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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 Mar 27. 2021

노명우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냉탕과 온탕,화려함과 비루함,외로움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삶의 리얼리티

혼자사는 삶의 리얼리티     


“원래 혼자산다는 것이 냉탕과 온탕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삶은 때로는 자유롭고, 어떤 때는 처량하고 그런 것이다.”
(8쪽)     


금요일 밤 TV에선 혼자사는 연예인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예능프로가 한창이다. 중간광고를 틈타 채널을 돌리다 화면은 심야뉴스 속 2030세대의 고독사 급증 보도에 멈춘다. "혼자산다"라는 가치중립적인 삶의 양식이 누군가에겐 화려한 싱글라이프로, 누군가에겐 생사의 갈림길로 여겨진다. 통계조사에선 모두 1인가구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TV 채널 몇개만 건너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양면성은 '1인가구의 증가추세'라는 막연한 정보 뒤에 가려진다.

  

퇴근 후 직접 조리한 안줏거리에 혼술을 즐기고, 주말엔 소위 찐친들과 한강 나들이를 가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사고 싶었던 컬렉션을 FLEX하는 방송상의 모습들은 우리에게 1인가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심어준다. 미디어 속 혼자 사는 이들의 모습은 1인 가구 중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 아주 예외적인 이들의 모습이지만, 우리의 뇌는 화려함에 현혹된 채 그 속에 숨어 있는 어두운 면을 간과한다. 대한민국의 1인가구 10가구 중 8가구가 연소득 3000만원 미만인 현실(2020, 통계청)에서 미디어 속 싱글라이프는 리얼예능이 아닌, 판타지 드라마로 여겨질 뿐이다.


화려함과 비루함 사이 너무도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1인가구를 우리가 작위적으로 추출한 "화려한 싱글" 또는 "비루한 독거"라는 양극단의 렌즈로만 비추게 되면, 냉탕과 온탕이 혼재하는 현실의 모습을 명확히 보지 못한다. 홀로살이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혹은 맹목적인 두려움은 때로는 자유롭고, 때로는 처량하기도 한 삶의 모습을 한껏 비틀어버린다. 이런 연유로 큰 기대를 안고 자취를 시작한 청년의 삶은 곧 외로움으로 점철되는 것이고, 고단한 결혼생활 속 중년남녀는 비혼남녀를 노총각이나 노처녀로 격하하며 자기위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로움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혼자사는 삶의 리얼리티’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갖추는 것이다.                                                                      



결혼, 그 무겁고도 가벼운 것에 대하여


"결혼에 대한 개인의 의지는 점차 결혼에서 중요해졌다. 이제 더 이상 결혼에 대한 결정권을 보류해둘 수는 없게 되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가족을 구성하는 결정권은 고스란히 집단에서 개인에게로 넘어왔다. 그리하여 적어도 사적 영역에서는 개인이 역사상 가장 많은 결정권을 갖는 시대가 도래했다." (69쪽)     


친구, 지인들과 결혼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로 이야기를 나눌 때, 주제넘지만 내가 심심치 않게 던지는 말이 있다. 가족 구성원 중 인생에서 내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가족이 배우자라고. (입양 등의 경우가 있기 때문에 ‘거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부모도, 형제자매도, 심지어 친자녀까지도 유전과 운명을 씨줄과 날줄 삼아 우리 곁에 '던져지'지만, 남편만큼은 아내만큼은 자유의지로 ‘선택’한 존재라고. 누군가에게는 그 선택이 여러 번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겐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 나름의 선택일 수 있지만 어떤 길을 선택하던 그 길은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우리에겐 당연지사로 여겨지는 자기결정권이 당연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다. 역사 속 너무나 많은 이들이 씨족공동체의 이해관계에, 종교적 관습에, 전통적 윤리의식에 결혼을 강요당했고 그 시대에 결혼은 사랑과 무관한 것이었다. 사랑과 결혼의 결정권이 점점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전되었고, 그 중심에는 감정과 이성을 가진 인격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적어도 1인 가구의 증가가 자신에 대한 민감한 촉수를 지닌 개인이 증가하고, 가족과 개인이 이익이 상충할 때 반드시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희생 시나리오가 폐기됨을 의미한다면, 1인 가구의 증가는 가족의 해체나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흑사병같은 전염병의 이미지가 아니라, 오히려 분해될 수 없는 가장 작은 단위가 핵가족에서 개인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의미할 뿐이다." (78쪽)     


이제 그 믿음은 우리시대에 맞게 변주되어, 1인 가구의 등장이 공동체의 결집을 방해한다는 맹목적 집단주의에 저항한다. 비혼, 미혼, 이혼 등 혼인상태 외의 범주에 있는 자들의 양적 증가는 저자가 말한 것처럼 “자신에 대한 민감한 촉수를 지닌 개인이 증가되고, 가장 작은 단위가 핵가족에서 개인으로 이동하는 경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사회적인 것은 집단적인 것이 아니다개인주의가 이기주의와 다른 것처럼



 “'사회적'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정의해보면, 그것은 강요된 집단주의처럼 '집단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이 상호작용은 집단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자율성을 지닌 개인을 전제할 때 가능하다. 전근대적 전체주의나 스탈리적 사회주의는 이런 의미에서 '사회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78쪽)


철지난 밈(meme)으로 모 교관이 그토록 외쳤던 "4번은 개인주의야! 너 인성 문제있어?"라는 말에서 우리는 개인주의가 인성적 결함으로 연결되는 사고의 흐름을 무리없이 받아들인다. 일상에서 우리가 너무도 많이 혼용하는 “다름”, “틀림” 같은 단어처럼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많은 순간 우리에게 같은 의미로 연상된다. 모두 짜장면을 선택할 때 짬뽕을 고르면 역적이 되고, 한 술 더떠 볶음밥을 시키면 겸상조차 못할 인간이 되는 회식자리 분위기는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수천년간 벼농사 생산체계 속에서 동아시아적 집단주의 위계문화를 몸으로 익힌 우리(2019, 이철승『불평등의 세대』)에게 의식적, 때론 무의식적으로 개인주의를 경계하는 DNA는 특정 세대를 중심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권 사회에서 “개인적이다”라는 평가는 줄곧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였고, 이는 “사회”에 대한 그들만의 정의에서 시작됐다. society의 어원인 라틴어 socius가 친교와 사교를 함의하는 것과 달리, 동아시아권에서 사회(社會)의 의미는 집단성과 회합성이 핵심이다. 이러한 정의는 사회라는 것이 자율성을 지닌 개인을 전제할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간과함으로써, ‘사회적’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기 쉽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사회성은 “위로는 아첨하는 자세를, 아래로는 카리스마있는 모습을 겸비하여 수직적 전체를 유지하는 능력"으로서의 처세술을 의미하게 되었고 그 속에 개개인들의 주체성은 잊혀져갔다.


“그렇기에 개인화는 사회의 몰락이 아니라,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중요한 형식과 제도가 변화했다는 뜻이다. 1인 가구의 증가와 결부되어 있는 '개인화'의 증대가 반드시 반사회적 경향의 강화를 의미하는 변동은 아니라는 얘기다.” (78쪽)     


수백, 수천년간 이어오던 벼농사 체제에 맞서 벼농사식 생산구조를 몸으로 체화하지 못한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전통적 가족구조에서 탈피해 1인가구라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자신들의 방식대로 만들어나갔고, 마침내 오늘날은 10가구 중 3가구가 1인가구인 사회가 되었다.(2020, 통계청) 시대가 바뀐만큼 사회성에 대한 우리의 시대착오적인 정의 또한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1인가구를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1인가구들이 어떻게 관계맺도록 할 것인가이다. 또한 개인화의 증대에 맞춰, 지난 날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집단적 문화와 제도를 바꾸어 나갈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다시 한번 기억하자. 사회적인 것은 집단적인 것이 아니다.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와 다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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