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식 Jan 07. 2024

무작위, 책임이 없는 직장생활 6일

인도네시아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다. 

1.2일부로 공장장 직책을 내려놓고, 1.8일부 인도네시아 현지공장으로 보임을 받았다. 나는 정확히 6일 동안 아무런 책임이 없는 직장인으로 6일을 지냈다. 리더/공장장이란 직책을 만7년 동안 수행하고, 6일 동안 봄방학이 생긴 셈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회사로부터 어떠한 의무감을 부여받지 않은 무작위의 시간이었다. 나는 항상 어떤 일을 해야 하고, 퇴근 이후에 걸려오는 회사 전화에도 가슴을 조렸다. 그런데, 1.2~1.7일까지 6일간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무작위라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나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회사에서 관리감독자로 지내오면서 나는 항상 작위의 상태에 있었다. 매일 매시간 걸려오는 전화와 이메일을 항상 받고, 그 와중에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내고 동료들과 함께 협의해서 의사결정도 해야 했고, 때로는 지루한 회의를 해야했다. 항상 작위의 상태에서 나는 부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내게 주어진 6일은 무작위의 상태에 놓여있다.


그리고 1.8일을 기점으로 나는 다시 작위의 상태에 놓인다. 그래서 더욱더 무작위의 상태가 매우 낯설고도 반가울 따름이다.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을 하나씩 꺼내어 읽어보고, 무료하게 침대에서 뒹굴어도 본다. 일요일 오후 나른한 낮잠도 실컷 자보게 된다. 나는 작위의 현실에서 더욱더 활기차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작위의 상황을 가끔 만들어 보기로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내 삶에서 PAUSE 버튼을 누리고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오랫동안 입지 않은 옷을 정리하고, 한번도 읽지 않은 낡았지만 새책은 당근에 올려 다른 사람에게 입양시켰다. 그리고 복잡한 내 삶을 하나씩 버리고, 하나씩 정리해야겠다. 난 그동안 너무나 많은 책임감과 물건들과 함께 살아왔던 셈이다. 이제 무작위, 책임이 없는 직장생활 6일이 점점 끝나간다. 하지만 이 기간동안 느꼈던 무작위의 마음상태를 작위상황에서도 유지해보기로 한다. 연속되는 작위의 시간 중간에 간헐적으로 무작위의 상태를 만들어 보기로 한다. 그래서 더욱더 6일의 마지막 날인 1.7일이 소중하다. 오늘까지 난 무작위를 즐긴다. 


2024.1.7일(일)

적도 근처 인도네시아 찔레곤에서 씀. 

작가의 이전글 공장장의 자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