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냥 무심코 던진 말이었겠지만, 전 왠지 모르게 쉽게 말을 뗄 수 없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뭐라도 얘기해야 할 것 같아 답장을 하였습니다.
"빨리 대답하지 못하는 걸 보니, 잘 못 지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so so 해."
대충 얼버무리며 이야기를 끝내긴 했지만 짧은 대화 속에서 잘 지낸다는 게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후에도 계속해서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과연 잘 지낸다는 건 무엇일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가 20대 때 어렴풋이 30대에 들어서면 당연히 이루어져 있을 목표들이 있었습니다.
1. 안정적인 직장을 다닌다.
2.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3. 대출은 받아야겠지만 내 집과 차가 있다.
사실 위 3가지의 내용은 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성인 남녀라면, 아니 더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기준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안에 속해야지만 나름 성공한 삶이고 괜찮은 인생을 산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판단의 잣대를 가지고 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경제적 능력이 최우선시되기에, 모든 게 돈으로 귀결되는 것이죠.
그래도 그토록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서 1번만큼은 이루었다 생각하였고 여기서 잘 버티면 2,3번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성공의 대열에 합류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개인적인 사정으로 퇴사를 하게 되면서 결국 1번을 지켜내지 못했고 2, 3번의 꿈도 모두 와르륵 무너지게 되었죠.
그나마 저의 이런 고민이나 어려움을 나눌 수 있었던 교회라는 공동체가 있었지만, 크고 작은 문제에 휩싸이면서 크게 상처를 받고 결국 이곳마저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정서적 교감을 할 수 있는 또래 친구들이나 여자 친구도 현재는 없기에 이 싸움을 홀로 해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지금이 제 인생에서 최고 하향점인 셈이죠.
처음엔 이런 상황들이 낯설었지만 그래도 새 출발이었고 저의 선택이었기에 존중하며 앞으로의 시간만큼은 후회 없이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절망보단 기대감으로, 아직 젊으니 할 수 있다며 낙관하였죠. 그리고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던 저는 마침내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 곧 책도 출판하고 유명세를 타 인세를 받게 되면 적어도 굶지는 않을 거라고 혼자서 김칫국을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농구를 그렇게 잘하는 서장훈 선수마저, 농구가 가장 어려웠다고 고백을 하듯, 나름 재밌고 좋아서 시작한 글쓰기는 때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창작의 고통을 느끼기도 했고 한계에 부딪힐 때면 장시간 앉아서 하는 이 작업이 너무 고되고 마냥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또한 저의 글 대부분이 해외 여행 및 해외 봉사와 관련되어 있는지라, 코로나 여파로 생각만큼 잘 팔리지 않는 것도 한몫하였습니다.
또한 퇴사 이전까지 모아 두었던 돈도 점점 떨어져 갔습니다.그렇다고 개인적인 지병 때문에 쉽게 아무 알바를 시작할 수 있는 몸 상태도 아니거니와 당장에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과연 앞으로 몇 개월을 더 버틸 수 있을지 몰라 마음은 점점 초조해졌고 더욱 예민해져 갔습니다.
더 이상 의지 할 수 있는 대상도, 버틸만한 경제적인 여건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고립감과 외로움이 난무하였고 정말 바닥을 기는 느낌이었습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죽음이 고통스럽지 않고 사후세계가 보장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눈을 감고 싶다고. 이렇게 계속 불안한 미래와 고통 속에 살아가느니 차라리 미련 없이 죽는 게 속이 편할 것 같다고 말이죠.
지금도 질병과 싸우고 있지만 앞으로 늙으면 더 병 들것이고 세상은 분열과 혐오로 더 많이 혼란해질 것이며 지구의 생태계는 점점 파괴되어 제2의, 아니 제3의 변종 바이러스가 생겨 인간의 삶은 더 피폐해질 것이라 장담하며 괜한 결혼으로 인해 배우자나 자식에게 이런 지옥을 물려주느니 차라리 독신주의자가 돼서 이 고통은 나에게서 끝나야 한다며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심정을 글로 담아 평소 운영하던 블로그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오후, 핸드폰에 알림이 뜬 것을 확인하고 블로그에 접속해 보았더니, 평소 소통하는 이웃님이 제 글을 보시고 친히 댓글을 달아 주셨습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웃님께서 저의 이야기를 깊이 공감해주시고 응원까지 해주시니 정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한 번도 만난 사이는 아니었지만 SNS에서 알게 된 새로운 관계 속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니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고 이분께 너무 감사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고 바로 밑에 같은 이웃님으로부터 추가로 작성된 장문의 댓글을 하나 더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위 글의 주인공은 소통 이웃님의 남편 분이셨고 두 분이 동일한 아이디로 블로그를 함께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저의 글을 보시게 되면서 많이 안타까우셨었는지, 편지 2~3장의 분량이 되는 장문의 글을 남겨주셨더라고요. 사실 첫 댓글만으로도 너무 감사드렸는데, 두 번째 댓글을 예상치 못했던 남편분에게서 받게 되어 새삼 놀래기도 했고 어디선가 갑자기 찾아온 따뜻한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해주신 말 중에 자신의 제자 이야기에서 '충분히 괜찮은 아이'라는 말과 '지금까지 해오던 것처럼 가면 된다'라는 진심 어린 조언이 매우 불안하고 자신 없었던 저에게 굉장히 큰 만족감과 평안함을 안겨주었습니다. 내가 현재 걸어가고 있는 길이 틀린 게 아니라 단지 과정 속에 있는 것이며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신뢰와 믿음이 저 자신을 온전케 하여 가장 '나를 나답게'해주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 저의 상태는 정말 많이 호전되었고 결국 사람을 통해 치유받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진심으로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봐 주고 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 세상을 당당히 살아갈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과거에도 정말 길이 보이지 않아 헤매고 있을 때 저를 품어주시고 도움을 주셨던 선량한 사람들이 분명 계셨습니다.
결국 저에게'나를 나답게'해주는 것은 이런 따뜻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고 저를 성장케 하며 가장 나답게 해 준다는 사실을 이번 계기를 통해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대한 불신과 혐오 그리고 악플이 넘치는 폭력적인 사회 속에서도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통해 이 세상은 좀 더 아름답고 풍요로워지며 우리 모두의 영혼을 살아 숨 쉬게 한다고 믿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친한 동생이 저에게 잘 지내냐는 질문은 더 이상 '가시적인 목표에 달성했는가의 여부'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의 상태가 현재 평안하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가'로 바뀌게 되었고 내 마음의 진정한 안녕은 오늘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화목한 관계를 맺어 갈 때에 비로소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멋진 댓글을 달아주신 두 분의 은혜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어려움에 처해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선한 존재로 살아가겠습니다. 저의 이 고백이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는 노래가 되어 이 세상이 좀 더 풍요로워지고 더욱 밝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