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1. 부동산, 가상화폐, MZ세대, 페미니즘, 젊은 보수 남성... 단어들 그 자체만으로 화두가 된 2021년 한국사회의 낱말들이다. 26번의 부동산 정책,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가상화폐 급등락 보도, 손가락 두개와 소시지 하나로 불붙은 젠더분쟁, 30대 남성의 거대정당 당대표 출마 파란. (코로나 확진자 소식만 추가하면, 여느 일간지 하루치 뉴스거리를 다 쓴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는 이 키워드들은 언뜻보면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지만, 이들을 "세대론"과 "위계구조"의 렌즈로 바라보면 "불평등"이라는 거미줄로 미세하게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듯, 그간 소리없는 아우성에 불과했던 불평등과 세대담론을 지표와 데이터라는 날카로운 메스로 파헤친다.
2. 이 책에서 세대론의 기본 틀은 산업화세대(1930년대생), 86세대(1960년대생), MZ세대(1990년대생)로 응축되어 나타난다. 산업화 세대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클리셰처럼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발돋움시킨 주역세대였고, 그 원동력에는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에 기반한 '협업 네트워크'와 '촌락형 위계구조'가 있었다. 계절에 따라 엄청난 노동집약성을 필요로 하는 벼농사 체제 하에선 협업이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가치였고, 이러한 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나이와 연공 기준의 피라미드 형태의 수직적 위계구조가 필요했다. (협업네트워크와 촌락형 위계구조는 저자의 후속작인 <쌀, 재난, 국가>에서 더 자세하게 다뤄진다.) 현대의 우리가 유교사회의 잔재라고 부르는 수많은 문화들은 사실 동아시아 벼농사체제의 잔재이다. 산업화 세대는 이러한 협업 네트워크와 촌락형 위계구조를 자본주의 체제에 맞게 변주한 첫 세대였고, 마을단위의 위계구조는 그 모습만 바뀐 채 기업으로, 정부로, 학교로 성공적으로 이식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산업화 세대의 맹점인 '민주화'를 기치로 결집한 86세대가 '평등의 가치'를 한국사회에 전파한 (해방 후) 첫 세대임과 동시에 동아시아적 위계문화를 여전히 체내화하고 있는 마지막 세대인 점이다. 이러한 역설에 대한 통찰은"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며 정치적 자유주의가 확산되던 시기에 자유주의 원리와 상충하는 '위계화'는 한국사회에서 왜 더 극심해진 것일까?"라는 의문에 답을 준다.
"이 세대는 동아시아 위계구조와 자신들의 세대 네트워클를 결합시켜 시장자유주의에 적응한, 보다 진화한 형태의 -내가 '네트워크 위계'라 부르는-위계구조를 발전시켰다. 이 모순적 결합과 접합을 주도한 이들이 바로 386세대다.(p.83)"
3. 그렇다면 무엇이 세대를 둘러싼 새로운 불평등 구조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 불평등 구조의 수혜자는 누구일까? 데이터는 86세대가 그 불평등 구조의 최대 수혜자(혹은 착취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수직적 위계구조, 경제적으로는 연공서열제 및 노동유연화 기제 그리고 정년연장을 앞세워 2021년 대한민국의 명실상부 기득권 세대로 자리잡았다. 21대 국회의원 중 1960~1969년생은 58%로 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특정 세대의 최대 구성비율이다. 또한 노동시장 지위 상층 세대별 분포(P.110)를 보았을 때, 2004년 50대의 상층 점유율은 10.7%에 불과하지만, 2015년 50대의 상층 점유율은 19.3%이다. 86세대는 그 윗세대가 50대였을 때보다 두배 가까운 생존율을 보인 것이다. 정치적, 경제적 세대독점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지표들을 눈앞에 두고, "누구나 다 겪는 것이니 인내하라" 혹은 "요즘 청년들은 노력부족이 부족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청년들이 얼마나 있을까.
4. 산업화 세대의 "촌락형 위계구조", 86세대의 "네트워크 위계구조" 위에 세워진 현재의 불평등 구조에서 MZ세대는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부모세대보다 높은 실질 소득, 자산을 기대할 수 없는 세대로 불린다. 그저 상황을 부각시키기 위한 과언이 아님은, 중장년층과 청년 세대 사이의 소득격차를 보았을 때 처절히 체감할 수 있다.
"각 시대별로 장년층 부모 세대와 청년 세대의 평균 소득을 비교한 결과, 2010년대 청년들의 소득 규모와 상승률이 이전 세대 청년들에 비해 현저히 낮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출생세대가 1990년대에는 부모 세대 소득의 49퍼센트에서 1996년년에는 68퍼센트를 달성했고, 1980년대 출생 세대는 2000년에 53퍼센트에서 2006년에는 72퍼센트를 달성했다. 이에 비해, 오늘의 20대인 1990년대 출생 세대는 2010년 겨우 44퍼센트를 달성했고, 2016년에 이르러서도 52퍼센트에 머물러 있다. 절댓값과 상승률 모두 부모 세대 대비 역대 최저 기록이다.(p.129)"
인고의 시간만 버티면 약속되었던 과실의 분배는 저성장, 고령화, 정년연장, 노동유연화 기제 등 수많은 톱니바퀴들이 맞물리며 청년세대에게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았다. 또한 위계구조의 밑바닥에서 겪는 장기간-중노동을 인내의 시간으로 여긴 선배 세대들과 달리 현재의 MZ세대는 이것을 착취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5. 청년 세대와 더불어 '한국형 위계구조'의 또 다른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남성중심적인 "촌락형 위계구조"에서 여성의 역할은 내조와 가사노동에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그 구조와 문화를 그대로 답습한 86세대의 "네트워크 위계구조"에서 또한 여성의 역할은 한정되었다. 86세대 남성들이 상층 노동시장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던 시기, 동시대 여성들은 '당연하게도' 아이를 보며 장을 보고 저녁밥상을 차려야했다. 86세대가 정치권과 시장에서 구축하고 향유한 상층 권력 네트워크는, 철저히 남성 중심적인 것이었다.
"(...) 2004년 당시 여성들의 진입률 및 생존율은 남성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 무렵 40세에서 55세에 이르는 남성들의 35퍼센트 정도가 상층 노동시장에 속했다면(1950~1964년 출생 세대), 여성들은 8~10퍼센트 남짓만이 상층에 속해 있었다. 나머지 90퍼센트가 넘는 여성들은 중하층 노동시장에 편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386세대의 여성들은 동 세대 남성들과 달리, 애초부터 소수만 상층 노동시장에 진입했거나 진입한 자들도 장기간 생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산과 육아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힘들었고, 가부장 문화가 지배적인 386세대의 남성들이 육아에 동참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세대의 한계다. (p.245)"
6. 다시 서론에 언급했던 키워드들로 돌아가보자. 86세대 자산확보의 근간이 된 부동산, 노동소득으로 내집마련하기가 불가능해진 청년세대의 가상화폐 영끌, 공정성에 민감한 MZ세대, 2010년대 후반 급진화된 페미니즘의 등장, 그 반대급부로 투쟁하는 젊은 보수 남성. 과연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일까?
'세대론'이라는 렌즈로 바라본 2021년의 키워드들은 서로 무관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아니, 서로 무관해서는 안되는 것들이었다. 진부하지만 고전의 한 문장을 빗대어 짧은 글의 결론을 내고자 한다. 손자병법에 등장하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 적을 아는 것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