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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ibe Apr 18. 2021

마법사와 나

뮤지컬 위키드의 인문학

One Short Day 

전 세계가 전염병과 전쟁으로 신음하는 가운데, 수많은 서울 시민들이 인류의 가장 오래된 공연장, 사회적 실험실, 철학적 토론장이자 그리고 가장 체계적인  종교의식이 치러지는 극장에 몰려들고 있다. 


뮤지컬 위키드가 최근 한국 관객들을 대상으로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필자도 최근 서울 한남 블루스퀘어에서 관람하고 왔다. 사실, 많은 뮤지컬은 스토리보다는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 취미로 고전문학과 문헌을 독파하는 나로서는 큰 기대를 안 했지만, 아마추어 인문학자로서 계속해서 고민할 만한 주제들이 담겨 있는 거 같아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The Wicked Witch  

"오즈의 마법사"를 본 적은 없더라도 강아지 토토를 안고 빨간 구두를 신은 도로시는 다 안다. 깡통 인간, 허수아비와 사자와 함께 했다는 정도, 그리고 왜 그런진 잘 모르겠지만 도로시를 괴롭히는 초록색 피부의 마녀가 있다. 이 마녀가 바로 위키드의 제목에 등장하는 서쪽의 나쁜 마녀, Wicked Witch of the West인데, 위키드는 그녀의 관점에서 "오즈의 마법사"를 재해석한 이야기이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를 위협하는 사악한 마녀(왼),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오른)

옥스퍼드 영사전에 의하면, "Wicked"는 "악하다", "도덕적으로 그릇된"을 뜻하는 형용사이다. 영어로 "마녀"를 뜻하는 "witch"라는 말 자체가 고대 영어로 악하다는 뜻을 지닌 'wicca'가 어원이다. 실제로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서쪽의 사악한 마녀는 토네이도를 맞아 집이 날아가 먼치킨랜드에 불시착한 도로시 양과 토토를 괴롭히기만 하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나쁜 사람이다. 그녀가 악당임을 더 확실하게 하는 건 바로 마녀의 외모다. 그녀는 초록색 피부에 에 길쭉한 코, 그리고 몇 달은 깍지 않은 듯한 손톱의 소유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외모는 사람의 본성의 거울이라고 믿었다. 영웅 서사시와 연극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은 신에 준하는 능력과 지혜를 겸비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두각 되는 것은 이들의 외모이다. 트로이 전쟁을 이끈 아킬레스, 아네테의 왕자 테세우스, 또한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악당들은, 서사시를 듣는 청중들, 극장과 디즈니 채널을 시청하는 관객들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영국 플란타지네트(Plantagenet) 왕조의 마지막 왕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최고의 사극이자 비극 중 하나인 "러처드 3세"(Richard III)에 등장하는 리처드는 공연 중엔 항상 등이 굽은 꼽초로 등장하거나 때로는 거미처럼 많은 팔과 다리를 가진 것으로 분장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20세기 공연까지도 이어졌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영국인들은 리처드 3세가 이처럼 흉측한 외모를 지녔다고 믿기도 했다. 


Defying Gravity 

고대부터 우리는 신화와 문학, 오늘날에는 디즈니 영화를 통해 선한 주인공과 나쁜 악당을 구별할 수 있도록 교육받아 왔다. 외모가 못생기거나, 다스 베이더나 후크 선장 같이 눈에 띄는 흠을 지니고 있으면 십중팔구 나쁜 놈인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위키드"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가 이중적이다. 다시 옥스퍼드 영사전에 의하면, "Wicked"는 "짓궂은", "말썽 꾸리 거기 같은"("playfully mischievous", OED)라는 의미도 있다. 더 후반부에는 "excellent", "wonderful"를 뜻하기도 한다. "Wicked"는 영국인들이, 우리말에서 "죽인다!" 정도 의미의 감탄사로 많이 사용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호그와트 특급에서 론이 해리를 만나고 그의 이마에 있는 번개 모양 흉터를 보고 "Wicked!"라고 리액션했을 때가 생각난다. 


위키드의 대표곡 "Defying Gravity"("중력을 거스르다")의 가사처럼, 작사, 작곡가였던 스티븐 슈월츠(Stephen Schwartz)는 어떻게 이름조차 없었던 악한 마녀를 기립박수를 받는 다채로운 영웅으로 재탄생시켰을까?


Mythos  

먼저 엘파바의 비범한 탄생 과정이다. "글린다"("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북쪽의 착한 마녀")가 한 때 엘파바와 친구였다는 것도 관객의 관심을 끌었지만, 가장 큰 반전은 오즈의 마법사가 엘파바의 친부였다는 사실이다. 엘파바는 마법사가 영주의 부인인 어머니에게 초록 빛깔의 사랑의 묘악을 먹여 태어난다. 


이쯤에서 "오즈의 마법사"(이하 "마법사")에 대해서 다뤄볼 필요가 있는 거 같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그리고 뮤지컬에서도 마법사는 그야말로 신적인 존재이다. 우선 이름이 없고 에메랄드 시티의 모든 시민들을 그를 "the Wonderful Wizard of Oz"라고 부르는 거 자체부터 그가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오즈"는 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이지 마법사의 이름이 아니다). 한 명 밖에 없는 독보적인 존재, 에메랄드 시티와 오즈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룩한 존재이다.  


최소 신 같은 존재와 인간이 관계를 가져 태어난 엘파바를 보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티탄의 여신 테티스와 인간 왕 펠레우스 사이에서 난 아킬레스, 아프로디테(비너스)와 트로이의 왕자 엔카이시스의 아들 아이니아스, 그리고 제우스와 인간 여자 알크메네의 아들인 대영웅 헤라클레스 등이 있다. 아킬레스는 트로이 전쟁을 그리스의 승리로 이끌고,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이니아스는 트로이를 피신해서 이탈리아 반도에 로마를 건국하게 되고,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신화 통틀어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어쩌면 엘파바에게도 이 같은 비범한 출생 스토리, 불륜과 사랑의 묘약이라는 요소로 신화적인 모티브를 약간은 패러디하는 듯하면서 그녀는 영웅적인 일을 이루어낼 듯한 기대를 주고 어떤 여정을 떠나게 될지 관객은 호기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윌리엄 블레이크 리치먼드, "Venus and Anchises"

Drama

제1막 후반부에 엘파바는 드디어 마법사와 만난다. 위대한 오즈의 마법사는 커다란 가면 뒤에 숨어서 기계로 만들어진 우렁차고 근엄한 목소리로 상대방을 압도한다. 마법사의 가면과 목소리는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라고 볼 수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란 라틴어로 "the god from the machine", "기계로부터 온 신"이라는 뜻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 연극 중 아프로디테나 아폴로 같이 신의 역할을 맡은 연기자가 케이블과 같은 장치에 매달려 무대 위로 내려지는 장치이다. 문학에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될 듯한 문제를 신이 등장해서 한 순간에 해결해버리는 "plot device"이다. 

유리피데스의 메디이아 중, 위기에 처한 메디이아를 구하기 위해 태양의 신이 황금마차를 내리는 장면으로 그리스 비극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  

흥미로운 건, 엘파바는 "마법사와 나"라는 곡을 통해  마법사와 만남에 대한 기대를 전한다. 마법사만 만날 수  있다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꿈을 처음 가진 어린 소녀와 같은 마음이 전달되고 있다.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온다. 


No, he'll say to me I see who you truly are  / A girl on whom I can rely

And that's how we'll begin / The Wizard and I

....

Shouldn't a girl, who's so good inside / Have a matching exterior?

And since folks here to an absurd degree / Seem fixated on your verdigris

Would it be all right by you / If I de-greenify you?"

...

Unlimited / My future is unlimited / And I've just had a vision almost like a prophecy


외모로 따돌림을 받고 아버지와 동생으로부터 아무런 인정받지 못하던 엘파바는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오즈의 마법사를 만날 기회가 찾아오는데, "마법사와 나"라는 노래를 보면 이 모든 문제가 결국 마법사와 함께 함으로써 해결되고 엘파바는 드디어 뭔가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보인다. 


태양마차에서 떨어지는 파에톤

하지만 정작 그녀가 마법사와 재회할 때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와 에티오피아의 여왕인 클레오피스의 아들 파에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공교롭게도 파에톤 역시 신과 인간 사이의 불륜으로 나은 자식이다. 아버지의 태양마차를 타다가 운명을 맞이한 파에톤처럼, 엘파바는 마법사가 건네주는 마법의 책의 주문을 해석하고 외우면서 우리가 알던 서쪽의 사악한 마녀로 불리기 시작한다.  


이때 엘파바는 "Wicked!"라는 별명을 얻은 뒤부터 뮤지컬의 플롯은 정말 그리스 비극 같이 느껴진다. 친구였던 글린다와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지고,  아버지인 먼치킨랜드의 영주는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엘파바는 마법으로 걷지 못하는 여동생 네사로스의 다리를 고치려다가 오히려 그녀와의 신뢰도 무너지고 만다. 사실 네사로스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의 집 밑에 깔려 죽고 이 때문에 서쪽의 악한 마녀는 도로시와 토토를 쫓아간다. 영화의 플롯을 기억하는 관객들은 훗날 엘파바의 운명을 알기 때문에, 그녀가 어떤 동기로 악한 마녀가 되었는지도 이제 알기 때문에, 엘파바의 이야기는 더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지고 그녀와 동조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다. 


True Love

하지만, 관객들이 서쪽의 나쁜 마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 역시 어느 여인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글린다와 엘파바는 쉬즈 대학교에 다니면서 피에로("Fiyero")라는 키 크고 잘 생긴 남학생과 삼각관계를 이룬다.    


글린다는 아름다운 외모, 인기, 그야말로 모든 걸 다 갖춘 여인으로 엘파바와 너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사실 피에로가 등장할 때는 글린다와 비슷한, 그저 1차원적인 캐릭터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함께 포획된 아기 사자를 구출하면서, 점차 당차고 똑똑한 엘파바를 깊이 있게 알아가고 그 역시 성장하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 

엘파바와 피에로

피에로는 훗날 에메랄드 시티에서 근위대장이 되어 엘파바를 잡기 위한 마녀사냥을 지휘하게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엘파바가 피신할 수 있도록 그는 동료들에게 총을 겨눈다. 키 크고 잘 생긴 피에로가 모든 걸 가진 글린다에게 등을 지고 엘파바를 선택했을 때 모든 여성 관객들은 무언가 카타르시스와 페이소스를 느꼈을 것이다. 사랑만큼은 누구나 갈망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정으로, 특히나 약자가 사랑을 쟁취할 때만큼은 그 누구도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엘파바의 운명이 결정될 때 부르는 "Defying Gravity"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담겨있는데, 엘파바와 마법사와 함께 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떠나기로 결단하는 대목 중에 전하는 말이다. 


Too long I've been afraid of/ Losing love I guess I've lost

Well, if that's love / It comes at much too high a cost!


엘파바가 궁극적으로 원하던 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사랑을 받는 것이었다. 그녀의 초록색 피부 뒤에 있는 진정한 매력이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다. "마법사와 나"라는 노래에 마법사가 언젠가는 그녀의 외모도 고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녹아들어 가 있다. 그러나 엘파바는 마법사와 함께 하지 않기로 결단한 건 스스로 초록색 피부를 유지하겠다고, 흉측한 외모 또한 나 자신이다라는 걸 받아들여 오히려 더 다채롭고 입체적인 인물로 성장한 듯하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먼저 전적으로 받아들인 후에 피에로 또한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걸 볼 수 있다.  


No One Mourns the Wicked?

막이 오를 때 관객들이 듣는 첫 번째 곡의 제목은 "No One Mourns the Wicked"이다. 말 그대로 그 누구도 악한 자는 애도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오즈의 마법사"의 결말에서 마녀가 죽은 직후에 기뻐하는 먼치킨들이 "Good News!"라고 외치며 합창한다. 그러나 글린다를 통해 들려지는 이 이야기를 모두 들은 관객은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릴 때 아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탄탄한 신화적, 인문학적 기초공사 위에 세워져, 뜨거운 열정의 불씨가 필요한 젊은 세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재탄생한 위키드는 오늘날 우리가 한 번 다시 볼 가치 있는 현대판 클래식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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