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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Sep 22. 2023

관전하지 않고 참가하는 삶

나는 아직 편안한 관중석보다 비바람 부는 필드에서 뛴다.

엊그제 회사에서 혁신과제 수행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혁신과제를 진행하면 좋을지 현재의 문제점과 앞으로의 개선방향 전반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말미에 공장 현장에서 근무하고 싶지 않은 조직문화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자연스레 어떻게 내가 현장에서 다시 근무하게 되었는지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2004년에 입사해서 짧게 약 3.5년 정도 포항에 있는 공장에서 일했었다. 그러던 중에 포항에 있는 본사로 발령을 받고, 짧게 약 1.5년 정도 해외근무도 했다. 그리고 우연찮게 본사 환경에너지실, 정도경영실까지 합치면 약 6.5년을 해외, 서울 본사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2014년에 정도경영실에서 근무하고 타 부서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대부분 내 동료들은 서울이나 해외근무를 원했고 회사에서는 부서배치를 해줬다.


나는 그때 다시 포항 공장으로 지원을 했고, 주변 동료나 심지어 내 팀장님도 내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들 지방에서 서울로 옮기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너는 왜 굳이 남들이 안 가려고 하는 지방 공장으로 갈려나?”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때 나의 대답은 “저는 엔지니어로 일하기 위해서 지금의 회사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 승부를 봐야죠.”라는 호승심 가득한 대답을 했다.


2014년 12월에 다시 포항 공장으로 돌아와서 어느덧 벌써 8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유치원 생이었던 아들은 벌써 중2가 되었고, 5살 딸아이는 이제 어느덧 초6이 되어 아빠에게 뽀뽀도 잘 안 해주는 사춘기 소녀로 자라났다. 그리고 나는 과장에서 차장으로 진급해서 지금은 팀장 7년 차로 일하고 있다.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도 대답은 한결같다.


나는 대학, 대학원까지 총 6년의 시간을 기계공학을 배우고 학습을 했다. 그리고 내가 익힌 인류의 유산 중에 극히 일부를 이해하고 이를 현장에서 적용해보고 싶었다. 물론 공장이 아닌 본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을 할 수도 있다. 본사가 편안한 관중석이고, 공장이 비바람 부는 필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본사에서 현장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요즘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나에게 남은 직장생활에서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라는 의문이 든다. 물론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만, 그것뿐이라면 사는 게 너무 심심하다.


나는 인생이라는 경기에 관전하지 않고, 참가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직 편안한 관중석보다는 비바람 부는 필드에서 뛰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관중석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 비바람 부는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경기의 승패 뒤에 눈물과 땀을 흘리며 뛰고 있는 선수들을 다그치거나 욕하지 않고 열렬히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직은 나는 비바람 부는 필드에서 뛰어야 하는 현역 선수이다. 그래서 오늘도 신발끈을 다시 조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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