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 위해 애썼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나는 중학교 때 표정이 없는 아이였다.
학교에서도 말이 없었고, 아무 의욕도 없었다.
사는 게 뭐가 좋은지도 몰랐다.
그저 많이 먹고 잠을 자는 게 전부였다.
그땐 내가 왜 그렇게 자는지 몰랐다.
그냥 늘 졸렸고, 알바를 할 때를 빼곤
학교와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잤다.
유일하게 살아 있다고 느껴졌던 순간은
오락실에서 게임을 할 때뿐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시간을 버티는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늘 힘들었다.
삶이 고되고, 나를 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내 미숙한 행동 하나하나가
엄마에겐 짜증과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딸’보다는
열두 살 차이 나는 막내의 베이비시터였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서 아기를 봐야 했다.
시험 기간이어도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는 ‘엄마를 도와주는 존재’였지,
나 자신은 아니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나’를 느낀 건,
중학교 선생님들이 그림 재능을 알아봐 주셨을 때였다.
그 순간, 세상이 나에게 속삭였다.
“너는 쓸모가 있어. 너는 괜찮은 아이야.”
그 말을 듣고 싶어서,
나는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뚱뚱하면 사랑받지 못할 거라 믿었기에
양재천을 하루 두세 시간씩 걸었고,
먹고 싶은 걸 참고 통제했다.
그게 나의 존재 증명 방식이었다.
그때 만들어진 신념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살이 찌면 자기부정이 다시 밀려오고,
내가 세운 계획을 지키지 못하면
‘너는 게으르고 무가치하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놀면 죄책감이 생기고,
일하면서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늘 내 하루를 따라다닌다.
그래서 여유를 배우는 게 아직도 어렵다.
남편은 나와 정반대다.
계획을 쉽게 바꾸고,
오늘의 기분에 따라 방향을 정한다.
술 한 잔에 웃고, 여행 중엔 아무 걱정도 없다.
처음엔 답답했다.
‘저렇게 살아도 괜찮나?’ 싶었는데,
요즘은 그게 부럽다.
아무 일 없듯 하루를 즐기고,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너그러울 수 있다는 게.
이젠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조건부 사랑’ 속에서 자랐다.
잘해야 사랑받고, 실수하면 미움받는 세상 속에서
늘 표정 없는 얼굴로 살았다.
그래서 내 기준은 늘 ‘완벽함’이었고,
그 기준을 지키지 못하면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나’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삶은 내가 ‘얼마나 잘했는가’보다
‘얼마나 나답게 살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다.
계획을 다 지키지 못해도 괜찮다.
게으른 하루여도, 그것도 내 삶의 일부니까.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다정해지려는 마음,
그 자체가 성장의 증거라고 믿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나를 이해하려는 마음 하나면,
충분히 다정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