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첫사랑과 첫사랑 이후의 오랜 기간에 대하여

이제 다시 사랑해야 할 때가 되었다

by Lydia Youn

온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남자 친구에 대한 사랑이었던 몇 년이 있었다. 그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나의 일상도 그로 인해 살아나고 무너지곤 했던 오랜 기간. 사실 그때는 친구들에게 그의 흉을 많이 봤던 것 같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가 왜 내 사랑에 제대로 답을 하지 않는 것인지 괴로워하며 주위의 친구들에게 그와의 싸움에 대해 자주 털어놨었다.

요즘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한 것이 더 많더라. 그때는 내가 너무 어린 나이였고, 당연히 어떻게 사랑해야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건지도 몰랐고, 내가 사랑하는 데로 다 표현하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사실 지금도 사랑은 역시 어렵지만 그때는 정말 아이가 엄마를 향한 사랑을 하듯이 그를 사랑했다. 무조건적인 사랑, 혹은 엄마가 되어달라고 칭얼거리며 그를 괴롭혔던 사랑, 혹은 서로 죽고 못살았던 사랑, 혹은 그냥 첫사랑이라고 하면 되겠다.




그가 나에게 끼친 좋은 영향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부끄러워서 그런 것들까지는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수능 때문에 그와 오랜 기간을 만날 수 없던 고3 시절에 그에게 거의 매일 편지를 쓴 적이 있다. 그렇게 해서 작은 책 한 권을 만들어서 그에게 줬었는데 사실 그건 그를 위한 편지라기보다는 나를 위한 편지였다. 나는 힘든 수험생활과 만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괴로움, 하루하루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하는 환경 속에서 그에게 편지를 쓰면서 숨을 트일 수 있었다.

야자 시간에는 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 가장 즐거웠다. 힘든 하루 가운데도 내가 정말 사랑하는 그가 나처럼 혹은 나보다도 더 힘들게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함께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서 더 열심히 공부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고3 시기에 고등학교 기간 전체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생각보다 더 좋은 결과로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그가 나에게 상처를 준 적도 많은데, 생각해보면 내가 연애를 하면서 받았어야만 했던 상처였다. 직접 겪어봐야만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나는 그와의 연애에서 겪은 상처 때문에 다시 그런 상처를 받게 되어도 사실 남보다는 더 무디게 대응했다. 상처에 무뎌진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었다면 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 상처에 무뎌져 간다는 것이 곧 어른이 되는 것이리라.




나는 항상 내 사랑에 당당하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를 향한 내 사랑은 너무 유치했다. 유치한 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간 너무 어렸어. 내가 당시의 그였어도 나 같은 여자는 힘들었을 것도 같다.


그는 나에게 너는 결혼을 해야 할 여자라고 했다. 결혼하기에 좋은 여자. 그 말을 20대 초반, 너무 어린 나이에 들어버린 것이다. 좀 더 놀고 싶었던 그는 결혼하기에 좋은 여자인 나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고,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었던 나는 그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하나보다. 그를 지금 만났더라면 전처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를 지금 처음 만나고 새로운 사랑을 그와 이어갔다면 우리는 지금 연인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랑은 참 어렵다. 알맞은 타이밍에 알맞은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같아.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결혼을 한다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사실 그 이후의 연애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서로 나누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게 진짜 사랑일까 첫사랑과 비교하며 사랑을 말하기를 두려워했던 오랜 시기가. 그와 4년을 연애했는데, 그 뒤의 5년에 가까운 시기 동안 그랬었다. 그를 다시 만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사랑을 말하기가 두려워지더라.


5-6년이 지나고 난 지금은 사랑을 말하는데 다시 두려움이 없어졌다. 처음 보자마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그렇게 하면 상대방이 놀라기 때문에 참고 있는 정도라고 할까. 나는 항상 사랑이 가득한 삶을 살았고, 첫사랑도 사랑이 넘치는 연애를 했고, 그의 빈자리에 오랜 기간 사랑이 비어진 상태로 방황했고, 이제는 그 자리에 새로운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가끔은 그에게 썼던 편지를 읽어본다. 우리가 헤어질 때 나는 그에게 그 편지 책을 돌려달라고 했었다. 그는 떠나지만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은 내가 갖고 싶었다. 그는 그걸 돌려준 뒤에도 다시 그걸 갖고 싶다고 했었지만 나는 그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그 편지들을 읽고 있으면 눈물이 절로 나곤 한다. 그게 정말 사랑인 것 같아서, 그때의 감정이 그대로 생각나서. 사실 그 책은 그래서 읽다가도 읽기를 포기하곤 한다. 너무 아픈 마음이 든다. 사랑했을 때의 나를 돌아보는 것이 아직도 나 스스로에겐 아픈걸 보니 아직은 때가 아니다. 좀 더 모든 것에 강해진 후, 언제 그걸 들춰봐도 너무 아프지는 않을 때 그것을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평생 그걸 보고 아팠으면 한다. 그렇게 어른이 되기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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