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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MIN Jun 19. 2020

'오이지' 좀 갖다 드려도 될까요?

Image by Monika Schröder from Pixabay



  현관 앞에 시키지도 않은 택배가 와있었다. 


  세대수가 워낙 많은 동네라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면서부터는 중간 현관 벨이 울려서 봤더니 다른 집을 찾는 치킨 배달 아저씨가 인터폰 화면에 비치거나, 다른 호수로 가야 할 택배가 우리 집에 놓여있거나 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보통 이런 경우 택배 기사분의 실수 혹은 주소지가 잘못 기입된 경우 둘 중 하나가 원인인데, 이번에는 생소한 아파트 동수가 적힌 것을 보니 아무래도 후자인 모양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주소지가 적힌 운송장 사진과 함께 적혀있는 휴대폰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택배가 잘못 도착한 것 같습니다.’


  내심 ‘나중에 찾아가겠습니다.’와 비슷한 종류의 답장을 기대하며 문자라는 수단을 선택한 것이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운송장에 적힌 이름이나 택배 상자에 적힌 ‘오이지’라는 글자를 보고 받는 분이 어르신일 수도 있겠구나, 하며 조금은 짐작을 하던 참이라 일단 전화를 받았다.


  보내는 사람이 동수와 호수를 모두 잘못 쓴 상황에서도 택배가 생뚱맞은 곳에 떨어지지 않고 고작 몇 층 아래에 배달된 게 천운이었다. 아니, 이런 경우에는 택배 기사님이 다분히 갈고닦으신 실력과 센스라고 봐야 할까. 원래 택배의 주인은 저 위층에 거주하시는 한 할머니였다.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집 주소를 말씀드렸다. 이웃 할머니는 이따가 찾으러 가겠다고 고맙다고 말씀하시면서 전화를 끊으셨다.


  그리고 잠시 후 똑똑 하고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택배를 찾으러 온 이웃집 할머니로부터 ‘갑작스러워서 집에 뭐가 없네요. 큰 건 아니지만 이거라도…….’라는 말과 함께 냉동 인절미 두 봉지를 받았다.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었지만 들고 내려오신 걸 굳이 마다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았다.


  항상 마트에 가도 과일, 채소, 유제품, 과자 등 매번 보던 코너 위주로만 찾는 편이라서 간편하게 포장된 냉동 떡이 마냥 신기했다. 요즘 할머니들은 이런 간식을 드시는구나 하면서 일상으로 복귀하려는데 다시 전화가 울렸다. 방금 봤던 이웃집 할머니의 번호였다.


  ‘자꾸 전화해서 미안해요. 방금 택배 찾아간 사람인데요. 아까 보니까 새댁 같던데 혹시 오이지 아직 안 담갔으면 조금 갖다 드려도 될까요? 방금 이 택배에 오이지가 들어있더라구요.’


  엄밀히 말해서 나는 새댁도 아니었고 올해는커녕 향후 3년 안에 오이지를 내 손으로 담글 계획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굳이 그걸 지적하지 않을 만한 사회성은 있었다. 게다가 방금 막 받은 따끈따끈한 택배를 선뜻 나눈 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걸 주시려고 굳이 전화까지 다시 주신 이웃 할머니에게 고마워서 ‘어유, 주신다면 저야 정말 감사하죠!’ 하고 답했다. 


  전화를 끊고 기다리는 동안 그냥 받기가 뭣해서 집에 있는 음료수와 레몬 두 개를 지퍼백에 챙겼다. 이웃집 할머니는 비닐에 꽁꽁 싸맨 오이지를 건네고는 지퍼백을 받아 들며 ‘이렇게 큰 걸 받아서 어쩌지요!’ 하며 고마워하셨다.


  이렇게 이웃 할머니와 예정에 없던 물물교환을 하고 살짝 들뜬 마음으로 있자니 문득 모르는 낯선 상대와 얘기하고 대가 없이 뭔가를 건네받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반년 가량 이어지며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이 되어서 친한 친구의 얼굴도 보지 못한 지가 벌써 몇 개월이나 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 상대라고는 집에 있는 가족들, 집 앞 마트 계산대의 직원 아주머니, 음식 배달 아저씨가 전부였다.


  그리고 굳이 역병 탓을 하지 않더라도 이웃과 교류하지 않는 것은 별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움직이는 엘리베이터에서 서로의 사적 공간을 침해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떨어져서 허공을 보고 미묘한 침묵을 견디는 상황은 세대수가 많은 이곳으로 오기 전부터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아마 과거의 언젠가는 집에 선물이 많이 들어오면 옆집에 갖다 주고, 그 접시에 보답으로 과일이나 음식을 받아 돌아오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이제는 까마득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웃집 할머니에게 받은 냉동 인절미는 저녁을 먹기에는 애매한 시간에 출출함을 이기지 못하고 꺼내 먹었다. 알알이 작고 동글동글하며 고소하고 양도 적당해서 간식거리로 딱 적당했다. 대망의 오이지는 기온이 유독 높았던 무더운 날 점심으로 얇게 썰어낸 후 설탕과 참기름에 무쳐서 물에 만 밥과 함께 먹었다. 장아찌 특유의 짭조름한 맛을 설탕이 단 맛으로 중화시켜준 데에 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여름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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