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쓴 글입니다.
2012년 겨울, 한 사설 글쓰기 학원을 다닐때였다. L언니와 K는 우리반 글쟁이들이었다. 국내 최고 대학에 다니는 재원이었던 L언니는 작문 톱, 사회운동을 하던 K는 논술 톱이었다. 둘은 글을 엄청 잘썼다. 특히, L언니는 창작 작문계의 슈틸리케였다. 제시어가 신호등이 나오면, 글의 시작은 이랬다. '그는 전생에 신호등이었다.' 신호등 입장에서 빨노초 세 선택지밖에 없음을 한탄하며 인간이 되어 선거를 통해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수있길 소망하는 글이었다. L과 K의 주옥같은 글들을 우린 매시간마다 볼수있었다.
L언니가 창작 작문에 강했던 한편, K의 논술은 정성들여 간 칼 같았다. 그녀는 기득권의 탐욕과 불합리, 비도덕을 짚어내 비판하는데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보수 기득권 세력이나 거대자본의 횡포에 반대하는 그녀의 문장엔 힘이 실려 있었다. 논거의 수준이 높고 범위도 방대했다. K의 글을 알아먹는 것만도 내 힘이 부칠 정도였다. 선생님은 그 둘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고, 우리는 그들의 글을 금과옥조처럼 여겼다. 그들의 글을 보면, '왜 나는 이렇게 못쓸까 내 시험지야 미안해'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죄책감 반, 부러움 반으로 외울 생각 같은게 전혀 없었음에도 문장 하나하나들이 내 머릿속에 양각문양처럼 새겨지곤 했다.
강의가 끝나갈 즈음 K는 L언니를 포함해 몇명을 모아 스터디를 만들었다. 나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왜 나를 쏙 뺐을까 거듭 생각해보니 내가 했던 학회 활동을 걔가 무척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정치적 견해로 소속감이 단정지어지는 때였다. 내가 속한 학회에 자신과 견해가 다른 이들이 많이 포함돼있다는 이유로 그녀는 우리 학회를 싫어했었다. 그것 때문일지 완벽히는 알수 없지만 어쨌든 글쟁이와 함께하는 스터디원으로서 낙점되는 행운은 얻지 못했다. 결국 K는 L언니와 스터디를 시작했고 강의는 끝났다. 그들과는 자연히 멀어졌다.
그로부터 2년 뒤, K를 마주했다. 오늘이었다. 저널리즘 스쿨에 합격한 이후, 입학시험에 제출된 시험지 가운데 내가 써낸 걸 찾아야할 일이 있었다. 막 내걸 찾다가 우연찮게 친숙한 구절로 시작하는 글을 보았다. '나는 전생에 신호등이었다...' 앗! 어디서 많이 본 도입부! L언니의 글이었다. 눈길이 머물렀다. L언니도 시험을 봤나? 필기는 당연히 붙었을 테고, 면접에서 떨어진건가? 근데 웬걸. 글쓴이 이름란을 본 순간 난 가슴이 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글쓴이 이름엔 K의 본명이 떡하니 적혀져있었다.
처음엔 화가 났다. 언론인이 되겠다는 애가 표절을 하다니 하는 대의적인 것도 있었지만 걔 자체에 대한 실망이 컸다. 불의에 예민하던 친구였기에 더 의아했고, 아쉬움이 컸다. 그러고나서 차차 든 생각은 이러면 스터디를 어떻게 하고, 남을 어떻게 믿고 글을 공유할까 하는 거였다. 서로 글을 공유하고 첨삭 받는 건 언론사 준비생 특유의 문화였다. 20년 전 기자 시험을 보신 대선배들도 스터디를 하셨다고 할 정도로, 전통 같은 거였다. 서로를 신뢰하기 때문에 잘쓴글을 보여줄 수 있는 거고 또 그렇게해서 서로 발전하는게 스터디의 원리였다. 이 문화에 회의감이 들었다. 이렇게 '알고보니 남의글을 베껴온' 경우를 난 그전에도 간혹 봤다. 썩 잘쓰진 않지만 내 글도 어딘가에서 남의 자식 행세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찝찝함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실수일수도 있다. 하나의 오점으로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다. 좋은 평가를 받은 글이니까 타인의 글이더라도 꼭 붙고싶은 마음에 써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에서 때로 ‘잘 쓴 것’이 ‘진짜 쓴 것’보다 우선되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진심이 담긴 문장이 더 오래 남는다고 믿는다. 나도 문제집을 복사해서 풀고 인터넷의 정보를 편하게 갖다 쓸 때가 있다. 나부터 철저하다고 말할수없어서 더 부끄럽기도. 오랜만에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볼 수 있어 좋았는데 이런 사건이 아니었음 더 좋았으련만.