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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영 May 28. 2021

"아꼬(나), 왈라, too."

빈센트 블루 - 비가와

Oh, just feel so sad inside.
오늘을 접어둔 채 잠에 드네.


오늘처럼, 그 날 내리는 비도 차라리 동남아시아의 것이었다. 



한없이 처지는 주말 아침에 으레 그렇듯이, 늦어진 아침식사를 위해 주섬주섬 집히는 대로 입은 추레한 차림으로 집 주변 뼈해장국 집에 들어선 참이었다. 항상 그렇듯 주방이모는 손님용 식탁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는데, 평소에 다른 점은 창가 쪽 테이블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중년과 노년 사이의 과도기쯤으로 보이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아저씨였다. 한눈에 봐도 식당 맞은편에 새로 올라가는 오피스텔 공사를 하러 온 인부의 차림새였다. 자리를 잡으며 식탁을 흘깃하니 식사는 진즉에 마친 듯 그릇들이 비어있었다. TV를 보던 이모가 뼈해장국이지, 하며 뚝배기를 불에 올려놓더니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학생, 여기 서울대 다니지? 저 치 외국사람인디 요 앞에 노가다 뛰러 와놓고는 소주 한 병 갖고 벌써 몇 시간째 저래 있어. 영어 잘하니께 그만 일어나라고 좀 해줘봐바."


늘어진 주말 오전 시간을 한 번에 다잡아버리는 당황스러운 부탁을 받은 나는 벙쪘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번잡해진 골목 속, 그나마 이런 복장으로 맘 편히 올만한 거의 유일해진 식당에서 상당히 불편해진 상황. 아직 뼈해장국은 나오질 않았고, 이모는 내가 저 테이블에 가기 전에는 절대 주방에 들어가지 않을 기세였기에, 거의 반강제로 부탁을 들어줘야 할 듯했다. 슬쩍 일어나며 조심스레 그 외국인을 살폈다. 때가 타서 검은색이 되어가는 진회색 티셔츠에는 PHILIPPINES라는 글씨와 필리핀 국기가 프린팅 되어 있었다. 덕분에 순간 조금은 긴장이 풀렸다. 10살 무렵 2년 정도 필리핀에 살았었기에 아직 기억하고 있는 따갈로그어가 조금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보고 있는 옆모습도 필리피노의 것이었기에, 어눌한 발음의 따갈로그어로 말을 걸며 다가갔다.


"꾸므스따 까?(안녕하세요?)"

타지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모국어에 놀란 눈으로 쳐다볼 법도 한데, 아저씨는 태연했다. 아니, 태연했다기보다 내가 말을 걸어올 것을 미리 알고 있던 듯했다. 눈동자조차도 전혀 미동을 하지 않고 아저씨가 대답했다.
"호프, 왈라.(희망이 없어.)"

'필리핀 여행 필독! 1시간 만에 배우는 기초 따갈로그어 회화!'를 기내에서 급히 읽은 한국인처럼 자신의 모국어를 뱉는 필리피노의 목소리는 먼지가 쌓인 듯 쇳소리가 났지만 한구석이 깊었다. '왈라'가 '없다'의 뜻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내다가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고, 바로 이해했더라도 도저히 덧붙일 말이 없는 이 무거운 대답에 나는 이모가 부탁을 할 때보다도 벙쪄버렸다. 잠깐의 정적 후, 아저씨는 빈 소주잔 하나를 맞은편 자리에 새로 놓았다.
 "여기 소주 하나요!"
유창한 한국어로 이모에게 술을 주문하고, 드디어 필리피노는 나를 쳐다봤다. 그 눈에는 '뭘 그렇게 멀뚱히 서있어, 와서 앉아.'라고 적혀있었고 나는 왠지 모르게 거스를 수 없이 의자를 빼고 맞은편에 앉았다. 쫓아내려 간 사람이 갑자기 대뜸 테이블에 앉아버려서, 혹은 외국인이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대뜸 놀란 이모는 잠시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그러다 에효, 하는 소리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갔고 금세 내가 주문한 뼈해장국과 아저씨가 주문한 소주 한 병을 내던지듯 내려놓고 다시 TV 쪽으로 등을 돌렸다.


아저씨의 언어는 들깨와 다데기를 함께 넣은 국물 같았다. 한국어, 영어, 따갈로그어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섞어댔기에 단번에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듣다 보니 차츰 원래 알고 있던 언어처럼 이야기에 집중하게 됐다. 비범한 분위기와 태도와는 달리, 사연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으레 들어봤을 법한 외국인 노동자의 타지 살이. 돈을 벌러 왔는데 가족은 멀리 있고 어느 순간 연락도 잘 되지 않는, 일은 하는데 돈은 안 주고 그러니 보람은 없는데 그렇다고 안 나오자니 다음에는 자신을 찾지 않을까 봐 그럴 수도 없다는, 그래서 뿌소(마음)가 아프다는,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아저씨의 언어로 번역을 하려는 찰나에, 쏟아지는 벌건 국물 같은 말들의 조류에 휩쓸려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고는 그냥 필리피노와 한국인의 소주잔 두 개를 말없이 채웠다. 해장국을 다 비우기 전에 아저씨를 찾는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는 끝이 났고 어딘지 모르게 못내 아쉬웠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에 가니 필리피노는 계산을 하지 않았고, 나는 2인분의 뼈해장국과 2병의 소주가 찍힌 영수증에 욕지거리와 어떤 감흥 따위를 함께 뱉어서 길거리에 버렸다.   



정신없는 아침에 일기예보를 보고 우산을 챙길 깜냥은 안되고 챙겨줄 이도 딱히 없어서 우산 없이 출근했다가 소나기에 된통 당했다. 스콜 같은 비를 피해 뛰어 들어온 흡연장에서 담뱃불을 붙이니 문득 문장 하나가 한참을 뒤늦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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