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자몽소다

“나잇값, 그거 얼만데?”

사람의 깊이는 시간이 파주지 않는다

by 재영

이십 대 후반에 군대에 오면, 선임은 물론이거니와 웬만한 젊은 간부님들까지도 저보다 어린 웃지 못할 상황에 놓입니다. 동년배인 간부님들은 이미 대위, 중사 등 높은 직급에 계시고요. 가끔 전우들에게 어떤 간부님들과 나이가 같다고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엥? 너가 훨씬 어린것 아니었어?” 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거울을 요리보고 조리 봐도 동안인 얼굴은 아닌데 말이죠. 밖에서는 저를 소개했을 때 제 나이로 봐주었던 것 같은데 군대에서는 다들 놀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빡빡 민 머리와 왼쪽 가슴의 상병 약장에만 탓을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합니다. 저보다 더욱 짧게 3mm로 머리를 민 동년배 일병들 중에서도 제 나이로 보이는 용사들이 있으니까요. 그들에게 ‘동안이 아닌 이유가 뭐예요?’라고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천천히 그들과 저의 다른 점을 관찰해보았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나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그동안 제가 살펴보고 내린 결론으로는, 사람의 깊이가 얼굴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예닐곱 살씩 많은 나이로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동화’를 선택했습니다. 밖에서보다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고, 깊은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나잇값 좀 해라!’라는 구박을 듣기도 하나 봅니다. ‘나잇값이 얼만데?’라며 실없는 소리로 받아치지만 가끔은 가슴이 저릿합니다. 처음에는 그동안의 삶에서 얻어왔던 경험들을 토대로 말을 하고 행동을 했지만 그 행동들이 어느새 주위의 전우들과 거리감을 형성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어울리고 함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동년배의 전우들은 자신의 것을 지키며 주위 사람들과 아주 친하지는 않더라도 ‘조언자’의 역할을 맡으며 잘 지내고 있더군요.


직업 군인은 특성상 결혼이 빠른 편입니다. 같은 나이의 간부님들을 보면, 아이가 있는 분과 아직 미혼이신 분들에서도 느껴지는 깊이가 조금은 다릅니다. 아버지 혹은 어머니이기도 한 간부님들은 누가 보더라도 ‘어른’입니다. 직장 외에도 육아 등 생각하고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목소리에서조차 저보다는 조금 더 깊은 속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돌아보니, 제 아버지도 지금 제 나이일 때 이미 아버지였습니다. 한 가정을 이루고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저 오늘 점심밥이 무엇인지가 크게 중요한 사람과는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죠.


군대에서야 다른 전우들과 친구처럼 잘 지낼 수 있고 좋지만, 전역 후의 모습이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예비군 7년 차로 사회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이 정도의 깊이로 누군가와 만나서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따위의 것들이요. 그래서 제 깊이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내면과 대화를 하고, 조금 더 주위의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적고 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전우들이 ‘갑자기 어른 같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진중해진 표정과 분위기에서 나온 말이겠지요. 시간이 저절로 사람을 깊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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