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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MIN Apr 29. 2020

브런치 '작가'입니다.

유년 시절 글쓰기 교실을 추억하며



  초등학교 시절을 논과 밭이 있는 시골 동네에서 보냈다. 공기는 좋았지만 놀 거리가 없어서 학교 수업이 끝나면 놀이터에 가서 애꿎은 땅을 파대며 함정을 만든답시고 풀이나 나뭇가지를 얹으며 놀았다. 그런 나를 보다 못한 엄마가 동네 글쓰기 공부방에 보낸 것이 내가 지금까지도 글을 쓰는 첫걸음이 되어주었다. 글자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졌고 책을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내에 익숙한 얼굴의 동네 아이들과 모여 앉아서 몽당연필을 깎아서 원고지에 시나 독후감을 쓰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가끔씩 날씨가 좋으면 연을 만들거나 각종 전통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정한 수강료를 지불하고 정해진 분량만큼의 진도를 나가면 수업이 끝나는 요즘의 학원들보다는 규율적인 면에서 훨씬 널널한 분위기여서 수업이라는 이름 하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활동 중 하나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쓴 글을 모아 책자를 만드는 일이 있었다. 책자라는 표현이 거창할 정도로 A4 용지 묶음을 모아 제본한 것일 뿐이었지만, 내가 쓴 글이 책의 형태로 나에게 돌아오고, 가족이나 주변 친구들이 그 글을 읽고 글에 대한 반응을 말했을 때의 뿌듯함을 느끼게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활동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내가 그 일을 앞두고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냥 평소에 글을 쓰듯 자유롭게 생각나는 것을 적었고, 쓴 것들 중에 수필 한 편을 책자에 싣기로 했다. 엄마와 아빠가 장난스럽게 툭탁거리는 모습을 아이의 시선에서 본 짧은 글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동네 모임에 다녀온 엄마가 글에 대해 말을 꺼냈다. 어린 마음에 칭찬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과는 달리 어조가 썩 긍정적이지 않았다. 같은 공부방에 다니는 친구네 아주머니가 대뜸 엄마를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는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생활이 많이 드러난 글은 익명 처리를 하겠다고 말했던 선생님이 내 글을 익명 처리할 글로 판단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건너 건너 다 아는 좁은 동네에서 학생의 사생활뿐 아니라 학생의 부모에 관한 내용도 분명히 사생활로 처리되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엄마에게 그걸 굳이 내색했다는 아주머니의 태도도 교양 있는 성인으로서 보일 행동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당시의 어렸던 나는 그 상황을 내가 괜히 그런 글을 써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됐다. 공부방에 계속 나가면서도 이전과 다르게 통 재미를 붙이지 못했고, 무엇보다 솔직하게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웠다. 이러한 나의 변화에 선생님이 엄마와 상담도 나눴던 것 같지만 나 때문에 엄마가 창피를 당했다는 사실은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마음속에 깊게 새겨진 뒤였다. 그러고는 머지않아 공부방을 그만뒀다.




  지금까지 나는 살아오면서 다양한 글을 써야 했다. 때로는 대학 입시를 위한 논술이 되기도 하고, 수업 중 제출하는 리포트가 되기도 하고, 나를 어필하는 자기소개서가 되기도 했다. 얼핏 보기에는 주관을 담는 것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텍스트들이지만 이 중 그 어느 것을 쓸 때도 쉽지가 않았다. 결국 어떤 글을 쓰든 내 생각이 담기지 않으면 단순 서술에 불과했는데 내가 글에 주관을 담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런 어려움을 어떻게든 줄여 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글을 읽더라도 어차피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고, 수많은 정보 중 먼지만 한 한 톨의 정보로 인식하고 스쳐 지나갈 사람들이 대부분일 터였다. 결과적으로 나의 새로운 시도는 아주 오랫동안 숨기는 것에만 익숙해졌던 나의 솔직함을 끄집어내는 데에 나름의 도움이 되었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고 승인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까지도 솔직하게 뭔가를 쓴다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단순한 영화나 책 감상을 블로그에 적는 것을 넘어서 나에 관한 이야기를 쓸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에 관한 이야기를 조리 있게 잘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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