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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MIN May 07. 2020

고양이와의 '대화법'


  엄마가 이모와 오랜만에 통화를 하던 중에 있었던 일이다. 이모가 전화기 너머로 아라와 이야기하는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던 모양이다. 당시 부모님 외에 집에 사람이 없던 상황이라서 이모가 “형부 누구랑 얘기하는데?”하고 묻고는 아빠가 고양이에게 말했다는 사실에 깔깔거리며 재미있어한 적이 있다.




  우리 집 구성원들에게는 사람 아이에게 하듯 고양이들에게 말을 거는 게 일상적인 일이다. 소소하게 “간식 줄까?”, “물 줄까?”, “사냥놀이할까?”같은 의문형 문장은 하루에 몇 번이나 말하는 편이고 그 외에도 “어유, 그랬어요.”나 “아이 귀여워.”같은 말은 아주 입에 달고 산다.


돌이켜보면 아라가 아주 어릴 때는 말해봐야 알아듣지도 못할 동물에게 말을 건다는 사실이 우스꽝스럽고 부끄럽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3개월 정도 된 어린 고양이였던 아라는 어린 동물 특유의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나는 이걸 비둘기 같은 표정이라고 부른다.) 움직이는 것에만 반응을 보이며 생존을 위한 본능을 갖춘 것 외에는 이지가 없어 보였다.





  그랬던 아라는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몸과 머리가 커가면서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혀갔다. 내가 고양이들의 의사소통 방식, 그러니까 몸짓, 꼬리, 수염 등을 활용한 의사소통 방법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애옹!”하고 소리를 내서 내 주위를 환기시키는 방법으로 자기주장을 하고 원하는 바를 성공적으로 쟁취해왔다.


이와 더불어 나도 집사로서 고양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의사소통 방식을 공부하고 아라의 행동 패턴을 주의 깊게 살핀 결과 우리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제법 의사소통이 되는 단계에 도달했다.


새벽에 자고 있는데 와서 “애옹!”하고 큰 소리로 몇 번이나 울어서 나를 깨우는 것은 얼른 따라와서 밥 먹는 걸 칭찬해달라는 뜻이고, 소파에 앉아있는데 다가와서 엉덩이를 납작하게 들이밀고 꼬리를 흔드는 것은 빨리 궁디팡팡을 해달라는 뜻이다. 신선한 물을 마시고 싶을 때는 화장실 부근에서 울어서 누군가를 부르고, 사냥놀이할 시간이 됐는데 내가 딴 짓을 하고 있으면 큰 소리로 울고는 쏜살같이 거실로 달려가는 것을 반복한다.





  이런 일상적인 상황이 있는가 하면 아주 드물게 마주하게 되는 상황도 있다. 아라는 내가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내가 집에서 업무적인 통화를 하느라 경직된 말투와 표정으로 전화기에 대고 말을 하고 있거나, 동생과의 싸움이 격해져서 고함을 지르며 싸우는 상황에서는 내 눈치를 보면서 덩달아 “애애옹!”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고는 내 발을 물어서 이상해진 나를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가끔씩 장난 삼아 아라에게 “이제 슬슬 한국어 할 때도 안 됐어?”하고 말하긴 하지만, 실상 아라가 사람 말을 하지 않아도 어지간히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내가 고양이 언어를 말하지 못하고 아라가 사람처럼 말하지 못하면서도 각자 저마다의 언어로 어떻게든 소통이 되는 이 상황은 각종 매체에서 접하는 다양한 상황들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언어를 모르면서도 국제 연애를 하는 커플이 신기하게도 상대의 말을 알아듣는 상황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대인관계에 서투른 편이라 누군가와 대화를 하게 되면 긴장한 상태로 대화 상황에 임하고는 한다. 말을 하다가 실수를 한 적도 많았고, 하고 싶던 말을 조리 있게 풀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내가 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아라와 성공적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한 존재와 다른 존재가 소통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언어를 아는 것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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