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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Mar 15. 2016

소설로 써보는 한동대 이야기 #8

8편.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정신

한 사람의 자연인도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저마다의 삶을 영유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시대가 원하는 "시대정신" 또는 "소명"을 모두 외면하고 살아갈 수 도 없다. 70년대 학번은 통기타, 쎄시봉으로 그 시대의 낭만을 노래했고 또한 산업일꾼으로서 "시대정신"을 이어 받았다. 그리고 80년대 학번은 컬러TV, 록으로 자유를 노래하였고 조국의 민주화의 시대사명을 이룩하였다.


90년대 학번은 x세대, 신인류로 기억되고 있다. 90년대 학번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업은 과연 무엇일까? 몇년 전만 해도 "안녕들하십니까?", "철도민영화", "국정원 선거개입" 등의 사건들이 있었다. MB정권, 근혜정부로 대변되는 새누리당 정권세력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 근간을 뿌리채 뒤흔들고 있다. 추후에 무죄로 선고 받을 수 있다는 법리적 추정을 알고 있으면서 그 분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 무리하게 기소하고 수사하는 정치검찰이 있었다.


하수상한 세상에 기독교인을 떠나서 저마다 분노하고 가슴속에 울분을 흐느끼고 영화 "변호인"으로 쓰린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분노를 표출하려 하면 금세 "종북"이 되고 교회내에서는 "분열"을 조장하는 영이 되어 목사님 눈 밖에 난다. 내가 언제 북한의 지령을 받은 적이 있고, 내가 언제 교회 내에서 분열을 야기했겠는가? 하지만 이 시대 한동인의 중요한 시대정신이 진보에 있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난 90년대 학번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업은 "통일세대의 주춧돌"이라 생각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한국전쟁이 발발되었다. 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공산"이란 단어 자체가 유럽을 떠돌았던 "유령"이 아니라 내 가족과 친구를 죽인 "악" 자체였다. 그래서 공산당이라는 말 대신 "빨갱이"이란 말을 즐겨 사용했다.


심정적으로 충분히 이해가는 말이다. 그리고 40년이 지났다. 남한은 경제발전에, 민주주의로 화려한 꽃을 피웠고, 북한은 주체사상으로 완전히 무장하고 3대 세습을 통해 병영국가로 변신했다. 거기에 두 국가는 상대를 미워하면서 상대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권력을 유지하고 지속시켜왔다.


애굽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구세대는 40년동안 광야를 배회하였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보호받으면서 아침에는 만나로 먹었지만 결국 가나안에 들어간 구세대는 여호수와와 갈렙 뿐이었고, 정확히 40년이 지난 후 그 다음 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갔다. 그렇게 과거를 잊는다는 것은 한 세대를 상징하는 30년이 지나 40년이 되어서야 그 다음 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90년대에 학번을 다닌 사람들은 우선 "북"에 대해서 자유롭다. 또한 공산당이 "빨갱이"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종북"이 아님을 이성적, 감성적으로 충분히 인지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신세대"이다. 하지만 70,80년대 학번이 이루어놓은 집단적 체험(데모, 6월 항쟁 등)은 사라지고 높아져만 가는 등록금, 취업률으로 고민했다.


우리가 잃은 것은 시대적 자의식이고, 우리가 얻은 것은 물들지 않은 반공의식이었다. 그래서 95년 포항에서 한동대에는 전라도와 경상도 친구가 한방을 쓰고 같이 숙제를 하여도 사투리의 벽은 있었지만 이념의 벽은 없었다. 전라도 친구들은 배신을 잘하니깐 절대로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내 부모님"의 잔소리는 터무니 없는 것으로 3일만에 증명이 되었다.


그렇게 물들어 있지 않은 친구들이 신인류, x세대인 90년대 학번이다. 난 개인적으로 그 시절 그렇게 배웠고, 놀았던 친구들이 교회까지 침투된 "빨갱이 딱지"로 부터 자유롭게 사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90년대 학번들에게 시대적 과업을 제기될 "통일세대의 주춧돌"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고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90년대 학번이하들이 40대 중반을 넘어가면 시대의 어젠더를 이어받아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것이라 생각한다. 시기는 좀 늦을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 시대가 올 것이다. 그 시대의 과업은 90년대 학번 전체가 해야 하겠지만, 한동대는 기독교내에서 "북한"을 위한 전진기지로 쓰여질 기회를 찾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때까지 놀고 먹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묵묵히 실력을 인정받고, 깊은 영성을 유지하고, 동지를 찾아서 연대하고 있어야 한다.


시대가 Calling할 때 응답하기 위해서는 내공을 다져야한다. 난 그렇게 믿는다. 한동대, 한동대 출신이 기독교내에 침투한 "빨갱이 의식"을 몰아내고 "권력영합"을 몰아내고 "무분별한 팽창"에 일침을 가할 "소금"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학교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바로보기가 힘들고, 역사의식도 미흡한 편이다. 그렇다고 희망을 잃지 말자.


1995년 3월 7일.. 400명의 1기 입학생이 한동대를 끝까지 선택하고 많은 어려움을 이긴 이유가 "미래"에 있지 않았다. 같은 방, 방돌이, 방순이와 밤새 나눴던 꿈과 사랑의 이야기가 우리를 들뜨게 했고 세상을 바꿀 수 도 있다는 철없는 "비전"을 나눴던 그 시절 "현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90년대를 오롯이 보낸 나의 친구, 나의 동문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P.S 이제 나를 포함해서 내 친구들은 회사를 다니게 될 시간이 다닌 시간보다 더 짧아지고 있다. 시대정신은 고사하고 제 정신으로 직장생활을 하기도 버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그토록 간절히 꿈꾸었던 그 시절 꿈과 비전을 결코 잊지 말자. 우리의 꿈을 잊고 살았을 뿐 결코 잃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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