행했던 적도 있었고, SNS 라이브를 통해 회사의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거나 해야 하는 업무를 설명한 적도 있었고, 처음 가본 해외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SNS를 통해 친해지고 만나기도 하면서 아직까지 좋은 친구로 남은 경험도 있다.

오늘도 어떤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컴퓨터 화면과 카메라, 핸드폰 어플 등을 조작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예전에는 그것이 선택이었다면 이제는 그것이 필수가 된 것이다. 오늘도 어떤 이는 화상 강의를 듣는 척하며 라면을 끓이고, 오늘도 어떤 사람은 강의 혹은 회의 중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보이는 카메라에 자신의 가족 혹은 자신의 반려 동물이 등장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며, 오늘도 어떤 사람은 화면 밖으로 갑자기 등장한 교수님 혹은 상사의 어린 딸의 목소리를 들으며 웃음을 참는다.


어찌 보면 세상은 전과 다름이 없다. 우리는 코로나가 있기 전에도 눈 앞의 사람들보다는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기 바빴던 적이 많았고, 이 글 또한 종이가 아니라 화면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단순히 생각하면 병과의 싸움이지만 깊게 생각해보면 미래로 가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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