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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Mar 16. 2016

소설로 써보는 한동대 이야기 #10

10편.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한동대는 재학생 시절부터 졸업을 하고 나서도 듣게 되는 여러 문구들이 있다. "Why not Change the World", "하나님의 대학", "Handong Global University"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런 구호들 기저에 "선민의식"이 흐르고 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가르침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곳.. 그 곳이 한동이다. 다들 이 말에 동의하는지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받아지고 있는 듯 하다..


1995년에 내가 그랬고, 석사 졸업한 2004년에 내가 그랬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독 "한동인"만 특별히 사랑하실까? 그리고 유독 "한동인"만 특별히 선택해서 포항 촌구석에 모아 두셨을까? 졸업을 하고 나서 10년을 한동 밖에서 살다보니 그러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선민의식을 버릴 때 비로서 선민이 되고, 엘리트주의를 버릴 때 엘리트가 되고, 권위주의를 버릴 때 권위를 되찾을 수 있다. 곤고한 "선민의식"은 우리에게 먼가 특별하고 다른 사람과 구별짓는 소위 잘못된 "엘리트주의"로 빠질 위험이 매우 높다. 한동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덜 사랑하는 건가?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다른 달란트를 주신다. 이 달란트가 개인의 재능일 수 도 있고, 집단의 이름일 수 도 있다.


난 하나님께서 한동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한동인이라는 달란트를 주셨다고 생각한다. 송태헌 이사장, 김영길 박사 등을 통해서 남송리 3번지라는 물리적 공간을 허락하셨고 거기에 세계각지, 전국팔도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아 2014년까지 2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허락하셨다. 우리는 그 달란트로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이루고자 했는가?


4.19를 이룬 혁명의 세대는 5.16으로 역사적 절망을 경험하고 10.26의 총성으로 급작스럽게 찾아온 짧은 희망은 12.12와 5.18로 또 다른 철권통치를 불렀고 또 역사는 후퇴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시대에도 절망하지 않고 거리에 나서는 사람이 있었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역사는 뒤처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발씩 그 걸음을 내딛었다.


2014년 1월, 김영길 총장이 퇴임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총장님이라고 부르지만 나름 공적인 글이어서 호칭으로 대신한다.) 사실 너무 오래했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역사적 명제는 연역적 도출이기 보다는 귀납적 결론에 가깝니다. 역사적으로 그 누구도 이 명제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난 김영길 총장이 절대부패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다만 한 대학교의 총장이라는 자리에 19년을 있다보면 그 리더쉽은 자연스럽게 "관성"이 생기고, 그 주변에 이끼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시스템을 얘기하지만, 한동대에는 변변한 시스템을 마련할 만한 현실적인 여유가 없었다. 역사적으로보면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세상을 바꾸는 과업을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그 후계자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여서 더 큰 혼란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무제한적인 신뢰와 은혜를 받은 수많은 왕들도 차기 왕 선정에 실패하여 남유다도 혼란을 겪었다.


김영길 총장의 순수한 열정, 희생을 폄하해서도 안되고, 무작정 찬양해서도 안된다. 한동에서의 그 분의 역할을 우리가 박수치고 축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 분이 남겨놓은 짙은 그림자도 우리가 냉정하게 고민하고 고쳐야 한다.


이제 글을 맺고자 한다. 한동인은 너무나 "특별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그 "특별함"으로 우리를 "선민의식"으로 묶여있지 말고 "선민의식"을 버려야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과 "다른" 달란트를 주셨을 뿐이다.


한동대에 처음 발을 딛었던 날을 기억한다.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서 한참을 지나서 해뜨는 집(횟집) 위치 즈음에 바라보던 바다의 모습에 놀라웠고, 그렇게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꽤나 긴 오르막을 지나 다 지어지지 않은 기숙사를 보면서 다시 한번 놀랐다.


한동에 들어간 길은 그렇게 작고, 꼬불꼬불했다. 하지만 지금은 왕복 4차선에 일자로 뚤렸다. 난 가끔 20년쯤 지나니 한동에 이르는 길이 너무 넓어졌고, 일자대로로 연결되었다. 우리네 삶이, 우리네 생각이 너무 넓고 일자로 뚫려버려서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지 않는지 반성해본다. 난 한동대 정체성이나 한동대에 대한 토론이나 논란이 꼬불꼬불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양한 생각, 다양한 오솔길이 생겼으면 좋겠다. 너무나 일방적인 주장으로 관철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버려야할 건 일방적인 "선민의식"이다.


난 한동대가 "하나님의 대학"임을 믿는다. 그렇지만 우리만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특별한다. 우린 그 시절 "한동"이라는 달란트를 주여받았을 뿐이다. 이제 주님이 오셔서 달란트를 계산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나? 다들 충성된 종이 되길 빌며 이 글을 마친다.


THE END..


마지막까지 글을 읽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무엇하나 특별한 재주가 없는 제가 10편이라는 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들의 관심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글로 마무리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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