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자몽소다

박스에 적은 전상서

가족밖에 없다

by 재영

상병 오영택이 침상에 누워 빈둥거리며 넷플릭스와 왓챠를 이리저리 뒤지며 볼만한 영화를 고르고 있습니다. 이등병 시절에는 시간적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바로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렸는데 말이죠. 한참을 고르던 그는 ‘브루클린’이라는 영화를 재생합니다. 여주인공 ‘에일리쉬’는 어머니와 언니를 아일랜드에 두고 미국으로 건너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합니다. 허나 고된 일과 새로운 환경에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죠. 연락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 한 달은 족히 걸리는 우편으로나마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가족의 소식을 듣습니다. 가족의 품을 그리워하는 여주인공의 눈물을 보니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이 떠오릅니다.


스무 살, 대학에 입학하며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의 품 안에서 벗어나 혼자서 삶을 꾸려가다 보니 어려운 것들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또, 외로움이라는 룸메이트를 얻게 되었지만 이 친구와는 같이 사는 것이 참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이기에 부모님에게 징징대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도 있고, 잘 지내는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어서 되려 연락을 잘 안 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성실하게 탕자의 소임을 다 해내며 여러 사람에게 치이고 환경에 부딪히는 온실을 막 벗어난 화초였습니다. 그렇게 속이 다 곯아가며 어른이 되어간 저는 결국 병이 생겼고, 오히려 부모님을 더욱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입대 전, 부모님과 잠시나마 다시 함께 살면서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고 저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끼니마다 차려주시는 밥과 적적한 밤에 슬며시 열리는 방문들은 세상에 아직 저를 신경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핸드폰이 없는 훈련소에서 제 유일한 위안은 저녁 점호 때 나누어 주는 인터넷 편지였습니다. 부모님은 거의 매일 같이 편지를 보내주셨고 맛있는 음식 사진이나 키우는 강아지의 사진을 첨부해주셨습니다. 손으로 투박하지만 조심스럽게 잘라낸 사진들을 안주머니에 넣고 훈련 때마다 보며 힘을 얻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고, 전상서를 써서 올렸으나 군사우편은 통상 2주의 긴 시간이 걸린다 하더군요. 그래서 집으로 소포를 보낼 때, 물건을 담은 박스에 유성매직으로 급히 전하고 싶은 말들을 썼습니다.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지내고 있어요.’, 등 애교 하나 없이 너무도 상투적인 말들 뿐이었지만 진심을 담았고, 어머니는 그걸 역시 느끼셨는지 박스를 받고 펑펑 우셨다고 나중에 아버지가 전해주시더군요.


상병이 되어 군대라는 조직에 많이 익숙해지고, 전우들과의 우애 덕에 외로울 새가 없다 보니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리는 것이 다시 또 슬슬 번거롭고 귀찮아지기 시작하덥디다. 그러다 GP에 올라오니 핸드폰이 또 없어서 부모님 목소리가 더 잦게 궁금해지는 이기적인 불효자는 요새는 또 나름 자주 전화를 드립니다. 항상 밝게 반겨주시는 부모님은 제가 글을 쓰는 것도 응원해주시고 추운 겨울에 대한민국 가장 최북단에서 고생한다며 위로해주시고 끼니 걱정도 곁들여주십니다. 동생도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주며 농담도 던져주기에 전화부스 속 제 입꼬리는 중력을 거스릅니다. 영상통화로 보여주시는 우리 강아지도 반갑다며 아버지 핸드폰을 핥아대는 화목한 가족의 구성원임에 정말로 하늘에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 얼른 전역해서 멋진 가족사진 찍으러 가겠습니다. 항상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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