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취재일기
어제 저녁 퇴근 무렵 법원에 진눈깨비처럼 막 눈이 흩날리더니 오늘 아침 출근할땐 겨울왕국이 되었다. 앞마당에 나무를 많이 심어놔서 그런지 눈 쌓인 나무들과 법전을 형상화했다는 건물이 잘 어우러져 낭만적으로 보였다. 법원에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화가 난듯한 표정인데 오늘은 이례적으로 서로서로 환하게 웃으며 눈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나도 몇장 풍경을 담아보았다.
오늘은 기사 잡힌 것도 없고해서 재판을 원없이 들어가봤다. 대체로 검사가 구형하는 결심공판이나 재판부가 결과를 낭독하는 선고공판 아니면 몇몇 유명한 사건을 제외하곤 기자도 방청객도 잘 안오는 편이다. 난 오늘은 금감원 국장이 직위를 이용해 옵티머스에게 이득을 주고 대가로 돈을 받아 기소된 건에 대한 재판을 챙기러 법정에 들어갔다. 결심도 아니고 선고도 아닌터라 방청석에 기자는 나 혼자였는데, 의외로 사람이 빼곡히 앉아있었다. 앞선 재판들이 길어졌는지 앞 사건 재판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재판부가 피고인들을 호명하자, 딱 봐도 애기 티를 벗지 못한 피고인 4명이 죄수복을 입고 들어왔다. 혐의는 대마. 재판부는 이들의 이름과 주소를 확인했다. 몇몇은 무슨무슨 팰리스... 몇몇은 이촌동의 한강뷰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마침 카톡 대화를 하고있던 친구와 대마와 이촌동, 한강뷰 얘기를 했다. 나는 귀를 반쯤 열어두고 내가 챙겨야할 재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재판장은 이것저것을 검사와 변호인들에게 묻다가 사려깊게도 피고인들에게 한 사람씩 일어나 반성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직접 말할 기회를 주었다. 최후진술을 들으려는 듯 했다. 93년생이라는 피고인1이 입을 떼었다. "저는 재수를 두 번 했습니다." 나는 죄수복을 입은 사람 입에서 재수라는 단어가 나오는게 어딘가 우스꽝스럽다 생각하며 계속 들었다. "남들보다 인생이 늦었다고 생각해 저를 재촉하며 살았습니다. 결국 대학에 들어가 좋은 친구들을 만났는데 한 순간의 실수로 친구들까지 안 좋은 길로 이끈 것 같아 너무 미안합니다." 옆에 앉은 피고인들이 조금씩 훌쩍거렸다. "구치소에 있는 저를 단 10분이라도 보려고 가족들은 멀리서 찾아와주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미안합니다." 피고인의 말에 방청석이 덩달아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빼곡히 앉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피고인들의 가족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한명씩 자기가 어떤 생을 살아왔고 얼만큼 반성하는지를 말했다. 세번째 피고인쯤 왔을때 그는 이미 많이 울고 있었다. 재판부를 보며 말을 하다가 "허락해주신다면 잠시 가족들에게도 말을 하겠다"며 방청석을 향해 뒤를 돌았다. 작은 움직임에 법정 경위들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금방이라도 그를 구금할것처럼 경계 태세를 취했다. 뒤도는 것마저도 구속당하고 있는 그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엄마, 이런 모습 보여서 너무 미안해. 할머니 너무 미안해. 나를 잘 키워줬는데 내가 이렇게 되어서 미안해. 여기 나가게 되면 더 잘할게. 우리 정말 행복하게 살자." 방청석은 이미 소리를 내어 통곡하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짐승이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서 보니 피고인의 할머니였다. 머리가 완전히 하얗게 세 버린... 하얀 머리카락으로 곱게 쪽머리를 한 할머니가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나도 어느샌가 그들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급히 노트북으로 자판을 치는 척 얼굴을 쳐박았다.
재판장은 피고인 네명의 최후진술을 끝까지 다 들었다. "참고를 잘해서 판결을 선고해보겠다"고 했다. 다음 기일은 다음달 요맘때쯤으로 잡았다. 저 피고인들은 똑같은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나올 것이다. 가족들도 자리를 지키겠지. 할머니는 또 머리를 곱게 쪽지고 오실 것이다. 다음 기일 날짜와 시간을 나는 조용히 적어두었다.
2024.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