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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Mar 28. 2021

안녕, 내 익숙한 것들..

Oldies But Goodies

 요즘 다시 글을 쓸 여유가 생겼다. 마음에 여유가 어느 정도 생기고 나서, 글쓰기 주제를 떠올리다 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2~3년 전에는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도, 장면을 다 생각해내고 그 장면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깊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쓴 글이 라라랜드, 터미네이트 영화에 대한 글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예전만큼 깊게 생각하지 못한다. 얼마 전에 쓴 “초월수”에 대한 3편의 글도 사실 2~3년 전에 생각해놓은 아이디어를 이제야 시간을 내어 썼을 뿐이다. 나에겐 서랍 속에 있는 글쓰기 주제가 20~30편쯤 된다. 또 브런치에는 연재하진 않았지만, 두 편의 소설이 있다. 또 하나는 첫 도입만 적다 만 단편소설도 하나 있다.


 그 글만 써도 매주 2편씩 연재한다고 해도 올해는 거뜬히 지낼 듯하다. 하지만, 영 내키지 않는다. 왠지 내가 무뎌진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예전에 생각해놓은 이야깃거리를 우려먹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즐겨 듣는 음악도, 내가 즐겨 보는 영화도, 내가 즐겨 보는 드라마도 오래되고 익숙한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김현철, 유영석, 신해철 음악을 즐겨 듣고, 넷플릭스에서도 예전에 본 벤자민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우주전쟁을 다시 보고 있다. 또한 10년 전에 본 How I met Your Mother이란 미국 드라마도 보고 있다.


 Oldies But Goodies라는 말이 있다. 오랜 된 것들이 좋다는 말이다. 내게 익숙한 생각들, 예전에 생각해둔 이야깃거리, 예전에 즐겨 듣던 음악, 영화,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다. 물론 예전과는 다른 기분으로 듣는다. 그리고 또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자꾸 난 자꾸 사골처럼 우려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래전에 생각해 둔 글쓰기 주제도 꺼내서 쓰겠지만, 새로운 생각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래야 난 앞으로 한 발씩 내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난 내 익숙한 것들과 안녕을 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예전 생각은 덮어두어야겠다. 당분간 예전 음악은 조금만 들어야겠다. 새로 나온 음악, 드라마, 영화를 봐야겠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고백을 해야겠다. 아들 녀석은 배틀그라운드를 좋아한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모바일 배그를 한다. 엊그제는 아이패드로 게임을 하더니,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으로 2~3시간 열중해서 동영상을 제작하고 있었다. 물론 화려한 그래픽도 없고, 말풍선도 별로 없지만 제법 봐줄 만한 동영상 2편을 제작했다. 아직 유튜브에는 올리지 않았지만, 새로운 도전을 한 셈이다. 아들 녀석의 동영상을 보고, 나도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오래된 것이지만(Oldies) 좋은 것(Goodies)도 많다. 하지만 새로운 걸 도전하는 건 또 다른 영역이다. 늘 익숙한 음악, 음식,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분명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익숙한 것들만 대하고, 새로운 것들에 대해 접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는 것 또한 고인물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제 서랍 속에 있는 글쓰기 주제를 벗어나서, 새로운 주제를 오래 생각하고 글을 쓸 때가 되었다. 옛날보다 더 날카롭고, 옛날보다 더 치열한 사유의 과정을 거치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설레고 가슴 뛴다. 익숙한 도로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탐험하는 과정에서 나는 배우며 성장한다.


 안녕, 익숙한 것들이여... 이제 내 눈 앞에 나타나는 새로운 것들을 만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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