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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MIN May 31. 2020

'매입불가' 도서입니다

중고 서점에서 책 못 팔고 온 이야기

Image by Ylanite Koppens from Pixabay.



  책을 좋아한다. 책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나는 종이 냄새나 책장 넘어가는 소리, 종이를 손으로 넘기는 감각을 좋아한다. 주관에서 벗어나 조용하게 타인의 생각을 엿보는 순간과 이전에는 알지 못하던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모으게 됐고, 결과적으로 지금 내 방에는 한 면을 차지한 두 개의 책꽂이에도 다 들어가지 않을 양의 책이 있다.


  개중에는 여러 번 읽을 정도로 정말 좋아하는, 그야말로 ‘소장하고 싶어서’ 구매한 책도 있지만, 도서관에서 구하기가 마땅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샀으나 읽어보니 딱히 마음에는 들지 않아서 다 읽지 않은 책이나 한 때는 관심이 있었으나 이제는 가치관의 변화로 별 감흥이 없어져서 손이 가지 않는 책도 있다.


  그 외에도 교양 수업 때 어쩔 수 없이 구매한 학술 서적, 중고 거래 카페에 팔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아무도 사가지 않아 처치곤란인 만화책, 이제는 스마트폰에 검색하면 하면 되니 크게 쓸모가 없어진 사전 등 어림잡아 수십 권은 될 법한 책들이 책꽂이에 A4 용지 꽂아 넣을 틈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앉아 있다.



  오랜만에 그런 책을 챙겨 판매하기 위해서 중고 서점에 갔다. 들 수 있는 무게에 한계가 있어서 일부만 챙겼는데도 어깨에 가방 끈이 눌려 불그스름하게 자국이 남을 정도로 무거웠다. 경험상 하루 자고 일어나면 근육통이 남을 것 같은 무게라는 걸 직감했지만 널널해질 책장의 모습을 기대하며 낑낑거리면서도 열심히 목적지로 향했다.


  단순 구경이 아닌 판매를 목적으로 대형 서점이 운영하는 중고서점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적한 계산대에서 책을 잔뜩 쌓자 점원이 익숙하다는 듯이 책을 한 권씩 살피며 분류해나갔다. 책의 상태에 따라 최상급, 상급, 중급 세 분류로 쌓였는데 특별히 상태 좋은 책들을 위주로 골라 와서 최상급으로 분류된 책이 대부분이었다.


  책 상태가 좋으니 이제는 별 문제될 게 없겠지, 하고 내심 뿌듯해하며 다음 절차를 기다렸는데 책에 바코드 찍는 소리가 날 때마다 화면에 불길한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매입 대상 도서가 아닙니다.


  다른 문구도 있었던 것 같은데 불안해져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스무 권에 달하는 책의 바코드를 다 찍은 점원이 담담하게 말했다. 개정판이 나온 도서는 매입 대상이 아니고 한 권은 재고가 다 차있어서 매입이 불가능하다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워서 ‘그러면 여기 있는 책 전부 못 파는 건가요?’하고 확인 질문을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세상에는 참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그렇게 부푼 마음으로 이고 지고 갔던 책 더미를 도로 집으로 가지고 와야 했다. 무거운 책을 양 어깨에 번갈아 매며 들고 오려니 학교 다니던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학기 중에 공부해야할 건 많고 마음이 급하니 도서관에서 관련된 책을 닥치는 대로 빌려오곤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정작 제대로 끝까지 다 읽는 책은 없었다. 다 읽지 못할 걸 알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어서 욕심 부려가며 책을 잔뜩 빌린 날에는 항상 집에 돌아오는 길이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무거웠다. 



  어느 순간부터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미니멀리즘’을 알게 되며 책을 사다 모으는 나의 이런 욕구가 다른 결핍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적 행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 더미는 어떻게 보면 뭔가를 갈망했던 과거의 내 흔적이었다. 내가 쓸모없다는 평가를 내린 것과는 별개로 과거에 내가 좋아했던 것들에 ‘매입 불가’판정을 내렸다는 사실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후 스무 권 가량의 책을 방 한 구석에 쌓아둘 수는 없어서 도로 원래 있던 곳에 꽂았다. 결국 외출하기 전과 후에 내 방은 변한 것이 없었다. 그저 원래 있던 책들이 제자리에 빈틈없이 꽂혀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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