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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Nov 01. 2023

고양이의 망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회사 공장 사무실에 출근하면 항상 길고양이 암컷, 수컷 두 마리가 주변을 어슬렁 거린다. 아침에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여사님이 계셔서, 여사님께서 출근할 때 타고 오시는 스타렉스가 오기를 6시쯤부터 7시 사이에 사무실 주차장에서 늘 기다린다.


여사님은 마음이 곱고 여리셔서, 두 고양이 사료를 개인 돈으로 사고, 비가 오면 비 맞지 말라고 우산도 사료그릇에 채워주신다. 그렇게 고양이 두 마리에 대한 여사님의 관심과 애정이 늘 계속되고 있었고, 고양이도 새끼도 키우고 먹을 걱정 없이 잘 살고 있었다.


어제 오후에 현장을 다녀와서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에 여사님 스타렉스 하부에서 암 고양이가 웅크리며 대치하고 있었다. 여사님께 물어보니, 암고양이가 생라면 뿌셔놓은 특별식을 주고 있었는데, 오늘 특식 안 준다고 저렇게 삐져있다고 하셨다. 순간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이 되었는지 “여사님, 간식은커녕 앞으로 3일만 밥 주지 말아 보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지금껏 수년간 여사님이 차려준 사료, 비 맞지 말라고 씌워준 우산, 겨울이면 추울까 깔아놓은 옷까지 그 녀석은 어느덧 당연한 권리가 되었고, 생라면 특식 안 준다고 여사님한테 삐져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던 동물이던 은혜를 모르면 거둬 키우는 게 아니라는 말이 떠올랐다.


오늘 아침에도 고양이 녀석들이 사료 주시는 여사님을 본체만체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류승범의 영화 대사가 생각났다. 앞으로 딱 1주일만 사료를 주지 말자고 여사님께 말씀을 드렸다. 일본 애니 “고양이의 보은”이 생각났다. 보은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마워할 줄은 알았는데 사무실 고양이는 “망은”을 하고 말았다.


고양이랑 대화를 하면 그 녀석의 입장과 생각을 들을 수 있을 텐데 무척 아쉽긴 하다. 앞으로 1주일 동안 늘 주던 사료를 주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망은이 보은이 될지, 아니면 망은이 배은이 될 수도 있다. 아마도 먹이를 주지 않은 이곳을 떠날 가능성이 클 것 같다.


사람들로부터 위로도 받고,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받기고 한다. 그리고 나는 혹시나 그 고양이처럼 특식 안 준다고 삐져서 으르렁거리며 사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앞으로 두 고양이의 행보가 기대된다. 하지만 내심 내가 생각했던 뻔한 결말에 이를까 씁쓸하다. 나도 그런 고양이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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