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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Aug 01. 2015

인문학, 넌 어디서 왔니?

1편. 인문학은 폭력이다.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 얘기를 해야겠다. 산업혁명 전후로 유럽 열강들이 자국의 산업 보호를 위해 보호무역을 경제정책으로 활용하다가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자 개도국에게는 보호무역 보다는 자유무역을 강요했다고 한다. 자신들은 사다리에 올라와서 다른 나라들은 사다리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의미에서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한다.


인문학 열풍은 이와 비슷하다. 제도권에 들어와 있는 주류의 사람들이 비제도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겸비하라고 요구한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사다리 위에 올라선 사람도 그닥 인문학적 소양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대략 4-5년부터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 2008년 금융위기 후에 세상이 바뀐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찬양하던 자본주의는 비틀거렸고 양적완화의 링거를 맞고 비실거렸다. 신용(credit, debt) 기반으로 한 세계경제는 빚더미(debt)에 올라앉자 사람들은 혼란스러웠다.


그 혼란의 시기에 팽배한 물질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었고 인문학 열풍이 일어났다. 근데 그 열풍의 피폭대상이 한창 입시를 준비하던 10대에게 취업을 준비하던 20대에 집중되었다. 이미 제도권 사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던 30-50대는 그저 회사에서 사외강사의 역사강의로 인문학을 찔끔찔끔 섭취하고 있었다.

영어유치원, 선행학습, 조기유학, 사회봉사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빡센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은 스파르타인에게 아고라에서 피 터지는 논쟁을 즐기고 자유롭게 사유하는 아테나인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건 폭력이다. 인문학은 요약본 책을 외운다고 신문 사설 몇 번 읽는다고 생기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그런데 기성세대에게도 있지도 않은 인문학적 소양, 통섭사고를 그들에게 요구할 순 없다. 대졸 신입 공채에 역사 에세이를 쓰도록 하고 한국사 자격증을 요구하는 건 또 다른 폭력이다. 단순히 안다는데 그치지 않고 실천에 옮기는 지적 용기까지 있을 때 그 사회는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역사 에세이 잘 쓰는 것보다 질소과자 봉지를 타고 한강을 건너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기성세대의 사다리 걷어차기의 유려한 버전이 인문학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과연 419을 이룬 고등학생의 그들이 경제적 탐욕에 휩싸여 747을 이루겠다는 그 사람에게 표를 던지고 국정원 대선개입을 한 그 사람에게 표를 던졌다.


인문학은 폭력이다. 적어도 입시와 취업을 준비하는 그들에겐 폭력일 뿐이다. 시험을 잘 치르는 사람이 최고라고 가르쳐놓고 이제 시험을 잘 치르는 것보다 생각을 다르게 할 줄 아는 사람을 뽑겠다고 한다. 평생을 달리기만 잘 하는 법만 가르쳐놓고 어느 날 기타 잘 치고 노래 잘하는 사람을 뽑겠다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지만 어쩌겠냐?


어느 덧, 나도 기성세대의 문턱을 넘어 문지방 너머 세계에서 서성 된다. 스파르타인으로 평생을 자라 온 그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우린 또 펠로폰네세스 전쟁에서 스파르타가 이기지만 그리스는 쇄망의 길을 걷게 된다. 그 슬픈 전쟁이 앞에 보이는 듯하다. 인문학이 그래선 안되지만 그들에겐 폭력이다. 그 폭력을 멈추지 않으면 공멸할지 모른다. 마치 2천 년도 훨씬 전의 그 전쟁처럼 말이다.


2편. 인문학은 마케팅이다.


취업률이 대학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자 소위 취업률이 낮은 문과계열의 일부 전공이 비인기로 전락하고 점점 문과지망생도 줄어들게 되었다. 대학 졸업 전(Pre University)에 있는 사람들은 인문학의 위기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 반대에 있는 대학 졸업 후(Post University)에 있는 사람들은 인문학의 돌풍이라고 느꼈다.


왜 이리 동일한 현상을 두고 한 편에서는 위기라고 말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열풍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난 이러한 현상을 "인문학은 마케팅이다."이라는 명제로 설명코자 한다.


과연 인문학의 위기가 있던 적이 있었던가? 사실상 인문학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그건 인문학을 전공한 대학교수, 전문가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근대사 이후에 과연 우리에게 인문학이 있었는가? 그저  먹고살기 위한 학문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학문이라는 건 대학교수가 논문을 쓴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동시대인들이 역사의식을 가지고 시민연대를 통해서 인문학적 소양이 성숙하게 될 때 그제야 인문학이 시대 담론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선배는 리영희 선생님의 글을 숨죽여 읽었고 공산당 선언을 터질 듯한 심장으로 지켜봤다. 그렇게 역사를 바꾸었고 때론 서울역에서 철수를 하면 가슴을 쳤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읽으며 슬퍼하고 국가, 역사, 권력을 생각하고 사유하였다.  교보문고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온 인문서적의 순위에 판매량에 인문학을 운운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시대를 아파하고 서울역사에 나왔던 수많은 인파들이 경제문제에 담합하였다. 서울역사에 모였던 인파는 모델하우스에 모여서 떴다방과 프리미엄을 얘기했다. 민중가요를 부르던 확성기 대신에 분양권을 외치는 유선 마이크를 잡았다. 알량한 역사의식은 찾아볼 수 없고 악다구니로 변했다. 스스로 버려버린 인문학적 소양을 그들은 위기라고 말한다. 자식에게 일류대학만이 성공이라고 얘기해놓고 그제야 위기라고 떠들어댄다.


스스로 버린 스스로 자초한 위기에서 할 수 있는 건 2만 불 시대의 정체이고 통섭이었다. 대한민국에 잡스가 없고 아인슈타인이 없는 이유를 인문학의 부재로 손쉽게 결론지었다. 그래서 기업 중역에게 위기해법로 인문학을 마케팅했다. 닌텐도의 열풍은 금세 명텐도를 탄생케 했고 말도 안 되는 창조경제를 운운했다. 시대에 입을 틀어막아놓고 그 입으로 창조를 얘기하는 시대착오적인 일들을 자행했다.


결국 인문학의 위기를 과장하고 인문학을 파는 장사꾼들이 판을 쳤다. 그 시대의 문제에는 단 한마디도 못하는 지식인들이 과거 역사를 들먹거리며 젊은이들이 과거를 모른다고 탓했다. 단지 한국사가 필수 교과목이 아니라는 사실에 호들갑을 떨 뿐이고 정작 고등학생이 시국선언을 하면 학생의 본분을 운운하며 짐짓 꼰대짓을 할 뿐이다.


그저 위기를 조장해서 체제의 안전을 도모하였던 구시대 방식이 여기서도 통용되었다. 인문학이 취업의 도구, 생산성 향상, 신제품 개발에나 써먹는 마케팅 용어가 되어버렸다. 위기가 돌풍이 되는 기막힌 상황엔 은밀한 마케팅의 기획이 있었다.


지금의 50-60대 시대를 바꿀 기회와 용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변절했다. 지금의 30-40대는 기회는 있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10-20대는 용기는 있느냐 기회가 없다. 내가 속한 세대는 비겁했고 윗세대는 변절했고 아랫세대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저 돈벌이에 함몰된 프레임을 강요하는 시대의 변절은 마케팅이란 고상한 가면을 쓰고 인문학을 팔고 있다. 우린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3편. 인문학은 사고이다. 


예전 글에도 여러 번 얘기했듯이, 인문학과 과학은 애초에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으나, 서로 자란 환경이 너무 다른 탓에 이제는 얼굴만 비슷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리스 문화가 꽃피우던 시절에서 시작해서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시절에 이르기까지 철학과 과학은 한 몸이었다. 생각(Thought)이 쌓이고 쌓여서 생각하고(Thinking), 이를 하나의 체계로 이룬 사상(Idea, 이데아)이 되었다. [사고하다(think)의 미분값이 생각(thought)이고 적분값이 사상(IDEA, 이데아)이다.]


물론 계급세계의 문밖에 있던 노예나 양민들은 사유의 세계가 허락되지 않았다. 아테나가 그러했고, 조선이 그러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를 외치던 많은 사람들이 체제에 항거하여 왕이 되기도 하고 효수되어 저작거리에 걸리기도 했다. 있는 자와 가진 자의 지적 유희도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피를 뿌린 민주주의와 그에 상응하는 자본주의의 토양 아래 과거에는 누리지 못한 사유의 선물을 많은 사람들이 받았다.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학문이다. 그 대상이 사람에게 직접 향해 있을 수도 있고 사람이 만든 제도, 문화, 철학, 과학,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룰 수 있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선언이 인문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625가 50년에 북침에 의해 발발한 전쟁을 모른다고 인문학이 위기가 오지 않는다. 그보단 경제의 논리에 우리의 입과 사고를 제약하는 검열에 침묵하고 동조하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a+b)^2가 a^2+2ab+b^2라고 배웠다. 학원 선생은 배분법칙을 이용해서 식을 유도할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고 대수학적인 관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우린 그저 배웠다. 왜 2ab가 더해지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숫자를 한번 대입해보았다.

(2+3)^2은 5^2이니 25라는 숫자가 나왔다. 2^2+3^2은 4+9 니깐 13이다. 그러면 두 수의 차이는 12라는 값은 2*2*3으로 구해질 수 있다. 난 (a+b)^2가 a^2+b^2일 것 같았는데 2ab만큼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숫자를 대입해보며 알았다. 그건 기하학적으로 문제를 풀 때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a^2은 면적으로 풀면 된다.) 난 그저 가르쳐주는 대로 외우지 않고 의문을 가지고 숫자를 대입해보며 실제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 세상, 사물에 의문을 가지고 사유하게 될 때 인문학이 꽃 핀다.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시민들이 연대하고 힘을 합칠 때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 선행학습은 우리의 호기심을 죽인다. 그리고 사고하지 않은 인간으로 만들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세상과 맞짱 뜨고 꼰대에 저항하는 사유적 인간은 꼴통이 아니라 자유인이다. 인문학은 독서나 교육에서 오지 않는다. 사고할 수 있는 자유와 그 자유를 실천할 용기에서 나온다. 인문학, 넌 어디서 왔니? 그 물음에 답할 수 있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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