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hetique : 작정하고 나를 울리는 음악
매일 아침 회사에서 자주 듣는 곡이 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듣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유달리 차이코프스키 곡을 꼭 듣고 싶었다. 피아노 협주곡,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도 듣는 편인데, 랜덤으로 고른 곡이 6번 교향곡 “Pathetique”였다. 눈을 감고 1악장을 듣다가 4분 정도 지나서 그 유명한 제2주제 안단테가 나왔다.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에서는 아예 제2주제만 안단테로 뽑아서 연주한 곡이 있다. 그 곡을 듣는 내내 난 말그대로 Pathetique(비장한, 감동적인, 감격적인)에 빠졌다. 현악기의 비통함이 가슴을 파고들었고, 금관 악기의 외침은 비장함을 더욱더 가중시켰다. 그렇게 슬픈 것도 아니었는데, 슬퍼졌다. 왜 이렇게 사는건지, 무엇을 위해 사는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했다. 현악기는 비통하게 연주했지만, 마지막 관악기가 그렇게 슬퍼하지 말라고 하는 듯이 똑같은 주제로 담담히 연주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였던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멀리서 보면 다들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같이 보인다. 멀쩡하게 대기업 다니고, 아들 딸 잘 낳고 살아간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어디 하나 상처 입지 않은 사람이 없다. 차이코프스키는 그 진리를 음악으로 알았나 보다. 같은 악보인데, p로 연주하느냐, ff로 연주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또 현악기로 연주하느냐, 관악기로 연주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남들이 보면 비슷해 보이는 인생이지만, 너무나 다르게 인생도 연주된다.
한국말로 “비창”이라고 하기에 “Pathetique”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차이프코프스케 교향곡 6번은 비장하고, 감동적이고, 감격적인 음악이다. 오늘은 그 중에 1악장 제2주제 안단테를 들었다. 그 주제를 10번 이상 듣고 들었다. 가슴을 쥐어짜다가, 누군가에게 한탄이라도 하고 싶다가도, 목관악기의 연주를 듣고 위로를 받는다. 힘들고, 지치고, 피곤하고, 머리가 복잡한 나날들이 이어가는 이 시점.. 난 내가 좋아하는 레페 브라운 맥주 대신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 대신에,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1악장을 듣는다. 차이코프스키는 말한다. 그럴 때 일 수록 안단테로 연주해라. Andante (teneramente, molto Cantebile, con espansione) 연주하라고 한다. 테네라멘테 (상냥하게), 말토 칸타빌레 (노래하듯이), 콘 에스프레시오네 (표정을 지니고) 연주해야 한다.
인생은 슬프고, 비참한 동시에 감격적이고 감동적이다. 내 앞에 현실이 슬플수록 우리는 안단테로 연주해야 한다. 그리고 상냥하게, 노래하듯이, 표정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작정하게 나를 울리는 음악이지만, 난 상냥하게 노래하듯이 인생을 살아갈련다. 안단테로 살아갈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