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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un 21. 2021

숨 고르기

이제는 더 쉬어가야 할 시기입니다.

 어제 오후 초6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러 갔다. 이제는 나보다 훌쩍 커버리고, 체력도 나를 앞서 간지 한참 지났다. 평소에 아들은 친구들과 함께 주변 일대 느지막한 뒷산을 MTB 풀샥으로 휘젓고 다닌다. 이번 주말은 평소에 다니던 친구 녀석들이 주말여행을 가버려서 오래간만에 아들과 라이딩에 나섰다. 포항 효자 - 양동마을 - 다산리 - 신광 용천저수지 ~ 도음산 ~ 달전리 ~ 우현사거리 ~ 포항 철길 숲 ~ 포항 효자 이렇게 코스를 짰다. 용천저수지에서 도음산으로 올라가는 2차선 산길은 대략 3km 정도의 오르막이다. 이 구간이 오늘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올해에만 2번 정도 논스톱으로 가본 적이 있어서, 냉수1리 마을회관에서 5분 이상 길게 쉬었다가 페달을 밟고 라이딩을 해본다. 첫 번째 굽이치기 길에서 숨이 턱 막혀본다. 6월 오후 4시의 찌는 듯한 더위가 점점 내 폐와 심장을 쪄내고 있다. 분명 2달 전에 아들과 함께 쉽게 올랐던 이 오르막길이었는데, 오늘따라 이 길이 알프스의 산길 마냥 느껴진다. 아들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손짓을 하고 난 자전거에서 내렸다. 자전거에서 내려서 목을 축이고 있는데, 심장소리가 고요한 산길을 가득 채운다. 내가 살아있구나.. 살아서 심장이 뛰고 있구나.. 정말 리얼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고루한 내 몸은 들썩이는 폐와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을 레드 알피엠까지 끌어올렸다. 2달 전만 해도 분명 레드 알피엠 구간에 가지 않았는데, 오늘은 레드 알피엠에서 앵앵거리며 소리를 내고 있다. 다시 자전거를 일으키고 페달을 밟아 출발했다. 아들 녀석은 이제 내 시야에서 사라진 지 한참이 지났다. 난 만 44년 된 엔진과 변속기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데, 아들 녀석은 만 12년 엔진과 변속기로 저만치 추월하고 달리고 있다. 잠시 쉬었던 심장과 폐는 다시 한번 쿵쾅대며 뛰기 시작한다. 드디어 2번째 오르막에 다 달았다. 평소 같으면 이를 악물고 끝까지 올라갔지만 오늘은 알량한 자존심은 아득히 보이는 내리막길에 버려두기로 한다.

 

 다시 한번 오르막 그늘에서 쉰다. 논스톱으로 올라가던 이 오르막을 2번이나 쉰다. 다시 한번 목을 축이고,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심장과 폐에게 목소리를 건네 본다. “이제 500m 정도 남았으니, 마지막 스퍼트를 해보자꾸나.” 그렇게 마지막 고갯길을 다시 한번 올라간다. 아들 녀석은 정자에 앉아서 쌩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난 가방에서 달달한 커피를 꺼내서 당을 보충한다. 시원한 정자 밑에 앉아서, 무릎과 팔꿈치 보호대를 착용한다. 이제 오르막길을 올랐으니, 신나게 다운힐을 하며 내려갈 차례이다. 그런데, 약간 후들거리는 심장과 폐가 걱정이 된다. 아들에게 “천천히 가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이제 드디어 도음산(또는 삼도산) MTB 라이딩을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풀샥의 성능을 끌어올릴 기회가 온 것이다. 5분 정도 내려가다가 갈림길 앞에 섰다. 왼쪽은 평소에 다니던 오르막길, 오른쪽은 처음으로 보는 내리막길이다. 오늘은 급격히 떨어진 체력 탓에 처음으로 보는 내리막길을 선택했다. 두 길이 만날 줄 알았는데, 한참을 내려가도 처음 보는 길이 계속 이어졌다. 반포장된 내리막길을 그야말로 조져가며 내달렸다. 아들 녀석은 안정된 무게중심으로 내려가는 반면, 난 오로지 자전거의 기계적 성능만을 믿고 내달렸다. 실력이 안되니, 장비 빨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한창을 내려간 이후에 스마트폰 지도를 봤다. 우리는 산 뒤편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흥해 북송리까지 내려와 버렸다. 15킬로 이상 더 돌아가야 하는 길로 들어서고 만 것이다. 내리막 끝에서 무릎, 팔꿈치 보호대를 해체하고, 무의식 라이딩을 시작했다. 이제 슬슬 당도 떨어지고, 맞바람의 위력 앞에서 초라한 체력을 실감하며 달렸다. 그렇게 아들과 나는 오르막 끝에 있는 오아시스 편의점에 내려서 게토레이와 사이다를 마시며, 다시 한번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20킬로를 더 달려서 집에 도착했다. 오늘은 강과 바다와 산과 저수를 가로지르며 아들과 단 둘이 데이트를 했다. 총 60킬로의 장정이었다. 한 땐 120킬로의 라이딩도 부담스럽지 않았는데, 이제는 60킬로 라이딩에도 레드 알피엠이라니.. 세월이 야속하다.


 집으로 들어와서 아내에게 한마디 건넨다. “이제 나도 모터가 달린 eMTB를 구입해야겠다.”며 푸념이 섞인 말을 건넨다. 오늘은 자존심 대신에 나에 대해 더 알아가는 좋은 성찰의 시간이었다. 때론 2번을 더 쉬어가야 할 때를 인정해야 할 날이 온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2번에 걸쳐 숨 고르기를 했다. 이제는 더 쉬어가야 할 시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 가을에 다시 한번 논스톱으로 도전을 다짐해본다.


P.S 난 집에 가자마자 뻗었지만, 아들 녀석은 밤 11시까지 쌩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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