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자몽소다

인생 최고의 공연

음악이 가진 힘

by 재영

제가 좋아하는 오아시스라는 밴드의 노엘 갤러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입니다. 그가 방한 공연을 왔다가 한국의 팬들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는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바로 우리의 ‘떼창’ 문화 때문입니다. 저도 음악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음악을 너무너무 사랑하기에 많은 공연을 다녔습니다. 뮤지션의 히트곡을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이 같은 목소리로 따라 부를 때의 전율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정말 특별한 경험입니다.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뮤지션들과 그 많은 관객들이 하나로 동화되는 기적은 오롯이 음악이 가진 힘 덕분이겠지요.


군대에서도 이 영험함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훈련소에서 거의 가장 처음에 받는 교육은 군가 외우기입니다. 비장하고 웅장한 음들을 따라 부르다 보면 ‘정말 군인이 되었구나’하는 느낌을 받게 되죠. 개인적으로는 걷는 방법부터 새로 배워야 했던 제식 훈련 때보다 군가 외우기를 하며 조국을 수호하는 한 명의 군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옆 소대와 목소리 크기 경쟁이라도 붙게 되면, 내일 쉬어있을 목은 걱정도 않고 고래고래 악을 써가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목소리를 맞추다 보면 옆에 있던 모르는 아저씨가 전우가 되어갔죠.


인디밴드로 활동했었고, 마이너한 장르의 작곡가였기에 밖에서는 군대에서 걸그룹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용사들을 보며 음악적인 식견이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입대를 하더라도 걸그룹의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하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힙’ 한 것과 거리가 좀 있다고 생각했고 대중성이 뛰어나서 예술성이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훈련소에 들어간 지 딱 2주 만에 저는 제 입대곡인 ITZY - Wanna Be의 모든 가사를 다 외우고 현역으로 활동 중인 걸그룹은 물론이고 이미 해체한 걸그룹 멤버들의 이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1년 내내 빌어먹을 코로나 때문에 위문공연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생활관의 TV로 하루에도 걸그룹 뮤비를 단 하나의 과장도 없이 10편 이상씩은 매일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전우들과 어느 그룹이 더 좋은지에 대에 싸우듯이 토론하다가도 음악만 나오면 전부 화면에 집중하고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겐 아주 특별한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10월, 늦은 유격 훈련을 받았고 저는 유격의 밤 행사에서 다른 전우 두 명과 함께 장기자랑을 나갔습니다. 포상 휴가가 걸려있었기에 휴가를 벌자는 순수하지 못한 의도를 가지고, 이적 - 하늘을 달리다와 처진달팽이 - 말하는대로를 선곡해서 무대에 올랐습니다.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시작했는데,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대대 구성원들 3백여 명의 목소리들이었습니다. 군대에서의 행사이다 보니 홍대의 클럽이나 대학 축제 무대의 음향에는 비할 수도 없이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저는 그 날 생애 최고의 공연을 했습니다. 정말 모든 가사와 멜로디를 다 같이 따라 불러주었고, 정말 황홀했습니다. 노엘 갤러거가 받은 느낌을 저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힘든 유격체조와 장애물 극복 코스를 같이 하며 느꼈던 전우와의 유대감도 아주 컸지만, 그 순간 저는 정말 전우들과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여운은 공연 이후에도 남아서, 포대장님을 비롯해서 모든 간부님들과 우리 포대 용사들이 20인용 텐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제 기타에 맞춰 여러 애창곡들을 두 시간 동안이나 더 불렀습니다. 음악을 공부하고 기타 연습을 열심히 해왔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보상을 모두 받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경험들 덕분에 제가 음악을 사랑하게 된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일상적 대화만으로는 전하기 힘든 감정들, 받기 힘든 느낌들은 아름다운 선율로 넘치도록 서로가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겨울에 마시는 따뜻한 핫초코 같은 위로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샴페인 같은 기폭제가 되어주는 음악입니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제가 만들 노래들이 여러 명에게 불리어지기를 기원하며 저는 또 기타를 잡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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