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식 Aug 02. 2015

똑똑함은 웃음과 항상  함께하지 않는다.

똑똑하고 웃을 줄 아는 “똘망”한 사람이 되는 법

똑똑한 사람들은 제 아무리 겸양을 떨어도, 스스로 똑똑한 줄 안다. 마치 예쁘고 잘 생기게 태어난 사람(얼짱)이 자신의 외모가 좀(?)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듯이 말이다. 똑똑하다(Smart)하다는 건 어쩌면 키가 크고(Tall) 예쁜 (Pretty) 것처럼 외적으로 물려받는 선척적인 경향이 큰 영역이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집단을 이루는 경우는 그 똑똑한 정도의 차이가 훨씬 크게 도드라진다. 똑똑한 사람들이 훨씬 더 똑똑한 넘사벽의 천재를 만나면 보통의 경우 좌절하다가 질시에 사로잡힌다. 본인보다 덜 똑똑한 사람들(평범한 사람들)보다 나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똑똑한 사람을 시샘하고 파괴적인 경쟁의식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경쟁심에 사로잡히고, 남들과 비교해서 자신을 평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게 연봉이나 실적일 수도 있고, 수능성적이나 내신등급일 수 도 있고, 학벌이나 학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 똑똑한 사람은 ‘똑띠’가 되어 살아간다. 똑똑하게 일처리나 공부도 곧 잘하고, 사람들과 관계도 대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그들은 똑똑함 (Smart) 뒤에 항상 불안하다.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나타날까 봐, 내가 뒤처지지 않을까 하며 불안감에 휩싸여 산다. 그래서 더 열심히, 경쟁적으로 살아간다. 그리하여 자신을 소모해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똑한 사람들 중 일부는 웃음(Smile)을 잃지 않는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고 똑똑하게 사는 삶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재능(똑똑함)이 일정 부분 선천적인 산물임을 알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 똑똑함을 세상에 돌려주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은 남들과의 경쟁하기 보다는 자신의 성장과 재능을 나눌 수 있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의 라이벌은 더 똑똑한 남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된다. 그래야만 소모적인 경쟁상황에 내몰리지 않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똘망”하다라고 말한다. 똘똘하고 희망을 품은 사람들..

웃음(Smile)과 유머(Humor)로 여유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 일부 똘망한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희망이 될 수 있고 모멘텀이 된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도 사회를 이끌어가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또한 똑똑함으로 무장한 엘리트주의적 사고방식도 아니다. 똘망한 사람들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무리 중에 한 부류를 이룬다고 이해했으면 한다.)


똑똑한 사람들만 가는 서울대, 똑똑한 사람들만 가는 대기업, 똑똑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법조계(판검사) 등등..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똑띠 이지만, 똘망하지는 않다. 우리의 대한민국은 똑똑함을 극단으로 추구하다가 웃음(Smile)을 잃어버렸다. 경쟁 속에 지지 않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모두들 달려갔지만 채워지지 않은 배고픔만 가득 찬 눈빛을 가져버렸다. 꽉 깨문 입모양을 가진 사람들로 변했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웃음(Smile)과 눈꼬리가 내려가는 웃음(Smile)을 가진 하회탈의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 갔다.


똑똑함(Smart)은 웃음(Smile)과 항상  함께하지 않는다. 똑똑하고 웃을 줄 아는 “똘망”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똑똑함을 알되, 여유를  가져한다. 그리고 웃어야 한다. 똑똑함에만 사로잡혀버린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본인도 변하고, 세상도 변한다. 이 세상엔 똑똑한 사람이 몹시나 많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만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 사회에 “똘망”한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또, 이제는 웃을 때(Smile)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인문학, 넌 어디서 왔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