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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ul 07. 2021

환경, 협주하실래요? (1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내가 가장 최애하는 클래식 음악이 몇 곡 있다. 특히나 피아노 협주곡을 즐겨 듣곤 한다. 단 한 곡만을 꼽으라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선택할 것이고, 단 두 곡을 선택하라고 하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주저 없이 고를 것이다. 오늘은 멋진 콘서트홀에 맨 앞자리에 앉아서 조성진이 연주하는 피아노 협주곡을 연속해서 듣는다는 즐거운 상상부터 시작해보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다른 협주곡의 첫 시작과 달리 특이하게 진행된다. 대개의 피아노 협주곡은 오케스트라 선율로 시작해서, 어느 정도 분위기를 띄운다. 그러는 동안 피아노 연주자는 눈을 감은 채 오케스트라 선율에 맞춰 고개를 흔들면서 자신이 시작할 차례를 기다린다.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연주를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피아노 협주곡의 평균적인 구성양식이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첫 스타트를 오케스트라 선율이 아니라 피아노 건반부터 울린다. 화려하게 시작하지도 않고, 피아노 건반 몇 개만 지그시 누르면서 점점 크레셴도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그런 다음에 곧이어 오케스트라 선율이 따라 나온다. 나에게는 충격적인 인트로이다.


 오랫동안 환경에 근무한 동료들과 회식자리를 가졌다. 한 명은 10여 년부터 거의 형제, 자매나 다름없이 못 볼 것 다 본 오랜 사이이고, 한 명은 3~4년 전에 환경이슈로 알게 된 후배이고, 마지막 한 명은 최근에 환경이슈 때문에 알게 된 중견사원 같은 신입 후배이다. 나는 입사 이래로 에너지 업무를 주로 하다가, 잠깐 기후변화, 저탄소 녹색성장 등 환경의 맛만 본 그야말로 얼뜨이 환경 평론가일 뿐이다. 3명의 동료에게 과연 환경에 대해서 왈가왈가할 수 있는 경험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전문적인 식견은 그야말로 눈뜨고 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환경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비단 이 얘기가 환경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 꺼란 골드바흐의 추정을 해본다. 우선 질문부터 해보자. 환경, 협주하실래요?


1. 협주의 기본은 탄탄한 피아노 실력이다.

 환경은 단독 또는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다. 대관청 업무, 인허가 이슈 정도가 환경이 주도해서 이끌어 가지만, 실제 현장에서 수없이 벌어지는 일들은 다른 관련부서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마치 피아노 협주자, 오케스트라와의 관계와 유사하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실수하는 건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피아노 협주자가 실수를 하면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래서 피아노 협주자는 무엇보다도 뛰어난 피아노 실력을 갖춰야 한다. 뛰어난 실력이라 함은 “악보에 맞춰서 정확하게 연주해야지.. 여기 파트에서는 여리게 연주하다가, 오케스트라와 선율이  합쳐지는 지점에서는 격정적으로 연주해야지” 이렇게 생각만 해서는 안된다. 즉, 머릿속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피아노 협주자(환경)는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개선안을 제시하고, 오케스트라(관련부서)에게 연주를 보여줘야 한다. 입과 머리로 연주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손과 가슴으로 연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결단코 탄탄한 피아노 실력을 갖추지 못한 연주자는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어설프게 협주곡을 연주하기보다는 피아노 소나타를 더 연마하거나, 단독 연주자로서의 길을 찾아야 한다.


2. 협주의 성공 열쇠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업이다.

 피아노 협주자(환경)는 오케스트라와 절대 경쟁해서는 안되고, 오케스트라와 타협해서도 안된다. 둘 다 각자 해야 할 역할이 정해져 있다. 그 역할을 지키는 가운데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협주를 한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처럼, 맨 처음 인트로부터 피아노 연주자(환경)가 먼저 건반을 울릴 수 있다. 앞으로 강화되는 환경법에 따르면, “회사는 A, B, C, D를 준비해야 하고, 지금은 A, B는 설비투자를 선제적으로 실시해서 문제가 없지만, C, D는 최대한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이렇게 연주(이슈 제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면 오케스트라(관련부서)들이 호응을 한다. “아, 우리 부서는 C, D를 준비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설비공급사와 협의해서 설비투자를 해야겠구나.”라며 피아노 연주자(환경)와 업을 하게 된다.


 그리고 협주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피아노 연주자가 단독으로 연주할 때도 있고, 오케스트라만 연주하는 시간도 있다. 피아노 연주자는 쉬고,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고 피아노 연주자가 지는 게 아니다. 또한 피아노 연주자만 연주하고 오케스트라가 쉰다고 피아노 연주자가 이기는 것도 절대 아니다. 이 협주의 궁극적인 목표는 협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완벽한 하모를 이루어 청중들에게 음악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데 있다. 누군가는 그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 것이고 누군가는 생채기 난 마음에 위로를 받을 것이다. 피아노 협주자(환경)는 오케스트라(관련부서)를 지휘하는 사람도 아니고, 오케스트라를 이기는 사람도 아니라 오케스트라와 협주하는 관계임을 명심하자. 협주의 성공 열쇠는 바로 오케스트라와 협업이다.


3. 피아노 연주자는 전체 곡 해석을 해야 한다.

 피아노 연주자는 자기가 맡은 파트를 열심히 연습하고 연주(탄탄한 기본 실력) 해야 한다. 또한 오케스트라와 협주(관련부서와의 협력)도 해야 한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전체 곡 해석을 위해 끊임없이 교감해야 한다. 피아노 연주자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주가 중요한 성공의 충분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음악적으로 전체 곡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해야 한다. 연주자는 지휘자와 같은 레벨에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강화되는 환경법규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고 Master Plan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탄탄한 기본기와 관련부서와의 협업을 뒷받침할 전체 곡 해석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며, 보다 고차원적인 일이다.


 이제 긴 글을 맺어야겠다. 남의 일, 남의 동네 일은 평론하기가 참 쉽다. 나는 평론가, 관람자라는 안전한 도피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다시 되묻고 싶다. 아니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난 과연 협주하며 살고 있는가? 우리의 협주가 라흐마니노프 2번 협주적처럼 첫 인트로를 파격적으로 시작할 수도 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라는 황제 2악장처럼 연주할 수 있다. 그리고 3인방 환경전문가인 김권박은 한 시대를 풍미하는 빼어난 피아노 협주자로 성공하길 기원해본다. 환경, 협주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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